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반역] 제 22장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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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반역] 제 22장 갈등
  • 편집국
  • 승인 2021.01.1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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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남 작가

비가 내림.

봄비가 그치면 새로운 길을 도모해야 할 것인데...

그녀가 적셔온다.

수표교의 꽃비를 맞으며 여인의 눈물을 향기로 삼았다.

그녀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피의 전선에서 느끼던 감정은 여인의 미소로 녹아버렸다.

하지만 아득한 곳에서 들려오는 절규(絶叫)!

나의 숨이 멈춰진다.

 

(사야가 김충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1597318일 무신 )

 

...의로움......”

모호하였다. 기준은 애매했지만 적어도 통제사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의 선도자들을 조금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장예지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순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의 뜻으로 일을 도모함이 마땅합니다. 무질서 하고 혼란스럽게 일을 다룬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혼란만을 가중 시킬 것입니다. 조선은 왜적의 재침략으로 위기에 봉착 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역모의 도발이라면......”

조선은 치명적이고, 끝내 망하리라 여기시는구려.”

장예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빗물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나라가 망함이 두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스승님을 잃게 되는 두려움입니다.”

또 다시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김충선의 전신을 뒤흔들며 누비고 다녔다. 이 여인은 나 김충선을 염려하고 있다. 철이 들 무렵의 어린 시절부터 화승총을 끌고 전란에 참여했던 소년병은 언제나 고단했다. 매일 지옥과도 다름없는 격전의 현장에서 피와 죽음을 목격하고 영주인 주군을 위해 싸우고 복종했다. 사야가란 소년병에게는 내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삶에 대한 의욕보다도 집념어린 목적만이 존재했다.

난 조선을 정복하고자 했었소!”

장예지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실상 그녀는 김충선에 대해서 그리움만 잔뜩 지니고 있었지 자세한 내력을 모르고 있었다.

그랬던가요?”

나에 대해 궁금하지 않소?”

아주 많이 궁금하죠. 아주 많은 걸 알고 싶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

그렇소. 우린 그래서는 안되는 관계였던 거 아니었소?”

익호장군 김덕령과의 사이에서, 그들은 그저 스승과 제자, 친구의 연인, 연인의 친구일 뿐이었다.

그 때문에 이순신 장군의 나라를 꿈꾸시는 건가요?”

아니요.”

그럼 무엇 때문입니까? 스승님이 원하는 이순신의 나라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김충선은 잠시 상념에 빠져들었다. 첩자(諜者)로 선발되기 위해 훈련했던 고난의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난 본래 간자(間者=첩자)로 이 땅에 잠입했었소.”

장예지는 놀라고 말았다.

!”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승인 김충선은 조선인보다도 더 조선을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지난 임진년과 계사년에 일본군을 상대로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었다. 그래서 도원수 권율과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의병장 곽재우 같은 조선의 핵심 인사들에게서 인정받고 있었다.

그랬었나요? 본래는 간자 이셨나요?”

김충선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임진년, 조일전쟁이 발발하기 전이었던가요?”

맞소. 2년간에 걸쳐서 조선 팔도를 샅샅이 누비고 다녔소! 조선의 지리와 인물, 요지를 정탐 했소. 최초에는 살생부(殺生簿)도 작성했었지요.”

충격적인 고백 앞에 잠시 장예지는 말문이 막혔다. 다시 촉촉하게 눈가가 젖어왔다. 조일인(朝日人)을 자처하는 이 사내는 대관절 얼마나 힘든 세월을 지나 온 것일까? 칼을 품고 왔던 나라를, 이제는 어째서 이토록 지켜주는 것을 염원(念願)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가 걸어왔던 길은 눈물과 한()으로 산더미가 되어 쌓여 있고, 강물을 넘어서 바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랐습니다. 그런 고통의 세월을 지니고 계신 줄은!”

그런 나를 변하게 한 것은 조선이었습니다! 조선의 모든 것들이 일본의 철포 사무라이 사야가를 변하게 만들었지요!”

장예지가 다시 눈물을 떨어뜨리며 진심으로 애원했다.

자신을 소중히 하세요!”

장예지의 속삭임은 고요한 빗물의 파문이 되어 김충선의 고막을 어루만졌다. 부드럽고 따스하며 정감이 넘치는 감동이었다. 그녀의 눈물 앞에 오히려 김충선은 이제 차분해지는 자신을 발견 하고 있었다. 격렬한 투쟁의 하루하루였다. 이순신의 투옥 이후에는 거의 정상적인 생활이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조선의 역사를 만들고자 몸부림쳤다.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버리고 행동했다. 그러한 김충선의 길에 예기치 않은 복병으로 등장한 그녀이다.

새순을 돋기 위하여 땅을 비집고 나오는 고통이 따름은 당연하오. 봄날의 화사한 꽃망울이 터져 향기로운 꽃이 피는 것은 겨울을 이겨낸 이치외다. 극복하지 않으면 자연(自然)이 아니라 재해(災害).”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겁니까?”

그렇소! 본래는 그럴 마음뿐이었소.”

지금은 아니시라는 건가요?”

모르겠소. 나두......”

장예지는 재회(再會)한 스승의 깊은 고뇌에 자신조차 감화된 것으로 느껴졌다.

멈추세요! 통제사를 구하실 방도가 생겼지 않습니까? 순리를 거역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면 그 길을 가셔야 합니다.”

갈등의 폭은 넓고 깊었다. 순리를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장예지의 조용한 외침이 그의 신념을 뒤흔들었다. 누구를 위한 역심(逆心)이였던가? 백성을 위해서였던가? 아니면 통제사 이순신을 살리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나 개인의 욕망은 아니었는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사적인 목적은 절대 아니다!’

김충선은 자신에게 묻고 답하였다. 조선을 새롭게 이루고자 하는 큰 뜻은 어디에 있는가? 이순신 이었는가? 조선에 투항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과 교류했다. 이순신을 만났고, 곽재우와 김덕령을 알았다. 젊은 군관과 늙은 의병을 만났으며 이울과 같은 친구도 사귀었다. 그리고 장예지란 제자를 두었고 마음속 연인도 가졌다. 희망은 사람이었다. 사람다운 사람이었다. 사람이라고 모두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김충선은 일본에서부터 일찍이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일본의 히데요시는 존경할 수 없는 살인적 본능을 지니고 있는 자로 우리 사야가 가를 몰살 시켰다. 조선의 선조는 기만과 위선으로 당파를 조종하여 집권의 야욕에만 몰두, 결국 대다수 백성들을 굶주림과 전쟁으로 희생 시켰다. 그들의 사상과 행동은 달랐으나 대량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흉이란 점은 닮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을 응징하고 싶은 것이다.’

장예지는 복잡한 심경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 김충선에게 다정한 미소를 보냈다.

무모한 조선을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

그녀는 마치 빗속에서 눈부시게 피어나는 목련과도 같았다. 사야가 김충선은 동요됨을 느꼈다.

참고하리다.”

장예지는 스승인 김충선의 이런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敬聽)하는 자세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러한 몸가짐이었기에 조선의 정착이 성공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나 바르게 자신을 무장하고 살아갔다. 타국에서의 흐트러진 자세는 스스로 용납 할 수 없었다.

기뻐요. 스승님과 이렇게 봄비를 즐기며 걷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녀는 김덕령이 그렇게 희생된 후 크게 충격을 받았다. 사랑하던 정인에 대한 사별(死別)이 사무쳐야 했지만 그렇지 않음에 놀란 것이다. 물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당연한 비극(悲劇)에 목을 놓아 울었지만 자꾸만 지워지지 않는 영상이 있었다. 스승 사야가였다. 그래서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적(潛迹)해 버렸던 것이다. 조선의 여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도 그 잔인한 조선의 윤리(倫理)와 도덕(道德), 여인의 규범(規範)은 그녀를 자유롭게 하지 않고 있었다.

저 작자가 바로 선전관 조영인 모양이군.”

사야가 김충선의 입이 벌어지는 순간에 장예지는 울적한 상념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녀의 동공에 낮선 중년의 사내가 비쳤다. 그는 제법 체격이 우람하였고 눈빛도 흐리지 않았다. 장예지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여 주먹을 쥐었고 땀이 배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 자에 의해서 조선의 명운(命運)이 갈리겠구나!’ 란 생각이 장예지의 뇌리를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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