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 1994년에 대표적인 의학사전인 Dorland’s Illustrated Medical Dictionary 에 쓰여 있는 암의 정의는 ' a neoplastic disease the natural course of which is fatal', 우리말로는 '치명적인 자연경과를 보이는 신생물'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정의상, 치명적이지 않은 것은 암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조기진단의 수단이 없던 시절, 암은 환자들이 그 암에 의해 발생하는 증상을 인지하고 난 후에야 진단이 되었다. 증상을 일으킬 정도의 암은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라서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고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일부 환자들은 암으로 인해 사망한다.

갑상선암은 비교적 예후가 좋은 편에 속했지만, 과거의 갑상선암 환자들은 치료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Cancer Research UK에 따르면 영국에서 1981년 ~ 1985년 시기의 갑상선암의 5년 생존율은 남자가 59.1%, 여자가 62%로 매우 좋지 않았다.

1978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병원에서 발표된 논문에서는 림프절 전이가 있었던 환자들의 재발률과 사망률은 각각 32%와 24%, 림프절 전이가 없는 경우에는 재발률과 사망률이 각각 14%와 8%를 나타냈다. (Am J Surg 1978:136:107~112). 서울대병원의 자료를 보더라도 과거에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50%가 넘는 재발률을 보였다.

10여년 전만 해도 갑상선암으로 진단받은 많은 환자들이 암의 크기와 진행 정도에 상관없이 갑상선전절제술과 수술 후 방사성 요오드 치료까지 시행 받았다. 당시에는 그렇게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많은 사람들이 건강검진을 통한 갑상선 초음파검사를 시행하면서 작은 크기의 갑상선암 환자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국가 암 등록통계에 따르면 갑상선암 발생자 수는 2000년 3,400명에서 2012년에 4만 4,600명으로 12년 만에 12배의 기록적인 증가를 보였다.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2~3mm의 작은 갑상선 결절을 찾아내어 정확하게 바늘을 찔러 넣어서 갑상선암으로 진단하였고, 이는 뛰어난 기술을 나타내는 지표로 인식하였다.

​암에 대한 임상데이터가 쌓여 감에 따라 '암을 조기 진단하여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다'라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의학계의 상식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건강검진으로 인해 조기진단이 가능해진 현재에는 과거에 정의된 것처럼, 놔두면 치명적인 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다양한 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즉 매우 빨리 자라는 암과 천천히 자라는 암, 자라지 않거나 저절로 줄어드는 암이 모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에게 증상과 사망을 일으킬 암만 진단하고 치료한다는 개념이 생겼고, 그냥 두더라도 증상이나 사망의 원인이 되지 않을 암을 불필요하게 진단, 치료하는 것을 일컫는 암의 '과잉진단', '과잉치료'라는 개념도 등장하게 되었다.

과잉진단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경우는 첫째, 암이 매우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일생 동안 지장을 주지 않는 경우와 둘째, 그 암이 지장을 주기 전에 환자가 다른 원인으로 사망하는 경우다.

한 개인에서 이루어진 암의 진단이 과잉진단이냐를 밝혀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한 인구 집단에서 암의 과잉진단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예측하는 것은 비교적 용이하다.

사진_땡큐서울이비인후과 강경호원장

일반적으로 어떤 이유로 인해 특정한 암이 많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그 암이 진단되는 환자도 많아지고, 치료를 하더라도 모든 환자를 완치시킬 수 없으므로, 그 암으로 인한 사망도 따라서 늘어나게 된다. 그렇지만 암을 진단받는 환자의 수는 늘어나지만 그 암으로 인한 사망은 증가하지 않을 때에는 이론적으로 두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 환자가 증가하지 않지만, 더 많은 초기의 환자를 진단함으로써 환자의 수가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이 경우에는 실제 환자가 증가하지 않았으므로 이로 인한 사망률은 증가하지 않음. 초기의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한 것이 아무런 이득이 없으므로 과잉진단에 해당.

실제 환자가 증가하여 진단된 환자가 증가한 경우: 이 경우에는 그 암으로 인한 사망도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치료 기술이 향상됨으로써 낮아지는 사망률과 암의 발생이 많아져서 높아지는 사망률이 정확히 일치하여 사망률이 상쇄되어 사망률이 증가하지 않음.

두 번째 상황은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두 가지 상황을 정확히 구분하기는 힘들고 혼재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갑상선암의 경우 발생률이 급속도로 늘었지만, 사망률에는 변화가 없는 패턴을 보여 과잉진단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무증상 성인에서 갑상선암 검진을 위해 초음파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일부의 환자에서는 빠르게 자라는 암을 조기진단하여 치료받음으로써 질병의 중등도를 감소시킬 수 있겠지만, 더 많은 경우에 놔둬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작은 갑상선암을 과잉진단, 과잉치료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암 검진 권고안에서는 ‘증상이 없는 성인에서 갑상선 초음파검사를 시행하는 것은 권고하지 않으며, 수검자가 원하는 경우에는 검진의 이득과 위해에 대해 적절한 정보를 제공한 후에 검진을 시행할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고, 미국의 권고안(U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 Recommendation Statement)에서는 ‘무증상 성인에서 갑상선 초음파 검진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글/도움 : 땡큐서울이비인후과 강경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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