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총격에 12년 만의 민간인 사망…이어지는 의문점들

[시사매거진 268호] 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어업지도를 하다 실종된 공무원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뒤 불에 태워지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함에 피격 사망의 배경과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지난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국의 총에 맞고 사살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 당시 중단되었던 금강산 관광은 현재까지도 재개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이번 사건은 북측의 총격에 우리 민간인이 사망한 두 번째 사례로써, 국민들의 대북 여론 악화와 이에 따른 남북관계 경색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군은 24일 북한에 의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화장 사건과 관련, 해당 공무원이 북한의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라 해상에서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지기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연평도 어업지도 공무원 실종사건 관련 시간대별 재구성. (그래픽_뉴시스)

사건 개요

지난 9월 24일 군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21일 낮 소연평도 남방 2.2㎞ 해상에서 실종 신고가 접수된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공무원 A(47)씨가 이튿날 오후 북한 수상사업소 선박에 의해 발견됐다.

북측은 최초 발견 당시 어업지도선에서 A씨와 일정거리를 두고 방독면을 쓴 채로 표류 경위를 들었고 이후 A씨는 같은 날 밤 22시10분께 북한군 단속정에 의해 피격된 뒤 해상에서 불태워졌다.

군은 북한이 국경지대에 유입된 생명체를 무조건 사살하는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라 A씨에게 반인륜적인 만행을 저질렀으며, 이는 북한 해군 상부의 지시에 따른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북한군은 지난 7월 개성 출신 탈북민의 헤엄 월북 사건으로 경계 근무 태세를 강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 탈북민이 코로나19에 감염됐을 것으로 의심된다며 개성을 봉쇄하고 방역 비상체제를 선포했다.

게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상확대회의를 열어 허술한 경계 근무를 지적하고 처벌에 나서는 등 후속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전방 부대가 접경 지역의 특이 동향에 한층 강경하게 대응했을 수 있다.

정부는 이날 국방부 명의 입장문을 통해 우리 민간인 사살 사건을 규탄하고 북한에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으며, 군 역시 23일 오후 유엔군사령부와 협의해 북측에 전통문을 발송하고 실종 사건 관련 사실관계 통보를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 2주년을 맞아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지만 그로부터 며칠 만에 민간인 피격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남북 합의 정신이 퇴색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 룸에서 남북한 현안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방부 ‘시간차 보고’ 질타…왜 이틀 동안 숨겼는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국방부의 공식 사망 보고가 뒤늦게 이루어진 것에 대한 집중 질타가 이어졌다. 국방위는 이날 오후 4시40분께 전체회의를 열고 해양수산부 어업지도 공무원이 연평도 인근에서 북한에 의해 총격, 살해당하고 시신이 불태워진 사안에 대해 긴급 현안 질의를 가졌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야당 첫 질의자로 나서 서욱 국방부 장관을 향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을 은폐했다고 얼마나 국민적인 문제를 많이 제기했냐”며 “7시간 동안 뭐했냐는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박 전 대통령을 공격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틀이 넘는 시간 동안 무엇을 했냐”고 쏘아 부쳤다.

그러면서 홍 의원은 “북한이 총살을 하고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태운 것이 22일 밤 10시10분이다. 이를 정식으로 국방부가 발표한 것이 오늘 오전 10시40분”이라며 “이미 그 전날(23일) 밤 10시10분에 기름을 부어 불태운 것까지 우리가 사실상 확인을 했다는 거다. 왜 한 이틀 동안 이걸 숨기고 있었냐”고 지적했다.

이어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 이틀 동안 공개하지 않고 있었는지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사안”이라며 “23일 새벽에 문재인 대통령이 녹화로 된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솔직히 얘기하면 수긍할 수 있다. 그러지 않고 이틀 동안 은폐한 다른 이유를 들면 국방부만 난처해진다”며 “말하자면 국방부의 직무유기”라고 강조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에 대해 “이 사건이 정말 사실인지 여부를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과는 상관없이 신빙성 첩보를 정보화해 신빙성을 높여나가는 노력을 했다”고 답했다.


무궁화 10호에 남아 있는 A씨의 슬리퍼. (사진_인천해양경찰서 제공)

文 종전선언, 묘한 시간차 오버랩

靑 “文대통령 유엔 연설은 15일에 사전녹화 된 것”

이어진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도 “23일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연설과 묘하게 시간이 오버랩되는 부분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북한이 한 만행은 4·27 판문점 선언을 위반한 것 뿐 아니라 후속조치인 9·19 군사합의도 위반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규탄만으로 되지 않는다. 응징 보복을 하거나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는 등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국회의원과 국방위원으로서 우리 국민을 북한의 만행에서 보호하지 못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여당 내부에서도 국방부의 뒤늦은 보고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건 발생과 발표 사이에 분명히 시간적 괴리가 존재한다”며 “23일 NSC 관계장관 회의가 긴급으로 열릴 정도면 굉장히 심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열었을 텐데 대통령의 연설에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은 안했냐”고 질의했고 서 장관은 “거기까지 논의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같은 날 오후 춘추관에서 브리핑에서 실종사고 관련 청와대 대응 상황을 시간대별로 설명하며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국민들께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실종 사건이 발생한 하루 뒤인 22일 오후 6시36분 실종사건 첩보와 관련한 첫 서면 보고받았다.

당시 첩보는 ‘서해 어업관련 직원이 해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해서 수색에 들어가 있고, 북측에서 그 실종자를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같은 날인 22일 오후 10시30분에 ‘북이 북한이 월북 의사를 밝힌 실종자를 사살 후 시신을 화장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이튿날인 23일 새벽 1시부터 새벽 2시30분까지 관계장관 회의가 소집됐으며, 이 회의에는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서욱 국방부 장관이 참석해 첩보의 신빙성을 분석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첩보에 대한 분석은 밤새 이뤄졌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22일 밤 10시30분에 사살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23일 아침에서야 대면보고를 진행한 것과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당시 첩보는) 신빙성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며 “익일 아침 신빙성이 높다는 첩보로 분석돼 대면보고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연계하지 말아주길 부탁드린다며, “유엔총회 연설문은 지난 15일 녹화됐고 18일 유엔에 발송됐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총회 연설이 23일 새벽에 공개됐을 뿐, 실종 사건 발생 당일(21일) 전에 이미 연설문을 녹화해 보냈다는 취지다. ‘연설문 수정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나’라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그렇다. 이미 발송한 뒤고, 이런 상황이 있을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시각 23일 오전 1시26분부터 16분간 제75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했다. 같은 날 새벽 1시부터 1시간30분가량 해수부 공무원 사살 첩보가 입수돼 관계장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를 두고 야권 등 일각에서 문 대통령이 관련사건 보고를 이미 받은 후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는 내용의 연설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피격 공무원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가 26일 오전 인천 옹진군 연평도 부근 해상에서 귀항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사진_뉴시스)

김정은 국무위원장 초유의 대남 사과

청와대는 25일 북한 측이 해양수산부 어업지도 공무원 피격 사건의 조사 경위를 담은 통보문을 보냈다고 전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가 우리 측에 보낸 통지문 전문을 소개했으며, 북한이 보낸 통지문에는 지도부에 보고된 해양수산부 어업지도 공무원 피격 사건 전말에 대한 조사 내용이 담겼다. 통지문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도 포함됐다.

김 위원장은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 병마에 위협으로 신모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한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주요 외신들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과를 긴급 보도했다. 미국 AP통신은 이날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이 남측 공무원 사살에 대해 사과했다며 신속히 그 내용을 전달했다.

특히 AP통신은 북한 지도자가 특정 이슈에 대해 남한에 직접 사과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AFP통신도 “김 위원장이 이번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남녁 동포들에 대해 사과했다”며 “이번 메시지는 북미 핵협상 교착 상태 여파로 남북 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나왔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여야의 평가는 엇갈렸다. 여당은 신속한 사과 표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야당은 여당이 가해자 편을 들고 있다고 각을 세웠다. 북한의 사건 경위 해명에 대한 진위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사살 사건 경위를 비교적 상세하게 해명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식 사과를 전함에 따라 남북 긴장 수위가 일단 더 높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하며, 북한이 우리 측의 성의 있는 조치 요구에 하루 만에 응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가 대화 국면으로 반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한동안은 긴장관계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군은 24일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에 의해 사살·화장 사건과 관련, 해당 공무원이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라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지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1일 실종 뒤 22일 실종 공무원이 관측, 피격된 황해남도 옹진군 등산곶 해안 인근에 떠있는 북한 경비정의 모습.(사진_뉴시스)

실족인가! 월북인가?

北 피살 공무원 친형 “정부가 방조했으면서 월북자 추정”

우리 군 당국은 전날(24일) 언론 브리핑에서 실종된 공무원 A씨에 대해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어업지도선에서 이탈할 때 신발을 유기한 점 ▲소형 부유물을 이용한 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식별된 점 등을 고려해 자진 월북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반면 북한 통전부 통지문에는 A씨가 소속을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한두 번 밝히고 2발의 공탄을 쏘자 놀라 엎드리면서 도주할 듯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군 당국이 A씨가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을 식별했다는 부분과 모순이 된다.

군 관계자는 전날 브리핑에서 A씨의 월북 의사와 관련해 “수사 결과를 봐야한다”면서도 “지금까지 정황만으로는 자진월북을 시도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정보 출처에 밝힐 수 없다”면서도 “근거 없이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할 근거로 북한 통신신호를 감청한 첩보 등으로 이를 통해 A씨와 북측의 대화내용이나 북한군의 대처 상황 등을 상당 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씨의 유가족은 물론 동료들 역시 A씨의 월북 징후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는 목포소재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해양수산서기로 실종직전까지 어업지도 업무를 수행중인 것으로 파악됐으며, 두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에 따르면 본연의 업무 외에도 시간을 내 드론 조종 자격증을 따고 동료들과 봉사활동을 함께 다니는 등 성실한 공무원이었다고 밝히며, 자진월북, 가정사, 금전문제 등의 치부를 드러내 짓밟고 있다고 주장했다.

A씨의 친형으로 알려지 이모씨는 26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정부가 동생을 월북자로 추정하는 것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씨는 김 위원장과 비공개 면담을 갖고 기자들과 만나 “자기들(정부)이 방조했으면서 역으로 동생을 월북자라고 추정을 해버린다”며 “이 부분 관련해서는 군이나 국방부에서 반드시 해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자들 앞에서 “그동안 단 한 사람의 서해 어업관리단 상황도 보고하고 소통한다지만, 군이나 국방부 관계자 어떤 사람에게도 연락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월북은 계속 주장하면 월북 방조가 된다. 차라리 남측에서 사살하든지 체포를 해야 하는데 왜 북으로 넘어가 죽임을 당해야 하는지 저는 그것을 말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오늘 김종인 대표(비대위원장)를 만나 동생 시신 수습을 정부 측에 요구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평도 인근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현안보고를 위해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사진_뉴시스)

청와대는 26일 현재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남북 공동조사’ 카드를 꺼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례적 사과에도 ‘시신 훼손’ 등 사건의 핵심 사안에서 남북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논란이 가열되자 신속한 의혹 해소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공동조사를 대화 복원의 계기로 삼으려는 포석도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북측이 공동조사 제안을 받아들일지가 관건이어서 진상 규명 및 대화 국면이 제대로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김민건 기자 dikihi@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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