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난타 난 생모, 순직 소방관 유족급여·퇴직금·매달 유족연금 수령
28년간 연락 없던 친모, 보험금·보증금도 모자라 간병 도맡은 유족에 병원비 반환소송
천안함 사건, 세월호·마우나리조트 사고에도 ‘부모가 아닌 수령자’는 있었다

[시사매거진 269호] ‘제2의 구하라 사건’이라 불리는 일이 또다시 발생했다. 28년간 연락 없이 살던 친모는 딸이 사망하자, 딸의 사망보험금과 퇴직금, 생전 딸이 살던 집 보증금 등 약 1억 5천여만 원을 가져갔다. 생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딸의 투병 당시 간병을 도맡았던 새엄마와 이복동생에게 딸의 계좌에서 병원비와 장례비 등으로 사용한 5천 500여만 원에 대해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1월 24일 숨진 채로 발견된 가수 구하라의 영정(사진_뉴시스)

지난 27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 집중'에서 '제2의 구하라 사건'이라 불리며 논란이 된 사연의 유족, 이복동생 A씨가 인터뷰를 했다.

A씨에 따르면,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아빠, 엄마, 언니, A씨 자신까지 네 식구가 함께 살았으며 두 자매 모두 고등학생이 돼서야, 그들이 재혼가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재혼가정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들이 가족임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2014년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2019년 고인은 암 진단을 받아 투병 생활을 시작한다. 딸의 투병이 시작되자 A씨의 어머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1년 가까이 간병에 매달렸다.

‘가족’이 아닌 상속자

이날 인터뷰에서 A씨는 고인이 생전 “보험사에 알아보니(내가 죽으면) 보험금이 생모한테 간다더라. 내가 직접 가지는 못하니까 빨리 가서 수익자를 바꿔라”고 말했고, 이에 A씨의 어머니는 "연락 안 되는 분이지만 그렇게 못된 엄마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며 고인을 달랬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는 “수익자 변경은 정말 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 같아서 미뤘다”고 털어놨다.

그러던 2월, 고인은 A씨에게 ‘내일은 꼭 가야한다’했고 이에 A씨는 다음날 보험사를 찾았다. 그러나 상속자 변경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A씨는 "본인이 직접 가지 않아서 전화로 언니 운전면허증 번호 녹취를 해야 했지만, 그날 밤 11시쯤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28년간 왕래가 없었던 생모는 장례식장도 찾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생모는 고인의 사망보험금과 퇴직금, 집 보증금 등 총 1억 5천여만 원을 모두 가져갔다. 고인 재산의 상속권 절반을 가진 친부는 이미 사망했으므로 남은 가족에게 상속권은 없었다.

당시 생모는 고인의 병간호로 어려워진 A씨의 집안 사정을 고려해, 고인이 살던 집 보증금의 절반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그 후로 친모에게서는 연락이 없었고, A씨는 약속한 돈에 대해 약정금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친모는 유족이 간병비·병원비·장례비 등에 딸의 체크카드를 사용한 것을 두고, 상속재산에 손을 댔다며 유족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소송을 냈다. 여기에 더해 재산을 건드린 혐의로 유족에 절도죄 명으로 형사고소를 진행하지만,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된다.

A씨는 고인의 친모와 송사가 언니를 위한 일이 아니라 판단하고 2차 조정기일에 부당이득소송 취하 조건과 고인의 전세보증금 중 일부인 천만 원 미만의 돈만 받고 합의로 재판을 마무리했다.

A씨는 “저희 어머니랑 언니한테 고맙다는 말씀 안 하신 것에 대해 평생 죄책감 느끼시면서 떳떳하게는 못 사시길 바란다”는 말로 이날 인터뷰를 마쳤다.


상속자가 될 수 없는 ‘가족’

같은 날, A씨 측 변호인은 "상속재산 권리가 계모에게는 없다"라며 "억울하더라도 유족 측이 패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사건은 처음 친모의 약속과 유족이 그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에 약정금 반환소송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없는 경우라면 고인의 진짜 가족이던 유족은 법적으로 상속을 주장할 수 없다.

현행법상, 상속인은 피상속인과 혈연관계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상속을 받을 수 있고, 계모에게는 상속재산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혈육이라는 이유로 상속권자가 되는 것은 법 감정에는 부합할지 모르나, 현재의 국민 정서와는 맞지 않아 보인다.

민법이 제정되던 1958년은 전통적인 가족주의 제도가 강했고, 이혼율 역시 지금보다 낮았다. 따라서 부모가 자식에 양육의무를 게을리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2019년 1월 1일 ‘양육비해결모임’ 강민서 부대표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부의 양육비 피해 아동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양육비해결모임은 "양육비는 아이들의 생존권과 직결돼 있으며 고통받는 피해 아동이 100만 명이 넘는다"며 정부에 비양육부모대상 아동학대죄적용·운전면허 취소 및 여권발급 정지·신상 공개·국가대지급제도 마련 등을 요구했다.(사진_뉴시스)

그러나 2020년 현재는, 높은 이혼율과 이에 반해 낮은 양육비 지급이행률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곤 한다. 시대가 변한만큼 부모가 자식에 양육의무를 게을리하는 비율도 증가했다.

이로 인해, 몇십 동안 양육의 의무를 외면해오던 부모가 상속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경우가 발생하며 문제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순직한 故강한얼소방관과 故구하라양의 사연이 대표적이며, 이보다 이전에는 천안함 사건, 세월호 사고와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에서 ‘부모가 아닌 수령자’가 등장해왔다.


상속, 민법개정안 요구 ‘구하라법’의 발의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 해태를 상속제한 사유에 포함하려는 입법안'은 사실 지난 18대 국회부터 지속적으로 발의되어왔다. 그러다 故구하라양 사연이 공론화되면서 이 같은 민법개정안 요구는 '구하라법'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다.

일명 '구하라법'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랐고, 지난 4월 2일에는 범국민적 관심으로 국민청원사이트의 접속량이 폭주하며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해당 청원은 국민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며, 20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 올랐다.

그러나 20대 국회의 임기만료에 따라, 개정안은 상정되지 못한 채 심사 종료된다. 그리고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다시 대표 발의하며, ‘구하라 법’은 다시 한번 법사위에 오른다.

현재 상속결격 사유가 되는 이유는 피상속인을 살해한 경우나 상속의 선 혹은 동 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한 경우, 사기 또는 강박으로 상속에 관한 유언을 하게 하거나 철회한 경우, 상속에 관한 유언서를 위·변조 또는 은닉·파기한 경우 등으로 매우 제한적이다.

이에 기존 ‘민법 1004조 상속결격 사유’에 제6호로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으로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사람'을 추가 신설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지난 8월 11일 오전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故구하라 씨의 친오빠 구호인 씨와 순직한 故강한얼 소방관의 친언니인 강화현 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구하라법'의 통과를 촉구했다.(사진_뉴시스)

민법 1004조 개정, 반대의 의견

상속법 개정 반대 입장은 ▲법정상속인인 부모가 피상속인인 자녀에 대해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하여 상속인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도 아니지만, 반대로 법정상속이 아닌 사람이 피상속인을 부양하였다고 하여 상속인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자칫 피상속인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는 상속인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를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속결격 요건에 따라, 부양의무에서 자유로운 다른 친족이 직계존속보다 상속 우선순위를 점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른 이유로는 ▲부양의무이행을 상속결격 사유로 본다면, 어느 경우가 부양의무 불이행인지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8년 2월 선고된 '2017헌바59‘ 결정에서 '부양의무를 이행하는 방법과 정도는 각 가족의 생활상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부양의무 이행의 개념은 상대적이며, 따라서 이를 상속결격 사유로 규정하면 결격 여부를 판단하기가 곤란해져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해질 것'이라 우려한 바 있다. 이처럼 모호한 판단 기준은 법적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

또한, 현행 민법은 부양의무 이행 여부 등 따라 상속분 산정 시 고려할 수 있는 장치가 이미 충분히 마련되어있다고 주장한다. ▲민법 제1008조의2 제1항에 따라,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혹은 증가에 특별히 기여했을 경우, 기여분 제도 상속분 산정 시 해당 부분을 기여분으로 인정받는 것이 가능하다.

더불어 ▲민법은 유언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으므로 자녀는 생전 의사에 따라 증여나 유증을 통해, 부양의무를 다한 직계존속에게 더 많은 비율의 재산을 상속할 수 있다. 이밖에도 ▲'부양비용상환청구권'에 따라, 부양의무를 이행한 부모는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다른 부모를 상대로 과거의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도 있다. 반대의견은 소수의 사례로 더 큰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는 법 개정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개정안 반대의견의 허점

반대의견 주장대로 개정안은 분쟁의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의견에도 허점은 있다.

▲민법 제1008조의2 제1항에 따라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혹은 증가에 특별히 기여했을 경우, 상속분 산정 시 기여분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의 ‘특별히’가 매우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거 2014년, 대법원 판례는 부양의무를 다한 친모와 부양의무를 불이행한 친부와의 판결에서 ‘특별히 기여하였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25년간 혼자 자녀를 양육한 친모의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혼자 자녀를 양육했다면 ‘특별한 기여’라 주장할 것이고, 반대로 누군가는 재산증식·유지에 양육은 ‘특별한 기여’라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특별한 기여’는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기여분 제도의 명확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민법이 유언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 사실만으로 피상속인의 의사를 고려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유언이 널리 이용되는 분위기가 아닐뿐더러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될 경우, 유언 없이 상속이 개시되기 때문이다.

또한, 민법 제1061조(유언적령)에 따라 만 17세에 달하지 못하는 자는 유언능력이 없으므로 유언을 통한 상속문제 해결은 적절한 장치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해외사례

이미 해외 각국에서는 ‘상속권 박탈’ 혹은 ‘상속결격’의 형식을 취하는 입법례를 통해, 상속제도의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먼저 스위스는 '가족법상의 의무를 현저히 해태한 경우' 상속권 박탈을 인정한다. 중국은 ‘피상속인을 유기한 경우’ 상속권을 박탈하는데, 여기서 유기는 형사상 유기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고의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피상속인이 곤경에 빠지는 경우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2008년 통일상속법(UPC)을 개정한 미국은 부모의 '부양의무 해태'를 상속결격 사유에 포함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피상속인에 대한 의무를 현저히 해태한 자는 정황상 피상속인이 그 자를 용서했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상속자격을 잃는다'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가족의 의미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생계와 주거 공유'하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69.7%로 나타났다.(그래픽_뉴시스)

21대 국회 법사위 보고서와 회의에서는 ‘구하라법’에 대해, '법안 발의 취지는 공감하나,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며, 개정안 심사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사회는 ‘가족주의 시대’에서 ‘개인주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으며, 가족의 형태 역시 한 부모가정·재혼가정·조손가정·입양가정·대안 가정 등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1958년 제정된 현행 민법은 현재의 시대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만큼, 시대변화에 따른 보완책 강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여호수 기자 hosoo-121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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