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주 칼럼] 역사를 통해 본 국가안보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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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주 칼럼] 역사를 통해 본 국가안보와 평화
  • 편집국
  • 승인 2020.11.0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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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주 변호사
오병주 변호사

과거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요구 등으로 시국이 불안할 때마다 북한의 위협 등 국가안보 문제를 이슈화해 정권의 보위를 꾀한 바 있었다.

그러다 보니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우화처럼 정작 중요한 안보 문제 등에 국민이 무감각해지는 사례가 많게 되었다.

그러나 국가안보는 어느 정권, 그 누가 집권하든지 가장 중요한 기본 문제라 할 것이다.

4500만 동포가 타고 있는 국가라는 거대한 배에 경제력이라는 엔진과 스크루가 아무리 잘 돌아가더라도, 만약 안보라는 갑판에 물이 스며든다면 국가라는 거대한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좌초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과거 고려 시대 80만 거란 대군을 서희의 담판으로 물리친 바 있다. 역사학자들은 서희의 뛰어난 화술을 높이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국가의 위기는 어느 한 개인의 뛰어난 화술로 극복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서희의 뛰어난 화술로 발걸음을 돌린 거란은 그 후에도 계속 고려를 침입하곤 하였다. 서희의 뛰어난 화술에 의한 담관은 결국 미봉책이었던 셈이다.

거란의 침입으로부터 고려를 구한 것은 서희의 뛰어난 언변이 아니라 압록강 홍화진에서 쇠가죽으로 강물을 막아 적을 섬멸한 귀주대첩의 강감찬 장군의 군사력이던 것이다.

따라서 국가안보는 언변 즉 외교나 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라 '힘' 즉 국방력이 탄탄히 준비되어 있을 때만 확보되는 것임을 명심하고 항상 대비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나라를 뜻하는 '國'이라는 한자는 영토를 뜻하는 ‘口’ 안에 창을 뜻하는 '戈'와 백성을 뜻하는 ‘口’가 들어가 있다. 즉 영토 안에 백성이 편안히 살기 위해 무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武’라는 한자는 창을 뜻하는 ‘戈’와 멈춤을 뜻하는 ‘止’로 이루어져 있다. 역설적으로 ‘武’는 무기 즉 창을 멈추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즉, 힘이 있을 때만 무력을 멈추게 하므로, 힘이 없으면 국가안보와 평화는 이룰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K2 전차 1대가 80억 원, 즉 승용차 300대 값이다. F15 전투기는 대당 1000억,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은 대당 1조 원을 호가한다. 만약 대당 80억을 호가하는 K2전차나 대당 1000억 원대인 FI5 전투기가 20~30년간 활동하다가 실전에 한 번도 투입되지 못한 채 퇴역한다면 이는 낭비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고가의 무기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서 전쟁을 억지하였다면 그 효용 가치는 몇 배 이상 발휘한 셈인 것이다.

어떤 정치인은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고 하였다. 그 말이 타당한가?

노예는 주인에게 대적하지 않고 복종함으로써 평화를 보장받는다. 조선 말기 이완용은 당시의 강국 일본에 나라를 내어줌으로써 일본과 대적하는 대신 평화를 선택하였다. 그러면 노예와 이완용의 선택이 옳은 것인가?

진정한 평화는 힘을 기르고 준비하며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함과 불굴의 의지로써 외부의 부당한 침략을 단호히 배격하여 전쟁을 사전에 억제하고 자유를 수호할 때 비로소 쟁취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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