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계절을 따라 어깨 위 무거운 잎들을 내려놓듯이

다시 제 팔에 푸른 이파리들을 피우듯이, 너를 향한 나의 사랑도 그렇다

저자 이제 | 출판사 행복우물

[시사매거진] 신작 '옷을 입었으나 갈 곳이 없다'는 표지부터 제목까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딘지 모르게 공허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옷을 입었으나 갈 곳이 없다'라는 문장은 분노, 슬픔, 공포, 불안, 그리움 등 특정할만한 감정은 없지만, 혼자 방 안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멍하니 응시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의 제목에 온 마음으로 동감하게 된다.

특히,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로를 해주려 애쓰거나, 교훈을 건네지도 않는다.

저자는 그저 덤덤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꺼내 보인다. 그리고 저자의 솔직함은 독자들의 비슷한 경험을 불러내서, 공감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방에서 몰래 담배를 태우려고 다른 방들의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던 밤, 나는 글을 썼다. 글엔 잘 알지도 못하는 당신이 자주 등장했다. 당시에 내가 했던 모든 것엔 전부 당신이 섞여 있었다…당신을 보며 절망하지 않고 눈물 흘리지 않았다. 그저 사랑했다.』-책 '옷을 입었으나 갈 곳이 없다'中

이번 신작은 이기준 디자이너의 보석 같은 'Jewel Edition'으로 우선 출판되었다. 표지 디자인은 책에서 저자의 사막여행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은하수나 유우니 사막을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이기준 디자이너는 양판면의 텍스트 기울기 달리한 본문과 변칙적인 타이포그래피 그래픽 아트를 선보인다.

손으로 편하게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기울여진 채 써진 글처럼, 기울여진 책은 눈에 자연스럽게 비친진다.

또한, 여타 백지 위에 까만 글자로 써진 보통의 책들과는 다르게 책은 하늘색 본문 용지 위에 파란 글자가 적혀있다. 실제로 책에는 유독 하늘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까만 밤하늘을 찾아 별을 피하기도 하고 별을 향해 손을 뻗기도 한다. 지는 해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달빛 아래서 담배를 태우기도 한다.

책은 단순히 디자인을 넘어 작가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소장 가치를 높였다.

독특한 독서 경험과 '이제'작가만의 감성을 느껴보고 싶다면 '옷을 입었으나 갈 곳이 없다'의 Jewel Edition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여호수 기자 hosoo-121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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