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표 화가, 회화의 아나키즘에 대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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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표 화가, 회화의 아나키즘에 대한 길을 묻다
  • 서봉섭 기자
  • 승인 2020.10.11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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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표_디오니소스춤3_캔버스에 유채_162.2×390.9cm_2020
김상표_디오니소스춤3_캔버스에 유채_162.2×390.9cm_2020

[시사매거진] 김상표 작가는 삼례문화예술촌(대표 심가영, 심가희) 모모미술관의 초대를 받아 11월 1일(일)-14일(토)까지 7회 개인전을 개최한다. 김상표 화가는 이번 전시회의 제목으로 ‘나는 아나키즘이다:회화의 해방,몸의 자유’라는 매우 낯선 주제를 들고 나왔다. 그 이유를 묻기 위해 작가의 연구실이자 화실인 Gallery Parrhesia를 찾았다.

김상표_아나키즘2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김상표_아나키즘2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김상표 작가의 7회 개인전인 모모미술관 전시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춤의 사유이미지를 빌어 회화에 가해졌던 기존의 규정들과 권력에 예속화된 몸을 철저히 해방시키고 시도한다.이러한 나는 태도는 결국 그것이 내용(주제)이든 형식(스타일)이든 예술에 대한 모든 정체성과 동일성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예술의 아나키즘 전통과 맞닿아 있다.내가 새로운 아나코 회화(Anarcho-Painting)를 실험하고 정립하는데 길잡이가 되어준 핵심키워드들은‘창조적 무(creative nothing)’와 ‘회화의 해방’그리고 ‘몸의 자유’이다.

김상표_아나키즘4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김상표_아나키즘4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이번 전시의 첫 번째 키워드인 ‘창조적 무’가 수행성으로서 화가-되기에서 중요한 이유는

“경영과 철학의 모험을 거쳐 예술의 모험에 이르는 나의 궤적은 리비도적 욕망과 몸에 등을 돌렸던 ‘주체’인 나를 다시 ‘개인’으로 돌려세우는 과정이었다. 이 개인을 니체의 말로 표현하자면, 몸 그 자체인 자기(das Selbst)이다.억압적,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에 의해 강제되고 훈육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수많은 나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길들여지지 않고 야생적으로 남아 있는 몸인 자기(잠재적으로 또다른 수많은 나들)가, 서로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기를 반복하는 장으로 내 회화는 불려 나와져 있다. 무엇보다 나는 ‘불합리와 무의미의 놀이 공’ 같은 창조적 무의 공백상태에 이르기를 욕망한다.”

김상표_푸른난장5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김상표_푸른난장5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이번 전시의 두 번째 키워드인 ‘회화의 해방을 기존의 회화 문법과 비교하여 설명한다면

“회화에 대해 이전에 선취되었던 모든 주의와 주장에 대한 판단중지를 요청한다.나의 아나코 회화는 다음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봄은 봄이 봄이다’라는 ‘봄의 나르시시즘’ 상태에서 지각대상에 전염된 채 감응에 겨워 온 몸으로 춤을 추며 그 표현대상의 강도를 선과 색의 리듬으로 질료적 감각덩어리에 담아내는 복합적 사건이 나의 그림이다. 이때 나는 스스로 자기조직화하는 욕망기계인 몸으로서 그림, 음악, 춤이 모호하게 혼재된 사건을 만들어내는 리좀적다양체이다.”

김상표_푸른난장8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김상표_푸른난장8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이번 전시의 세 번째 키워드인 ‘몸의 자유’가 김상표 작가의 회화에서 중요한 이유는

“내가 수행성으로서 화가-되기를 실연하는 과정에서 몸의 적극적 힘들은 정말로 신체를 하나의 자기 자신으로 만들고, 그 힘에의 의지는 자신을 우월하고 경이로운 것으로 만들어낸다. 신체가 품은 창조적 무의 변신의 힘, 즉 조형적 힘이 디오니소스적 권력의 활동성으로 드러나게 된다.요컨대 관념(혹은 의식)에 대한 신체의 고귀함과 우월성이 고스란히 담긴 자리에 나의 예술활동으로서 그림-사건의 흔적이 배어 있다.”

김상표_푸른난장6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김상표_푸른난장6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김상표 작가가 추구하는 아나코 회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결과물 없는 결과이자, 몸에 기입된 권력을 지워가는 자기 극복의 과정이자, 차이와 다양성의 생성의 놀이이자, 원초적 생명으로 복귀하는 운동으로서, 다의적 의미들이 교차하는 지점이 나의 회화이다. 이러한 수행성으로서 화가-되기 과정을 통해 나의 몸은 무거운 짐을 벗는다. 재현에 포박되어 있는 그림-기계이기를 거부하고 수많은 변신을 거듭하는 삶의 기계임을 선포한다.”

김상표_푸른난장12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김상표_푸른난장12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김상표 작가의 아나코회화가 발생시키는 정치적 효과가 있다면

“감상-주체에게도 원초적 신체를 떠올리게 하면서 그(그녀)를 감각과 사유의 무정부적 상태로 만든다. 원초적 몸(신체)에 배태된 아나키즘적리비도의 떨림을 경험함으로 인해 그(그녀)의 견고했던 정체성은 해체되고 말 위험에 처한다.”

김상표_푸른난장10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김상표_푸른난장10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김상표 작가가 추구하는 미학적, 윤리적 삶을 설명한다면

“우리의 삶을 규범화하는 권력관계들의 촘촘한 그물망이 교차하는 장소가 우리의 몸이다. 이것을 문제화하고 나와 타자의 예술적 주체성을 생산하는 미적 방안들을 창안하는 과정 그 자체가 나의 예술활동이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예술활동은 ‘기쁨의 저항’ 형식으로서 나의 삶의 존재방식이 될 것이다.”

김상표_무용수3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
김상표_무용수3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

서봉섭 기자 ppong7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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