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가 폭력이 될 때 :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을 둘러싼 애도의 정치에 반대한다.

여성의당(사진_여성의당)

다음은 여성의당 성명서 전문이다.

우리는 ‘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을 기억한다.

1998년 당시 피해자를 무료로 변론하고 승소를 이끌어 낸 이가 인권변호사 박원순이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남성들에게 여성을 평등한 하나의 성으로 받아들이는 의식 전환을 가져올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성희롱을 당한 대부분의 여성이 대인혐오증세를 보이는 등 질환으로까지 발전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든 형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22년 후, 박원순은 성추행 피소에 얽힌 채 생을 마감했다.

지금 우리는 성희롱을 당한 여성을 변호했던 그의 마지막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반드시 되물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을 포함한 여권 인사들의 애도와 조문의 행렬이 이 질문 자체를 덮어버리고 있다.

정치권 인사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우리가 직면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여기에 피해 호소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2020년 7월 8일, 서울시장 전직 비서였던 피해 호소인은 서울 종로경찰서에 성폭력 범죄 특별법 제 10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박 전 시장을 고소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이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을 뿐, 박 전 시장이 ‘직장 내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묻어버린 채 ‘서울특별시장(葬)’을 결정하고 시민 분향소까지 설치했다.

이는 성범죄자 안희정이 모친상에서 취재진을 거절하지 않고, 조문과 근조화환으로 정치인들에게 공식적 애도를 받은 것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피해 호소인이 명확히 존재하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을 알렸음에도 아랑곳없는 586세대 정치인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개탄한다. 박 전 시장의 5일간의 ‘서울특별시장(葬)’에 대한 반대 청원이 올라오자마자 14만 명이 동의했다.

이 시대적 흐름에 눈과 귀를 막은 채 고인에 대한 예의만을 따지는 그들의 행보는 단연코 비정상이다.

죽은 자에 대한 애도가 산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마저도 압도하는 지금, 여성의당은 이 비정상을 진두지휘하는 정치권을 강력히 규탄한다. 또한 애도 삼매경에 빠져 피해 호소인을 지우려는 구시대적 정치인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한다.

피해 호소인의 신상털기 등 가해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 더욱이 피해 호소인이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있음을 알린 상황에서, 서울시청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내부 전수조사에 당장 착수해야 할 것이다. 

여성의당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접수를 통해 서울시청의 직장 내 성희롱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를 강력하게 촉구하여, 피해 호소인의 피해가 지워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 또한 제21대 국회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루어지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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