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위기 극복 대안으로 ‘화해성(和諧性)’ 제안
전북도립미술관 문리 학예연구 실장의 ‘창작의 희열과 현실의 벽’에 대한 대안

『현대미술, 개판 오분전』 표지(사진_교보문구)

[시사매거진/전북] 코로나-19 바이러스(Coronavirus)로 직면한 팬데믹(pandemic) 상황이 2007~2008년의 세계적 금융 위기 시기의 뉴노멀 시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듯 사회 곳곳에서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의 이런 위중한 상황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그동안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던 현대미술계에 대한 담대하고 사려 깊은 통찰력이 녹아있는 책이 출간되어 화제다.

전북도립미술관 이문 학예연구 실장이 그의 미국식 필명인 ‘문리’로 출간한 『현대미술, 개판 오분전』이 그것이다. 이 책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은, 현대미술이 이미 순수형식의 실험과 결별한 지 오래였다는 점에서나 역사와 정치·사회·문화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글쓰기로 시도되었다는 점에서도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 책의 1장 ‘새벽이 온다’에서는 탄핵정국, 오송회 사건 등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부조리하게 시대 풍파를 감당해야만 했던 이야기 속에 미술을 녹여낸 글들이 모였다. 작가는 현대미술은 이미 순수형식의 실험미술과 결별한 지 오래라고 보았다. 그것은 사회적 문제 속에서 예술이 생겨나고, 상처받으면서 진화해 가는 현실을 적나라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렇게 그렸다.

그런 사유 때문인지 첫 장 첫 구절부터 작가는 자신을 ‘촌놈’이라 규정하고 서구문화의 역사적 기초와 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양의 문화예술이론을 부문별로 접하며 그와의 관계성을 찾고자 했던 억지스러웠던 노력을 현실적으로 그렸다.

작가는 우리가 접하는 서구의 문화가 사회의 보편적 에토스(Ethos)로 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편승하며 추종하는 것을 유일한 선택지로 간주했던 것들에 대한 반성이자, 미술가로서 세상 속에서 마주하고 나눈 독백을 기록으로 그려낸 것이다.

2장 ‘속 뜨거운 미술판 이야기’에서는 전북도립미술관의 학예연구 실장인 작가가 전시를 기획하고, 관객을 맞으면서 생긴 다양한 이야기와 현장 미술가들과의 내밀한 생각과 고민을 담았다. 직업적 화가란 배워서도 할 수는 있지만,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활양식 자체가 예술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창작의 희열과 현실의 벽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현실적 고민을 담았다.

작가는 전북대학교 학위과정에서 동양사상을 기초로 한 동서양의 표현기법을 포용하고 융합하여 제시한 화해회화의 개념과 태동을 연구하여 동시대 한국미술의 위기 상황과 한국회화의 인식을 개괄하는 연구논문으로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작가는 이 장에서 동시대 미술가들의 성과 중에서 비중을 두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유로운 조형 의식 속에서 그 기법과 장르를 확대해 나가는 기법을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동시대 미술가들이 자신의 예술 의지와 예술 활동을 좀 더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다면 모든 매체(媒體)와 기법을 동원하여 표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 예로 작가는 한국화에서도 매체와 표현기법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과 개성적 표현에 대한 창조적 실험을 지속해 왔으며, 이를 부단히 동양사상에 기초한 미의식과 일치시키고 고양하는 방법을 병행해 왔던 작업을 그 근거로 소개했다.

3장 ‘변방의 파토스’에서는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고한 글들이 모였다. 여기에는 작가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약 10여 년간, 현대사회 속에서 느꼈던 무력감과 자괴감을 담아낸 ‘순교자의 꿈’, ‘걸프 전쟁’, ‘비너스의 눈’ 등을 주제로 했던 개인전의 경험과 송수남, 이우환의 붓질과 수묵(水墨)에서의 물의 흐름을 유추했던 경험이 이 사업에 투영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전북도립미술관이 주체적 시각으로 아시아 현대미술을 바라보고, 기획전시 및 창작스튜디오에서의 인적교류를 통한 만남의 인연을 전북과 아시아의 미술가들을 전북으로 불러들여 교류와 연대를 강화해 나갔던 사업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겼다.

4장 ‘동시대 한국화 화해성(和諧性) 연구’에서는 서구문화의 역사적 기초와 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양의 문화 예술이론들을 부문별로 접하게 되면서 그와의 관계성을 찾으려 했던 작가의 억지스러운 노력에 대한 문제를 그렸다. 작가는 이와 관련해 특정한 지표 없이 흩어져 있는 동시대 한국미술의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화해성’으로 제시했다.

이것은 작가가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했고, 이를 위해 철저한 자기 절제와 겸양을 중시하는 화해작업의 태도가 동시대 한국미술이 지향해야 할 가치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작가는 화해회화의 ‘화해(和諧)’가 말 그대로 ‘서로 다른 것이 어우러진다’라는 의미에서 서로 경쟁 관계에 있지만, 서로가 겨루지는 않는 화해성을 제시한 것이다.

5장에서는 작가가 2014년부터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직을 수행하면서 개인적, 혹은 공무적으로 향했던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느낀 각 지역의 미술관과 서구 현대미술계를 현장 탐사하며 느낀 소감들이 담겼다.

이 과정에서도 작가는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의 입장에서 앞서 시도했던 동양회화의 화해성 확장 노력이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로 이어졌음을 소개하고 서구에서 다시금 시도됐던 화해성 확장의 다양한 논의들을 이 책에 담았다.

『현대미술, 개판 오분전』의 저자 '문리'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사진_문리)

이처럼 전북도립미술관 이문 학예연구실장의 필명 ‘문리’로 출간된 신작 『현대미술, 개판 오분전』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현대미술에 대한 통찰력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책이다. 특히 현대미술이 이미 순수형식의 실험과 결별한 지 오래라는 점에서 역사와 정치·사회·문화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글쓰기로 시도되어 이목을 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창작자이자 기획자·평론가로서의 주체적 시각으로 아시아 현대미술 현장의 내밀한 담론을 풀어내고 있으며, 동시대 한국미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현대미술의 대안으로 ‘화해성(和諧性)’을 제안하고 있다.

한편 이문 학예실장은 “현대미술을 공부하며 창작자가 미학과 예술론, 미술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결국 ‘따라 하지 않기 위함’이다”며 “이를 통해 창작자의 관점에서 창작의 지평을 넓혀가기 위해 이 책을 매개로 동양사상을 사유를 기반으로 하여 기법적으로는 열린 형식을 지향함으로써 대립은 하지만 서로 겨루지는 않는 화해성을 현대미술의 대안으로 제시해 보았다”고 창작 배경을 밝혔다.

이용찬 기자 chans0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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