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입법’의 우려

부동산법과 관련해 각 상임위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법안이 통과 되었다. 국토위 상임위 야당 의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사진_뉴시스)

[시사매거진 제266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가운데 관련법 개정이 모두 정부 입법이 아닌 의원 입법으로 추진된 것으로 드러났다. 거대 여당이란 이점을 앞세워 관련 제도를 신속히 정비한다는 차원이겠지만, ‘졸속 입법’의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로 인해 이번 주 예정된 공급대책도 실효성이 떨어지지 않겠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토교통위 6개 법안 통과

임대차 3법 중 핵심인 ‘부동산 거래신고법’이 국토교통위를 통과했다. 국토교통위는 지난달 28일 전체회의를 열고 부동산거래신고법 등 8개 법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미래통합당 소속 국토교통위원들은 협의 없이 일방적인 법안 처리에 회의장을 떠나 장외에서 항의하며 불만을 표시했다.

국토위는 이날 오전 간사 선임과 의사일정 순서 등을 놓고 시작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초선의 민주당 문정복 의원은 통합당 이헌승 의원이 야당 간사로 선임되는 것에 대해 “다주택자가 간사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야당 간사 선임도 표결로 처리할 것을 주장했다. 진선미 위원장은 “교섭단체 대표 간사위원은 각 당에 맡기게 돼 있다”며 문 의원을 막았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주택법 개정안 등 부동산 대책 관련 법안 상정과 심의부터 먼저 할 것을 주장하면서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통합당은 업무 보고도 없이 법안만 먼저 심의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여야 의원들이 충돌하자 진 위원장은 간사간 협의를 할 것을 요구하며 정회를 선포했다.

국토위는 오후 2시부터 속개됐지만, 민주당 간사인 조응천 의원이 ‘임대차 3법’ 중 하나인 부동산거래 신고법 등을 추가 상정할 것을 제안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다. 부동산거래신고법은 임대차 계약 때 임대계약 당사자, 보증금, 임대료, 임대기간 등 계약사항을 30일 내 시군구청에 신고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통합당 의원들은 불만을 제기하며 집단 퇴장했다. 그러자 진 위원장은 표결로 일괄 상정했고, 이후 관련 법안을 아예 의결해버렸다.

통칭 박상혁 법이라 불리는 부동산거래신고법은 이날 국토교통위 통과로 임대차 계약시에도 매매거래와 마찬가지로 임대계약 당사자, 보증금, 임대료, 임대 기간 등의 계약사항을 30일 내에 지자체에 신고하는 내용 등이 주요 골자다. 이날 통과된 법안 중 기존 4‧8년 아파트 매입임대 유형 폐지와 의무임대기간 종료시 말소하는 내용의 ‘민간임대 특벌법’도 국토교통위를 통과했다. 연일 검색 챌린지를 이어 가고 있는 조세저항 국민 운동의 한 축인 등록주택 민간임대사업자들이 반대하는 법이어서 국민 저항이 최종 관문까지 거셀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미래통합당 소속 국토교통위원들은 "여야 협의 없이 강행하는 의사일정과 법안 상장을 즉각 철회하"고 촉구했다. 국토교통위 상임위 전체회의에 참여했다가 전원 퇴장하고 이 같은 내용의 규탄 성명을 발표했으며 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 관련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알렸다. 미래통합당 소속 국토교통위원들은 “민주당이 청와대 하명에 따라 처리를 강행하려는 임대차 3법과 국민적 저항이 커지고 있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 등 민주당 법안 6건만 골라 전체회의에 상정·통과·강행을 시도한다”고 반발했다.

김은혜 국회의원은 "오늘 상정한 법안은 100% 여당 상정 법안"이라며 "간사간 합의 없이 긴급히 올려 놓은 여당 법안이 무려 2번이나 추가로 상정됐고 비슷한 내용의 법안의 경우에도 여당 것만 상정한다"고 주장했다.

진선미 국토교통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국회에서 통합당 위원들이 퇴장한 채 열린 국토교통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다.(사진_뉴시스)

기획재정위 3개 법안 일부 수정 의결

같은 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통합당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7·10 부동산 대책 후속 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기재위는 이날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종합부동산세법·법인세법·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이 법안은 정부와 여당이 그동안 발표한 부동산 세제 대책을 종합한 법안이다.

종부세법 개정안엔 3주택 이상 또는 조정대상지역 2주택 소유자에 대해 과세표준 구간별로 세율을 현행 0.6∼3.2%에서 1.2∼6.0%로 올리는 내용 등이 담겼다.

법인세법 개정안에는 법인이 보유한 주택 양도세 기본세율에 더해 매기는 법인세 추가세율을 현행 10%에서 20%로 상향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소득세법 개정안에는 2년 미만 단기 보유 주택, 다주택자의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율을 인상하고,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시 분양권도 주택 수에 포함하는 내용을 넣었다. 다만 분양권을 주택 수에 포함하는 시점은 내년 1월 1일 이후 신규 취득하는 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이들 법안은 통합당의 표결 불참 속에 의결됐다. 민주당이 이날 오전 부동산3법 상정을 밀어붙이고 의결 절차를 밟아나가자, 통합당은 “독재국가 의회의 상임위”라고 반발하며 전체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민주당은 통합당이 없는 상태에서 대체 토론을 이어간 뒤 일사천리로 부동산3법을 가결 처리했다. 민주당은 8월 4일까지 이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할 방침이다.

통합당 의원들은 국회 기자회견장으로 자리를 옮겨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기재위 소속 의원들은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민주당의 의회 독재가 도를 넘고 있다”고 했다. 기재부 출신인 추경호 의원은 “2020년 세법개정안을 보면 8월 12일까지 입법예고한 법안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받고 있다”며 “이런 절차들은 깡그리 무시한 채 의원 발의 법안을 상정해 날치기를 강행하려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의 말살이자 국민에 대한 무시”라고 비판했다.

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이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회의 진행을 위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여야 합의가 되지 않은 법안 상정 건을 의사일정에 추가했다고 밝히며 참석하지 않았다.(사진_뉴시스)

행정안전위, 4건 법안 핀셋 통과

행정안전위원회도 지난달 28일, 전체회의를 열고 정부조직법 등 4건의 법률안을 심사, 의결했다. 행안위는 안건에 오른 법안 66개 가운데 ‘정부조직법 일부개정안’,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안’, ‘지방세법 일부개정안’, ‘지방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안’ 단 4건의 법안만 ‘핀셋 상정’해 대체 토론을 거쳐 일부 수정 의결했다.

코로나19 대책을 위해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고 보건복지부에 복수차관제를 도입하는 「정부조직법」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의 금융지원을 위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계속되는 부동산 주택가격 상승을 억제하고 안정시키기 위한 「지방세법」을 상정했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생애최초 주택구입시 신혼부부에게만 취득세 50%를 감면해주던 제도를 실수요자 세부담 완화를 위해 연령과 혼인과 무관하게 취득세를 감면해주도록 하는 「지방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도 함께 상정했다.

행안위 소속 통합당 의원들은 “민주당이 국가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나쁜 부동산 법’의 상정을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지방세법 개정안은 발의된지 15일이 지나지 않아 국회법이 규정하는 법안의 상정요건도 갖추지 못한 미숙려 법안”이라며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군사작전 하듯이 밀어붙이겠다는 정부여당의 행태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김태흠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달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부동산 세법' 상정 강행에 항의하고 있다.(사진_뉴시스)

입법에 대한 우려

통상 법 제정 및 개정은 정부 입법 또는 의원 입법으로 추진된다. 행정부와 국회의원 모두 입법권자인데, 이 두 가지 입법 절차의 차이는 크다. 정부 입법의 경우 관계부처 협의-입법예고-규제심사-차관회의-국무회의 등을 거쳐 발의되는 반면 의원 입법은 일련의 과정을 생략하고 국회의원이 발의하면 된다. 국회의원 자체가 입법기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원 입법이 법 제・개정에 있어 위험 부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일방적으로 추진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정부 입법과 같이 규제심사를 받지 않는 데다, 공청회 등의 의견수렴도 생략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법안 발의 후 이해관계인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한다.

이번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여당 의원들이 입법 발의한 것 중 일부도 여기에 해당한다. 실례로 고용진 의원이 발의한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민원이 들끓자 기획재정부가 참고자료를 내 진화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양한 의견수렴 없이 정부의 강력한 정책을 그대로 받아 입법에 나선 데에 따른 부작용이다.

세밀한 검토 없이 마련된 정책의 허점은 입법과정과 실생활에 적용되면서 엄청난 파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집권 이후 안정적인 지지율과 지난 4월 총선 대승으로 탄생한 거대 여당의 오만함이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집값 급등에 따른 국민 불안을 진정시키고 정부의 집값 안정 의지를 시장에 확실히 전달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만 연일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오는 청원과 재산권을 개인의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헌법상 권리에 배치된다는 법조계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박희윤 기자 bond00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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