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에서 포기선언까지.. 이어지는 책임론과 법리다툼 예고

[시사매거진266호=김민건 기자] 국내 항공업계 내 메가급 LCC(저비용항공사) 탄생 기대가 물거품이 됐다. 제주항공이 23일 이스타항공과의 ‘노딜’을 선언하면서 전북 기반의 LCC 기업 이스타항공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사진_뉴시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최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는 지난해인 20191218일 주식매매계약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약 7개월간 매각 작업을 이어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이스타항공의 자금난이 심각해지고, 직원 체불 임금 등의 문제가 불거지며 M&A에 이상기류가 흐르는 모양새를 띄었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대형 합병무산.. 코로나가 결정타?

지난 12월 제주항공은 지난 12월 양해각서 체결 당시 이스타항공의 경영권 인수를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일은 실사 일정 등으로 미뤄지다가 지난 32일 제주항공과 이스타홀딩스는 이스타항공 지분 51.17%545억원에 인수하는 SPA를 맺었다. 제주항공은 SPA 체결일 연기와 관련해 불거진 'M&A 불발설'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며 굳건한 인수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석주 당시 제주항공 사장은 사내 메시지를 통해 "이스타항공 인수에 대한 우리 직원들의 우려가 크다는 것을 경영진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공급과잉의 구조적 문제를 안은 국내 항공업계는 조만간 공급 재편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라며, "우리 모두 힘을 모아 함께 도전하자"라고 임직원들을 독려한 바 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사태가 발목을 잡았다. 제주항공 역시 이스타항공 인수작업 중에 17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할 만큼 자금 사정이 나빠진 것이다. 실제 제주항공은 올 1분기 연결기준 영업손실 657억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고, 1분기 기준 현금·현금성 자산은 약 680억원에 불과하다.

제주항공은 지난 428일 해외 기업결합심사 지연을 이유로 들며 주식 취득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며, 전환사채(CB) 납입일도 기존 429일에서 630일로 변경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이 표면상 밝힌 이유와 달리, 코로나19 사태로 인수 의지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졌다.

제주항공은 지난 3월2일 이스타홀딩스와 체결했던 '이스타항공 주식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23일 공시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이스타항공이 출범 13년 만에 사라질 위기에 직면했다. (그래픽_뉴시스)

커지는 리스크.. 갈등 본격화

인수 리스크가 커져가는 상황에서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간 갈등도 본격화됐다. 이스타항공이 경영난에 2월부터 직원들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며 체불임금이 250억원가량까지 불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에 이스타항공조종사노동조합이 전 노선 운항 중단(셧다운)과 구조조정을 제주항공 측에서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진실 공방까지 이어졌으며, 이에 대해 제주항공은 비밀 유지가 필요한 계약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물론 왜곡된 발표를 했다고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감정 싸움까지 번진 상황에서 <영업일 기준 10일 안에 미지급금 해소 등 선결조건을 이행하지 않을 시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던 제주항공은 16일 입장문을 내고 "15일 자정까지 이스타홀딩스가 주식매매계약의 선행조건을 완결하지 못해 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됐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계약 해제 조건은 충족되었음을 밝힌다"라며, "다만, 정부의 중재노력이 진행 중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약 해제 최종 결정 및 통보 시점을 정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스타는 즉각 반박했다. 이스타항공 측 역시 같은 날인 16"이스타항공과 이스타홀딩스는 제주항공과 주식매매계약서 상의 선행조건은 완료했다"라며 "선행조건이 완료된 만큼 속히 계약완료를 위한 대화를 제주항공에 요청드린다"고 반박에 나섰다. 또한 "주식매매계약서상 의무가 아님에도 제주항공이 추가로 요청한 미지급금 해소에 대해서 성실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이 상반된 입장을 밝히자, 업계에서는 선결조건 항목 및 이행 여부에 대한 양측의 공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예견했다.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한 제주항공이 '주식 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공시한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 사무실에는 직원의 물건들이 그대로 남겨진 채 텅 비어 있다. (사진_뉴시스)

 

제주항공 결국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 의사 밝혀..

제주항공은 23일 이스타항공 경영권 인수를 위해 체결한 SPA 해제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면서 인수 포기 배경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와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인수를 강행하기에는 제주항공이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고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피해에 대한 우려도 큰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M&A가 결실을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라고도 전했다.

 

출범 13년 매각 작업 실패.. 1600명 직원 실직 위기

인수가 불발되며 사실상 파산 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이는 이스타항공은 이미 지난 3월부터 모든 국제선·국내선 노선의 운항을 중단하며 수익을 거두지 못했고, 2개월 이상 항공기를 띄우지 않아 운항증명(AOC) 효력마저 일시 중지됐다. 이스타항공의 올 1분기 자본총계 -1042억원으로 이미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이르렀고, 새 인수자를 찾을 가능성도 사실상 제로인 상태로 보인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스타항공이 법정 관리에 돌입하면 기업 회생이 아닌 기업 청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결국 출범 13년만에 공중분해 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2월부터 직원들에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며, 양사는 250억원가량으로 불어난 체불 임금을 놓고 책임공방을 벌여왔다. 여기에

이스타홀딩스 설립과 연관된 편법 승계, 자금 출처, 매각 차익 등과 관련된 의혹까지 불거지며 오너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스타항공이 파산하면 당장 1600명의 이스타항공 직원이 실직자가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도 실업 대란을 가장 걱정했고, M&A 성사를 위해 직접 중재에 나서기도 했지만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양사는 M&A 실패에 따라 이스타항공 직원들의 대량 실직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동시에, 계약 파기와 관련한 소송전에도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를 마친후 주주총회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_뉴시스)

국토부, 플랜B(대안) 마련 촉구

국토교통부는 23일 이스타항공이 스스로 경영정상화를 위한 대안(플랜B)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국토부는 브리핑을 통해 임금체불·고용안정 문제와 관련 이스타항공이 플랜B를 우선 마련해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이스타항공의 대량 실직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면서도, 정부 지원에 앞서 이스타항공의 자구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국토부는 "항공업계의 고용안정을 위해 6차례나 양측의 대표를 오가며 M&A 성사를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이스타항공에서 플랜B를 제시하면 정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돕는 순서로 진행하겠다. 직원의 고용안정 방안을 찾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간거래이기에 정부 개입의 한계를 토로하며, 만약 이스타항공이 파산할 경우 정부가 임금채권보장기금을 통해 지원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7개월간 이어져온 M&A 과정과 사상초유의 코로나19사태, 이어지는 갈등과 계약파기는 향후 치열한 법리싸움을 예고하며, 법정관리 수순을 앞두고 있다. 대량 실직 위기를 맞아 양사와 정부가 어떤 해결책을 찾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상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와 관련 "이스타항공의 플랜B 추진상황을 살펴보겠다"며 "근로자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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