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사 지태 주지스님, “내장사 사천왕문~용굴간 금선계곡 ‘실록 이안 길’ 추진하겠다”

화려한 단풍의 내장산 전경(시사매거진 자료사진).

[시사매거진/전북] 전통사찰 내장산 내장사의 지태 주지스님이 지난 24일, 2021년 새해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내장사의 2021년은 기존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태 스님은 “사람들은 유네스코가 1997년 10월 1일, 세계 기록문화 유산에 추가하며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 아직도 정읍의 선비들과 정읍 승병들에 의해 내장산 일원에서 지켜졌던 사실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래서 올해부터는 『조선왕조실록』과 내장산, 그리고 내장사가 분리될 수 없는 역사로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해로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지태 스님은 또 “『조선왕조실록』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이전까지 세계사적인 시각은 ‘한국은 같은 아시아의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그리고 이탈리아나 프랑스, 영국의 역사적 자료에 비교해 보았을 때, 자료 기근(飢饉) 국가’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었다”면서 “하지만, 세계문화유산 등록 이후 조선의 사서인 『조선왕조실록』이 세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장구한 기록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1592년 임진왜란은 우리가 겪었던 최대 최고의 국가 존망의 갈림길에 우리 민족이 내몰려야 했던,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 속에서 ‘현재의 문화적 자원을 지켜내 후대의 경쟁력 있는 문화유산으로 넘겨주자’는 현시대 ‘문화재지킴이 정신’의 정신이 이른 시기에 실천된 것으로, ‘한국문화재지킴이 단체연합회’ 지난 2018년 6월 22일을 ‘문화재지킴이의 날’로 공식 천명한 바 있다.

지킴이 연합회는 이 6월 22일이 1592년 임진년 음력 6월 22일, 서울 춘추관과 충주, 성주사고에 보관돼 있던 실록이 불타고 전주 경기전 내 실록각(實錄閣)에만 당시까지 유일본으로 남아있던 조선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의 200여 년의 기록이 정읍의 선비 물재(勿齋) 안의(安義, 1529∼1596)와 한계(寒溪) 손홍록(孫弘祿, 1537∼1610)에 의해 정읍 내장산으로 옮겨졌다는 점에서 이날을 ‘지킴이의 날’로 명명했다.

이러한 사실은 정읍의 선비 안의가 임진년과 계사년에 실록을 시키며 기록한 ‘수직상체(守直相遞日記)’ 『임계기사(壬癸記事)』에 비교적 자세한 내용들이 담겨 있었지만, 미미한 기록이라는 인식과 함께 학계의 학술적 조명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가 2011년 문화원연합회가 개최한 ‘제26호 전국향토사공모전’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진 후 추가 연구들로 이어지며 ‘문화재지킴이날’의 역사와 정신으로 거듭난 바 있다.

24일 기자와 만난 내장산 내장사 주지 지태스님(사진_이용찬 기자).

지태 스님은 “본래 『임계기사』는 탐진(耽津) 안씨(安氏) 문중에서 종손들에게만 대대로 대물림 되었던 안씨 가문의 가보(家寶)로, 임진왜란 당시 과거 태인현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이 경기전의 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기고 이를 지키며 기록하고 선조의 명으로 정읍현, 아산현, 강화도 등을 거쳐 묘향산으로까지 자비로 옮겨 냄으로써, 우리가 현재의 온전한 『조선왕조실록』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때문에 내장사 사천왕문 왼쪽 옆으로 진입해서 과거 금선계곡 용굴암 터로 이어지던 약 2km 구간을 ‘실록이안(實錄移安) 길’로 명명하고 조명하는 일은 어쩌면 앞서 희묵대사가 몸소 실천했던 의승장의 정신을 잇는 것이자 임진왜란 당시 호국사찰로 실록과 어진을 수호했던 묘향산의 보현사와 내장산 내장사의 호국정신을 새롭게 잇는 역사적 도약의 새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내장사 주지 지태 스님은 “이와 함께 아직까지 조명되지 못하고 있는 비래암(飛來庵) 터로 접근할 방안도 정읍시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과 협의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용찬 기자 chans0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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