오병주 변호사

[시사매거진272호] ‘삼국지’에 보면 당대 최고의 명의로서 의성(醫聖)의 경지에 오른 화타가 등장한다.

조조에 대해서는 ‘삼국지’뿐 아니라 많은 다른 서적에서도 다뤄졌으나, 화타에 대해서는 극히 작은 비중으로 일부만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독화살을 맞은 관운장이 바둑을 두는 사이에 마취 없이 수술을 한 화타가 조조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조조는 자신의 과오로 관헌에 의해 쫓기던 중, 평소 자신을 위해 주던 여백사란 노인의 집에 피신했는데, 여백사 노인은 쫓기는 조조를 위해 하인들에게 돼지를 잡게 하고 자신은 친히 장에 나가 조조에게 대접할 술을 사러 갔다. 

그런데 의심 많은 조조가 돼지를 잡기 위해 칼을 가는 하인들을 자기를 죽이기 위해 칼을 가는 것으로 착각하고 모두 죽이고 도망치던 중 영문도 모르고 장에서 돌아오던 여백사 노인을 발견하고 후환을 없앤다며 이 노인마저 무참히 죽여버렸다. 

그 후 조조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게 됐고 마침내 그는 화타를 찾게 된다. 조조를 진찰한 화타는 조조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조조의 머리를 깨고 이른바 뇌수술을 해야만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고, 조조는 수술에 응하려 했다. 그러나 조조는 갑자기 뇌수술을 핑계로 화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의심하고 돌연 신하들을 불러 화타를 참해 버린다.

‘삼국지’에는 더이상 조조가 화타를 왜 죽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런데 야사(野史)는 다음과 같이 화타의 죽음에 대한. 이면 스토리를 적고 있다. 

본래 화타와 조조는 당대 무술과 학문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했는데 수제자는 화타이고 조조는 화타보다 무술이나 학문 모든 면에서 한 수 밑이었다고 한다. 그 스승에게는 절세미인인 외동딸이 있었다. 스승은 무술과 학문에서 따를 자가 없고, 인품도 조조를 훨씬 능가하는 화타를 일찌감치 사윗감으로 점찍어 두었다. 

그런데 스승과 화타가 자리를 비운 틈에 조조가 스승의 딸인 화타의 정혼녀를 겁탈해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여느 사람 같으면 조조를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응당 복수하겠지만 심성이 착한 화타는 자신이 스승의 딸을 양보하고 스승 곁을 떠나 자신의 무공을 이용해 불쌍한 백성들에게 기공 치료를 하는 의사의 길을 걸어 마침내 의성의 경지에 오르게 됐다. 

조조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자 지병을 치료하고자 의성 화타를 불렀으나, 불현듯 화타가 자신과의 과거의 구원(舊怨)을 되살려 뇌수술을 핑계로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죄 없는 화타를 죽인 것이다.

요즘 작가에 따라서는 승자의 입장에 선 조조의 경영 능력과 처세술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있고 결과적으로 득세했다고 해도 그 사람의 본래의 됨됨이나 품성, 득세 과정에서의 사술 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승자라고 하여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오히려 위나 오(吳)에 비해, 촉(蜀)이라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척박한 땅을 기반으로 백성을 위해 민심을 득하고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겸양지덕을 몸소 실천하여 인재를 발탁한 유비와 그의 밑에서 절세의 경륜과 지략을 구사한 제갈공명이야말로 후세 사가(史家)들이 높이 평가할 만한 진정한 인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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