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 녹는다. 내 가슴에’ 지영빈 감독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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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이 녹는다. 내 가슴에’ 지영빈 감독 두 번째 이야기
  • 김건탁/김단영 기자
  • 승인 2021.01.0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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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선정 사진작가이자 대한적십자사 위촉 사진작가

[시사매거진] 본지는 사회 각 분야의 다양성과 필요한 정보(뉴스)를 독자들에게 제공하여! ‘시대에 부흥하는 언론의 기본적 역할에 충실 해 왔다. 금번 202012월부터 202112월까지 <필름이 녹는다. 내 가슴에>를 출간한 대한민국 사진작가 지영빈 감독의 사진집 타이틀로 기획연재 12편을 게재한다-편집자주

“저 마다의 생명력(스토리)이 존재하기에 모든 사물은 살아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사진의 힘이다”라 말하는 지영빈 감독
“저 마다의 생명력(스토리)이 존재하기에 모든 사물은 살아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사진의 힘이다”라 말하는 지영빈 감독

사진은 나의 이야기를 담는 또 다른 생명체라고 말하는 지영빈 감독. 저 마다의 생명력(스토리)이 존재하기에 모든 사물은 살아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사진의 힘이다라는 사진의 정의를 피력하는 사진작가 지영빈 감독.

사진은 즉각적이고 누구나 촬영할 수 있다. 한 장의 사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크고 작은 이야기와 사진에 담긴 의미를 전달한다. 더불어 사진은 사람의 마음을 잡아 각각의 해석을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조물주가 창조해 낸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한장의 사진은 누군가에게는 웃음과 위안을 주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한다. 지영빈 감독의 사진에는 자연과 인간의 삶이 공존하며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지난 20135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창립 60주년을 맞아, 유네스코의 인식제고와 국민 소통강화 등을 목적으로 포토그래퍼 지영빈 감독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선정 작가로 위촉 하였다. 지영빈 감독은 37년의 시간을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면서 국내 최정상의 연예인들과 전직대통령 및 유명 정치인들의 프로필 사진촬영을 진행했다. 이와 함께 2016년부터 소방공무원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 처우개선을 위한 기부프로젝트 [HANDS FOR HERO] '우리의 영웅! 소방관들의 손을 잡아주세요를 기획/제작하여 화보집과 캘린더 판매 수익금을 대한적십자사에 기탁하고 있다.

올 여름 촬영을 끝낸 소외계층 여학생들을 위한 생리대 기부프로젝트는 전국에서 선발 된 10명의 몸짱 여성경찰 공무원들의 재능기부로 제주특별자치 도에서 사진촬영이 마무리되었다.

내년 상반기에는 몸짱여경 캘린더와 화보집이 제작/판매되어 판매수익금을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하여 소외계층 여학생들에게 전달되도록 협의를 마쳤다.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통해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따듯한 선행은 우리 국민 모두가 박수를 보내고 응원해야 하는 일입니다. 사회의 나눔을 문화 확산을 앞장서는 소방관분들과 지영빈 감독께 힘찬 박수와 격려를 보냅니다.” <대한적십자사 박경서 전임회장의 인사말>

지난 12월호 1편에서는 지영빈 감독의 프로필과 현재 진행하고 있는 ‘2021년 소방캘린더출시 및 사진전시회’ 11월 경기도청, 경기도의회, 오산시청 행사내용과 함께 37년의 혼()이 깃든 사진작품집들에 대한 소개를 하였다. 2편에서는 그의 부모님과 유년시절을 거쳐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그리고 군 복무까지를 구성하여 개인 스토리를 담았다.

(좌)지영빈 감독의 이버지 고 지승순 옹와 (우)지영빈 감독의 어머니 고 장서섭 여사
(좌)지영빈 감독의 이버지 고 지승순 옹와 (우)지영빈 감독의 어머니 고 장서섭 여사

나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의 고향은 이북이었다. 1917년 함경북도 함흥이라는 곳에서 7형제(모두 남자) 중 막내로 태어나셨다고 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1.4후퇴로 남한으로 피난오신 실향민이었다.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생각 해 보면, 아버지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친구(, 후배)들이 계셨고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집에서 술을 드시며 즐기셨던 편린(기억)의 조각들이 지나간다. 아마도 그것은 살아생전 한번만이라도, 고향 땅을 밟아 봤으면....!” 아버지의 소망이었을 것이다. 남한으로 내려오신 후 운수업(버스가 3~4대 있었다고 함)을 하셨고 운영도 잘되어, 한국전쟁이 끝난 후 경상북도 울산이 고향이신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셨다고 들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가족이 경기도 의정부로 이사를 했기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의정부에서 졸업했다. 당시 아버지는 미군부대에서 근무하셨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지만, 솔직히 난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셨는지 모르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간혹 술이 거나하게 취하시면 고향친구 몇 분들과 집으로 오셔서 어머니에게 술상을 봐 달라고 부탁하신 후, 일행들과 집이 떠나갈 듯이 노래를 부르셨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에 희망이 무엇이냐....” 갈 수 없는 고향이 얼마나 그리우셨을까? 고향 선,후배들과 모여 한 잔의 술과 한 소절의 노래로 망향(望鄕)의 한을 대신하셨던 것이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들이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또한 아버지의 그 모습을 불평불만 없이, 옆에서 묵묵히 지켜만 보셨던 어머니. 두 분,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은 밤이다.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여, 나눔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사진작가 지영빈 감독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여, 나눔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사진작가 지영빈 감독

그림그리기를 좋아한 소년

아버지는 유독 나를 예뻐해 주셨다. 어린 시절 나의 유일한 놀이(취미)는 그림 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아버지는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셨다. 아니 반대하셨다. 그 때문에 아버지와 심하게 다툰 적도 있다. 그러나 난 아버지를 유독 좋아했고 존경했기에 그 뜻에 따라 중학교를 졸업하고 덕수상업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주산과 부기는 필수 과목 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림에 미련이 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학교도 빠지면서 아버지 몰래 화실을 기웃거리는 이중생활을 했다. 당연히 성적은 바닥을 맴돌았고 원하던 홍익대학교 미술학부를 보기 좋게 떨어졌다.

차선책으로 홍익공업전문대학에 입학(당시 홍익대학교와 홍익공업전문대학은 같은 건물에 있었음)하였고 미술학부에 입학한 친구들을 보면서, 대학생활에 별 다른 매력을 못 느끼며 1학기가 끝나기 전 입대를 결심하게 되었다. 독자이기에 군대를 안가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대학생활에 적응 못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만 하는 나를 보며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진정한 남자가된다.”라는 아버지의 꼬임에 아무생각 없이 입대를 지원했다. 청량리에서 논산행 입영열차를 타면서 어차피 군대 또한 사회의 한 부분인데, 앞으로 나의 인생을 위해서 3년 휴가 다녀오는 셈치고 잘 놀다 와야지!”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으로 논산에 도착했다.

지영빈 감독의 학창시절
지영빈 감독의 학창시절

군 복무 시절

남자들이 군대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 만큼 사건, 사고와 잊지 못할 추억들이 새겨진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15사단이 나의 근무지였고 주특기는 112(지뢰매설 및 제거)였다. 당시 사수는 경기도 군포출신이었는데 나를 조수로 뽑아 경리계라는 보직을 주었고 학교(덕수상고)에서도 게을리 하던 주산을 밤새워 가르쳐 주셨다. 그의 이름은 홍승무 병장, 병장님 보고 싶습니다. 그러던 중 내무반에서 일어난 사고(하극상)로 억울하게 영창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림을 그려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나의 군 생활에 큰 변화를 준 일이 되었다. 아울러 15사단 헌병대에서 근무할 당시, 유명한 가수 전영록 병장과 만남도 있었다. 제대할 때까지 14개월의 시간을 15사단 헌병대에서 그림을 그리며 생활했고 그 당시 페인트로 군 계몽 포스터와 추억록(군대에서의 추억을 담기위해 그림과 글로 만든 앨범)을 그려 주면서 특혜를 누렸다. 그와 함께 사제라면과 외부음식도 자주 먹을 수 있었다. 포상휴가 또한 자주 나오다 보니, 어머니께서는 그만 나오라는 말까지하셨다. 제대를 앞두고 헌병대 생활이 적성에 맞아 직업군인(군대용어로 말뚝)이 될까? 잠시 고민하던 시간도 있었다. 그 후, 촬영 관계로 강원도 출장을 가면 15사단이 위치해 있는 사창리, 와수리, 다목리 삼거리를 방문하여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공동취재_김단영 3ykm2003@naver.com, 김건탁 기자 moon@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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