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패스트힐링, 여섯 번째 인문학 ‘수제천’과 ‘동동’

정읍 수제천연주단의 공연 자료사진(사진-이금섭)

[시사매거진/전북] 한국문화예술교육사업연합회 정읍지부(지부장 이미정)의 패스트힐링(Fasthealing) 인문학 강좌 여섯 번째 강좌가 15일, 시암아트센터에서 ‘수제천’과 ‘동동’이라는 주제로 이금섭 수제천 연주단 예술감독의 강좌로 진행된 가운데, “아악의 ‘백미’ 수제천은 정읍사라는 백제가요를 반주하던 음악이 그 가사는 유실되고 오로지 독자적인 기악곡으로 발전한 것이 ‘수제천’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자리에서 이금섭 감독은 “정읍사는 백제가요 중 유일하게 전승되어 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 시가(詩歌)로 백제 시대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애창되며 음악곡으로 발전되어 고려시대에 이르러 무용반주 악으로 쓰이던 음악”이라고 밝혔다.

이 감독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대성악과 함께 당악정재(궁중정재)가 유입되었는데, 이에 영향을 받아 향제무고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때의 춤 반주 음악이 바로 ‘수제천(壽齊天)’이었으며, 현재에도 수제천은 통영의 승전무와 울산의 처용무 등에서 창사와 반주음악으로도 계승되고 있다.

이러한 성악곡이 조선시대 중종대에 이르러 정읍사의 가사는 떨어져 나가고 독자적인 기악곡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여민락(與民樂) 계통의 음악과 정읍, 영산회상 등의 궁중의 연향음악과 조회음악으로 쓰이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순조대(1828년)에 이르러 궁중악 ‘정읍’이 ‘수제천’이라는 별칭과 함께 궁중의 주요 의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다시 ‘수제천’의 아명이 다시 ‘정읍’이라는 음악의 정식명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정읍지역에서는 이러한 수제천이 바로 정읍이라는 지명과 함께 정읍지역에서 발원하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1996년 정읍문화원을 중심으로 ‘수제천연주단’이 발족돼 현재까지 약 20여 년 간 왕성한 활동을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최근 ‘수제천연주단’은 ‘수제천보존회’를 창립해 백제가요 정읍사의 음악적 계승과 백제가요의 추가발굴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며 타 도시와의 음악교류 등을 이어오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며 지난해까지 매년 6회에 걸친 정기공연을 진행해 왔다.

이 감독은 이날, 수제천의 별칭 ‘빗가락 정읍’ 또는 ‘세가락 정읍’에 대한 설명에서 “기존의 백제가요 정읍사를 반주하던 음악이 유일되어 오로지 독자적인 기악곡으로 발전한 것이 수체천”이며 “수제천의 별칭 ‘빗가락정읍’과 ‘세가락정읍’은 현악기를 왼손 무명지인 횡지(橫指)로 음을 잡아 연주하면 횡지정읍(橫指井邑)의 '수제천'되고 왼손 가운데 손가락 삼지(三指)로 연주하면 삼지동동(三指動動)이 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빗가락정읍’의 수제천과 ‘세가락정읍’의 동동의 원곡이 정읍이었으며, 이것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정읍’이라는 악명 대신 ‘수제천’으로 불리게 된 것이지만, 원곡 ‘정읍’은 지역에서 만들어져 궁중음악으로 발전했고, 향악곡 전체의 큰 축으로 자리해 왔다는 점에서 조전의 선비 음악으로 자리매김 되어 왔다고 강조했다.

조선 성종(成宗) 24년(1493)에 간행된 『악학궤범(樂學軌範)』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보인다.

“樂也者는 出於天而에서/ 㝢於人하고/ 發於虛而에서/ 成於自然 이니/ 所以使 人心의 感을 而動하고/ 盪血脈/ 通精神也라”.

즉 “무릇 악(樂)이라 하는 것은/ 천상에서 나와 사람에게서 표현되는 것이고/ 허(虛)한 곳에서 발현하여 자연스럽게 완성되니/ 이것은 사람의 마음속 감정을 움직이게 하고/ 혈맥을 뛰게 하며/ 정신을 통하게 하는 것이다”.

일찍이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은 선비들의 덕목을 ‘예악(禮樂)’으로 규정하고 다음과 같은 시로 예악의 덕목을 설명했다.

“桐 千年老 恒 藏曲(동천년노항장곡)/ 梅 一生寒 不 賣香(매일생한불매향)/ 月 到千虧 餘 本質(월도천휴여본질)/ 柳 經百別 又 新枝(유경백별우신지)”. 즉,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야 웅장한 곡조를 낼 수 있고/ 매화는 일생에 아무리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을 간직하고 있으며/ 버들가지는 백 번을 꺾여도 또다시 새로운 가지가 돋운다”.

정읍 수제천연주단 이금섭 감독이 패스트힐링(Fasthealing) 인문학 강좌 여섯 번째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정읍지부장 이미정)

이것은 『예기(禮記)』의 「악기(樂記)」에서 “대악은 천지와 더불어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大樂興天地同和), 대례는 천지의 조화처럼 질서가 있는 것이다(大禮興天地同節)”라고 하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이처럼 예(禮)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악(樂)이 수반되어야 하고,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시(詩)처럼 곧은 절개의 선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호남의 역사와 문화가 한국의 문화사적 가치로 남는 이유는 호남의 선비들이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양심의 모범이 되었기에 훗날 이순신 장군도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찬과 함께 호남의 선비문화를 떠올렸을 것이다.

호남 선비의 표상은 늘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부를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의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선비는 충의(忠義)의 관념 속에서 예(禮)와 의(義)를 위해 지조(志操)를 지키며 불의(不義)와 타협하지 않는 선비정신을 통해 음악이 발전할 수 있었고, 현재의 무형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 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날 이금섭 감독의 인문학 강좌는 더욱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한국적 가치라는 점에서 1971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세계 민족음악제(PARIS)에서 극찬과 함께 최고의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수제천’이 다시금 전국민, 전세계 국민들에게 호응과 격려를 받는 최고의 음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용찬 기자 chans0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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