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부터 근·현대기의 판소리 명창 64명에 대한 예찬한시, 관극시로 엮어

최영성 교수의 신작 판소리 창자 예찬 시 『판소리 명창, 한시로 읊다』(사진_도서출판 문사철).

[시사매거진/전북] 국내의 역대 판소리 예인(藝人)들에 대한 예찬시(藝讚詩)를 관극시(觀劇詩) 형태로 엮은 『판소리 명창, 한시로 읊다』 가 도서출판 문사철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음을 알렸다.

국립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최영성 교수의 신작으로 출간되는 『판소리 명창, 한시로 읊다』 는 국내 국악계의 명인 명창들 64명의 음악적 특성과 예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예술적 개성들을 한시(漢詩) 관극시(觀劇詩) 형태로 풀어낸 책이다.

최영성 교수의 예인찬시(藝人讚詩) 신작이 특별하게 기대되는 이유는 현재 국내에서 발간된 그동안의 판소리 명창들에 대한 논의들이 대부분 국문학계에서 발간한 산문체 위주의 서술들이었다는 점에서 운문(韻文)의 관극시(觀劇詩) 형태로 엮어져 출간되는 21세기 최초의 관극시 64수가 엮인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관극시(觀劇詩)는 조선 후기, 판소리 등장과 함께 대중문화가 새롭게 시작되며 탄생한 것으로, 이 시기부터 민중들의 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담긴 시들도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를 주도했던 이들이 바로 실학파 지식인들, 특히 박지원(朴趾源) · 홍대용(洪大容) · 이용휴(李用休) · 이가환(李家煥) · 정약용(丁若鏞) 등이었다.

이들이 살았던 시기는 임진, 병자의 양대 전란 이후 유교적 신분질서가 조선후기에 이르게 되면서 점차 붕괴되는 과정을 거친 시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회적 관습과 가치체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고, 이때부터 양반 · 중인 · 악사 등이 각기 다른 위치와 신분 계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리에 둘러앉아 신분의 격차를 떠나 음악을 매개로 어우러지는 풍류놀음이 벌어지던 시대가 열려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낙하생(洛下生) 이학규(李學逵, 1770~1835) 등은 종래의 관념적 학문태도를 비판하고 새로운 현실적 사상을 제창했다. 또한,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던 것이 중인층 중에서도 다수의 한문학 문인들이 배출되며 시사(詩社)라는 동인집단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민중들의 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담긴 한시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인 바로 18세기 소론계 시인이었던 이계(耳溪) 홍량호(洪良浩, 1724~1802)의 시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정조21년(1797)에 위항시인들의 시선집인 『풍요속선(風謠續選)』에 쓴 「서문」 일부에서도 확인된다.

홍량호는 『풍요속선(風謠續選)』 「서문」에서 『시경』의 정신을 내세워 백성들의 노래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는 중국은 고대부터 민간가요를 채집하여 풍속과 정치의 득실을 살피는 전통이 있었고, 그런 각 국의 민간가요를 모아놓은 것이 바로 『시경』의 「국풍」 편이라고 보았다.

이후 소론계의 문인들은 이러한 전통을 이어 받았고, 이를 이은 대표적인 문인이 바로 19세기 소론계 시인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였다. 조선후기, 신위가 구축한 문학 세계는 홍량호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큰 틀에서 우리 고유의 노래에 주목한 부분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동인논시절구(東人論詩絶句)」로 우리나라의 시사(詩史)를 정리했다.

특히 「관극절구(觀劇絶句)」12수로 우리나라 민속예능의 연희를 찾아내어 보존하려는 노력에 혼신을 다했다. 이후 조선후기 판소리의 성립과 더불어 관극(觀劇) 시(詩)의 전형을 보여주는 두 작품이 등장했는데, 그 대표적인 기록이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觀優戱)」와 신위(申緯, 1769~1845)의 「관극절구십이수고(觀劇絶句十二首考)」였다.

신위의 「관극절구십이수」는 칠언절구의 12수로 판소리 「춘향가(春香歌)」의 연희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자료에서는 판소리가 창극으로 변모하기 이전 시기의 극에 대한 감상뿐만 아니라 연희의 장면, 무대의 정경, 그리고 관객의 모습 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하지만, 판소리 본래의 열두 마당이 현재의 다섯마당으로 줄어들게 된 것은 평민적 기반 위에서 발달해 오던 판소리가 18세기 말 이후 양반, 부호층의 청중을 획득하게 되면서 그들의 기호를 의식하고 그들의 기호를 반영하며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실전된 일곱 마당 대부분이 평민적인 해학과 풍자에 철저하였던데 반해, 전승된 5가는 평민적 현실주의와 중세적 가치의식이 공존하는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실전된 이유를 짐작케 한다.

실제로 판소리 창자들은 전승적 이야기의 골격을 그 근간으로 삼되,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부분을 더늠으로 확장, 부연하는 방식으로 사설과 음악을 발전시켜 왔다. 그에 따라 판소리는 이야기 전체의 흥미나 감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판소리나 판소리계의 소설에서도 앞뒤의 내용이 잘 맞지 않는다거나, 때로는 뚜렷하게 모순되는 일들이 흔하게 보인다는 점에서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신위(申緯, 1769~1845)의 「관극절구십이수고(觀劇絶句十二首考)」와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觀優戱)」, 윤달선(尹達善, 1822~1890?)의 「광한루악부(廣寒樓府)」 등의 감상비평에 대한 이해와 이들에 대한 기록은 있었지만, 현시대에 이르러 판소리 창자들에 대한 관극시(觀劇詩) 형태 한시집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현시대 최초의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최영성 교수가 착안한 관극시 역시 신위의 「관극절구십이수」가 칠언절구의 12수로 판소리 「춘향가(春香歌)」의 연희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동일하게 착안하여 시대별 판소리가 창극으로 변모하기 이전과 이후의 극에 대한 감상뿐만 아니라 연희의 장면, 무대의 정경, 그리고 관객의 모습 등을 현시대에 이르러서도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한학(漢學)에 뛰어나 이미 앞서 최치원(崔致遠)의 문집을 비롯한 「사산비명(四山碑銘)」 등의 품격 있는 명문장들을 유려하게 번역해 냈던 최 교수의 남다른 노력도 있었겠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시대를 뛰어 넘어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7)의 뒤를 이어 관극시의 전통을 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립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최영성 교수의 프로필 사진(사진_최영성)

최영성 교수는 지난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소리꾼도 아니고 귀명창도 아니다. 그렇지만 처음 송순섭(宋順燮) 명창을 기리는 시를 시금석(試金石) 삼아 지어보았던 것이 시작이 되어 나날이 늘어났다. 판소리 창자들에 대한 관극시를 지어 갈수록 손을 놓을 수 없는 무언의 힘을 느꼈다”고 소회했다.

덧붙여 “흥미도 있었지만,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어쩌면 ‘코로나-19’가 나에게 부여한, 과제 아닌 과제라고 생각했다”면서 “처음 코로나 사태 속에서 한동안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답답한 마음을 풀길이 없어 2월과 3월 두 달은 시작(詩作)으로 소일했다. 시를 짓지 않고는 하루를 넘기기 어려웠다. 시에 갇힌 ‘시수(詩囚)’의 생활이 계속되었다”고 시작(詩作) 과정을 밝혔다.

최 교수는 관극시의 시작에 앞서 역대 판소리 명창과 국악계의 명인 64명을 선정하고, 신위의 「관극절구」가 ‘12수’임에 주목하여 ‘64수’를 선택했다. 그것은 『주역』 육십사괘(六十四卦)의 숫자를 의미한다. 64괘는 인간과 자연의 존재 양상과 변화의 체계를 상징하는 일종의 기호다. 최 교수는 이 관극시 짓기에 시종(始終)해 지난 100일 여 남짓한 시기에 이 일을 해냈다.

그의 관극 예찬시(藝讚詩) 『판소리 명창, 한시로 읊다』에는 판소리 명창들의 일생을 축약되어 설명되어 있다. 또한, 추가로 해설문을 붙여 명인 명창들의 음악과 예술을 운문의 가락에 맞춰 그들의 업적이 율격의 리듬을 타고 더욱 명료히 만인의 뇌리에 추억처럼 각인될 수 있게 풀어냈다.

이러한 최 교수의 험난했던 작업이 지난 1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염병 경보 최고 위험 단계의 등급인 6단계 팬데믹(Pandemic)을 선언한 이후부터 시작된 고단한 ‘시수(詩囚)’의 생활이었다는 점에서도 너무나 뜻 깊은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어쩌면 어려운 여건이 오히려 또 다른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뜻 깊은 사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출판을 앞두고 있는 최영성 교수의 신작 판소리 창자 예찬 시 『판소리 명창, 한시로 읊다』가 어느 때보다 손꼽아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용찬 기자 chans0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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