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기우만(1846~1916), 박원영(미상~1896), 김익중(1851~1907) 선생을 2021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사진은 기우만선생의 영정이다.(사진_국가보훈처)

[시사매거진/광주전남]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기우만(1846~1916), 박원영(미상~1896), 김익중(1851~1907) 선생을 2021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기우만·박원영·김익중 선생 모두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여 1896년에 일어난 호남지역 의병들이며, 호남지역 유학자인 노사 기정진(奇正鎭)의 학맥을 계승하여 서양 및 일제의 국내정치 개입을 거부하고 왕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장성,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먼저, 조부 기정진의 영향을 받은 기우만 선생은 전남 장성 탁곡에서 출생했으며, 자는 회일(會一), 호는 학정거사(學靜居士)․송사(松沙) 등이다. 

기우만 선생은 1896년 2월 장성향교에서 최초로 호남의병을 일으켰다. 장성, 나주에서 기반을 다진 선생은 광주에서 대규모로 의진(義陣)을 결집하여 회맹(會盟)을 하고 서울로 북상할 계획을 세웠으나, 국왕의 해산 조칙으로 1896년 봄을 전후하여 해산했다. 

기우만 선생이 일으킨 의병은 단발령의 철폐와 일제 축출, 개화 정책의 반대, 옛 제도의 복구 등을 내세웠다. 

또한 왕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체제를 유지할 것을 주장했으며, 의병해산 후에는 의병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1909년「호남의사열전」을 집필하여 의병의 활약상을 상세히 정리했다.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기우만(1846~1916), 박원영(미상~1896), 김익중(1851~1907) 선생을 2021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사진은 김익중선생 편지이다.(사진_국가보훈처)

다음으로 박원영 선생은 전남 광주에서 출생했으며, 자는 주옥(周玉), 호는 포류재(蒲柳齋)이다. 

강직한 성품과 기개를 타고난 선생은 노사 기정진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박원영 선생은 기우만 선생이 의병을 일으키자 바로 달려가 참여했고 나주에서 광주로 이동한 장성의병의 실무를 주관했으며, 의병이 해산된 이후 진위대에 체포되어 처형됐다. 

또한, 김익중 선생은 전남 장성 맥동에서 출생했으며, 선생 또한 노사 기정진의 가르침을 받았고 사람 간의 의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1896년 봄 기우만 선생이 의병을 모으자 무장을 강화하기 위해 평소에 교류가 있던 포수들의 참여를 독려했고, 자신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나주와 광주를 오가며 활약했다. 

이후 정미조약으로 전국적인 의병 봉기가 일어나자 1907년 기삼연 선생을 중심으로 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에 참여했다.

회맹소 의병들은 거점을 마련하려 고창읍성을 공격하여 점령했고, 선생은 고창읍성을 탈환하려는 일제의 습격에 맞서다 전사했다.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기우만(1846~1916), 박원영(미상~1896), 김익중(1851~1907) 선생을 2021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사진은 광주향교 전경이다.(사진_국가보훈처)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기우만 선생에게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 박원영 선생에게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 김익중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송상교 기자  sklove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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