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기고] 리커버리 야구단 임용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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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기고] 리커버리 야구단 임용수 선수
  • 박희윤 기자
  • 승인 2020.08.19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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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이사장이 리커버리 선수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_헐크파운데이션)
이만수 이사장이 리커버리 선수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_헐크파운데이션)

5149리그의 의미는 '51%의 건강한 공동체가 49%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도우면 거기에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시너지가 나온다' 는 뜻에서 만들게 되었다.

리커버리 야구단 활동은 정신적 병으로 고립되었던 사람들이 약물 등의 중독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는 긍정 사례들이 늘면서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체계적으로 만들기 위해 작년 하반기부터 시범리그를 운영하고 올해 정식 리그를 만들게 된 것이다. 

특히 5149리그는 자신이 가진 각자의 재능을 가지고 리커버리 야구단을 도와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고립된 청년들이 회복 되어지는 사례가 늘어나며 5149리그가 탄생하는 원동력이 됐다.

5149리그를 통해 정신적·육체적으로 회복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의 회복을 돕고, 이러한 사회적 약자를 돕는 공동체 문화가 다른 여러 사회 분야에도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설립 취지에 맞게 5149리그가 연착륙해서 정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은 임용수 선수의 이야기다.

어릴 때 가정불화로 인해 어머니가 가출하고 아버지는 암으로 투병하시고 동생은 외국으로 입양되는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 후 저는 허름한 단칸방에 고립되어 방치된 채 노숙이나 다름없는 삶을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교회의 장로님들이 쌀이나 먹거리를 지원해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가 싫습니다. 

그러다 도저히 안되겠는지 장로님께서 바하밥집을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처음에 만나본 대표님이 무섭기도 하고 내가 왜 여기에 와있어야 하나 라는 생각에 도망쳐 나왔다가 1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금 장로님의 성화에 못 이겨 밥집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밥집의 무료급식 동역에 참여하던 중 대표님이 야구를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야구보단 축구를 더 좋아했던 저인지라 하기 싫었지만 거절하지 못해서 그냥 따라갔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터라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움직이는게 너무 싫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끌려가다시피 했다가 조금씩 재미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권혁돈, 한상훈 감독님들과의 훈련을 계기로 야구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펑고와 타격 훈련을 해보며 격려 받고 작은 것을 이뤄내는 성취감을 맛보고 야구의 매력에 흠뻑 취하게 된 것이죠.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3루와 테이블 세터를 담당하던 용수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투수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어떤 일에 대해서 희망을 갖고 이뤄내기 위해 노력이란 것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삶의 회복이 일어나고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 야구라는 스포츠가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훈련하던 중 리그후원경기도 해보고 거기에서 대단하신 분들도 만나고 짜릿한 경험을 하고 나니 다른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삶에 활력이 생기니 바하밥집의 일도 책임감을 갖게 되고 건강한 취미생활이 생기니, 컴퓨터 게임의 시간도 줄어 들게 되었고 건강도 조금씩 회복해 나갔습니다. 

야구에서 말하는 희생, 인내, 협동, 배려, 예의 이 5가지 가치와 파이팅은 사회에서 배워보지 못한 공동체성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밥집에서 스텝들과 공동체 사람들과 기존보다 훨씬 잘 어울리고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레 바하밥집에서의 꿈도 막연하게나마 꾸게 되었습니다.

바하밥집의 대표가 되는 것입니다. 허황된 꿈일 수 있지만 그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야구가 함께하고 있죠. 5149 리그 리커버리 팀과, 예온리커버리 팀에서 각 3루와 선발투수를 담당하면서 말이죠,

지난 시절에 임용수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청년이었습니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 보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보려는 본인의 의지를 비웃듯 꺾어버리는 세상 앞에서 용수는 결국 마포대교 다리 위로 향했다.

“그래 이제 그만 끝내자...” 그 순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의 자살소식 전화였다.

공교롭게 '본인보다 먼저 간 친구 장례는 치르고 따라가자'라고 생각하고 빈소를 찾았다.

친구의 유서에는 용수에게 남긴 메시지도 있었다. “먼저 가서 미안해. 혹시 너가 나와 같은 선택을 하려 한다면 5년만 더 살아보고 선택해” 죽은 놈이 죽을 놈에게 할 소리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친구의 유언인데 5년만 더 살아보자 결심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용수는 이야기 합니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아이였나 봐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그 누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생명이겠는가.

용수는 조금만 몸에 스트레스가 와도 온 몸과 얼굴이 몰라볼 정도로 붓는다. 제때에 병원에 가지 않으면 심장에 쇼크가 올 수도 있다고 한다.(현재까지도 여러번 응급실을 왔다갔다했다)

이런 몸 상태에 돌봐줄 사람도 없는 이 아이가 자살을 생각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어떻게든 도와야겠고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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