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부모 살해하는 존속살인은 부진정신분범
부모가 자녀 살해하는 비속살인은 일반 살인죄 적용
그럼에도 존속살해는 미국의 7배 달하는 수준…

[시사매거진=여호수 기자] 여행 가방에 갇힌 채 방치되어 숨진 아홉 살 A군 사건부터,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당하다 목숨을 건 탈출 끝에 구조된 B양 사건까지. 아동학대 사건이 연일 보도되며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피해 아동들에게 가해졌던 폭행은 결코 훈육 차원의 체벌이 아니었다. 그것은 건장한 성인도 견딜 수 없는 수준의 고문이었고, 결국 A군은 죽어서야 지옥같은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지난 2018년 08월 25일 오후 1시경 충북 옥천의 한 아파트에서 A(39·여) 씨와 그의 세 딸(10세, 9세, 8세)이 숨진 채 발견됐다. 한편 A 씨의 남편 B(42) 씨는 자해를 한 채 발견되었다. 사진은 폴리스라인이 설치된 A 씨의 집 현관문(사진_뉴시스)

가정내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패륜범죄

사전적 의미의 패륜범죄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를 져버린 채, 법규를 어기고 저지른 잘못'을 말하지만 우리사회에서 패륜범죄는 맥락상 전통가족윤리를 뜻하며 '가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지칭하곤 한다.

이때 피해자가 부모인 경우 가해자는 '패륜아'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피해자가 자식일 경우 가해자는 어떻게 불리게 될까? 딱히 정해진 수식어는 없지만 보통은 '비정한 부모'정도로 불리게 된다.

'오죽하면 그랬겠어', '그럴수 밖에 없었겠지', '부모심정은 어땠겠어?' 등 가해자가 부모일 경우 대중은 가해자의 처지에 일정부분 공감하며, 동정여론을 형성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곤 한다.

의사표현이 불가한 나이의 아동을 살해한 후 자살하는 부모에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례들이 이를 반증한다.

패륜범죄는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범죄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부모와 자녀 중 누구냐에 따라 부르는 명칭, 사회적 인식, 심지어는 형량까지 달라질 수 있다.

 


형법 제250조 2항 존속살해죄(사진_시사매거진)

아버지 이상의의 항렬에 속하는 친족, 자식의 부모살해 '존속살인'

존속살해죄는 형법 제250조 2항에 의거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죽이는 범행을 저지른 자에 대해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조상으로부터 직계로 내려와 자기에 이르는 사이의 혈족으로 부모, 조부모 등에 이른 조속과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하는 경우에 해당되며, 여기서 의붓어머니·의붓아버지를 살해할 경우 존속살해가 아닌 일반 살인죄가 적용된다.

보통 살인죄의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것에 비해 존속살해죄는 신분 관계로 인해 형이 가중되는 부진정신분범이다.

존속살인의 원인은 다양하다. 재산상속 혹은 생명보험금 등 금전을 위해 계획적으로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밖에도 과거 아동학대에 대한 복수, 오랫동안 부모에게 가지고 있던 내재된 불만의 우발적 폭발, 혹은 '간병살인'이라 불리는 심각한 사회문제까지 발생 원인은 다양하다.

존속살인을 떠올렸을 때 막연히 '박한상 사건', '김정균 사건'과 같은 극악무도한 패륜아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이는 존속살인사건 중에서도 이 같은 범죄는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경기도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는 40대 가장 A모 씨가 일가족 3명을 살해한 뒤 투신한 사건이 발생했다(사진_뉴시스)

아들 이하의 항렬에 속하는 친족, 부모의 자녀살해 '비속살인'

존속살인과 반대로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경우를 '비속살인'이라 한다.

그러나 비속살인은, 존속살인처럼 형법에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 살인죄가 적용되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자식이 부모를 죽일 경우 폐륜에 대한 엄중 책임을 물어, 가중처벌을 하는 반면 부모가 자식을 죽일 경우는 별도의 가중 처벌 규정이 없는 것이다.

비속살인의 발생 원인 또한 다양하다. 기사 초반부 나열한 사건들처럼 학대에서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 외에도 가정불화, 산후우울증, 생활고 등 사회문제까지 원인이 되며 발생하고 있다.

특히 생활고 등의 이유로 자녀를 살해하는 경우 '아이가 받게 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라는 그릇된 부모애가 발현된 결과는 잘못된 선택을 초래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이런 가해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여론이 많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자녀를 종속적 개념이나 소유물로 인식하는 후진국형 자녀관'이라고 지적한다. 더불어 '부모들에 의해 어린 생명이 숨지거나 유기된 것은,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5년 이후 2014년까지 10년간 부모 살인, 부모 폭행 및 부부 폭행 등의 패륜범죄가 총 9만 4766건으로 확인됐다.(자료_뉴시스)

 

가족 갈등의 원인

법은 일반적으로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반영한다. 유교사상에 뿌리를 둔 한국은 효(孝)를 중요시 여기며, 가족 간의 유대가 강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존속살해에 대한 가중처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존속 살해'는 미국의 7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높은 기대감과 압박, 자녀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등 오히려 너무 깊은 가족 간의 소속감이 가족 내 갈등의 주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높은 존속살해 비율과 해마다 증가하는 비속살해, 가중처벌 존패여부는?

존속살해 가중처벌은 현대국가에서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현재 우리나라 형법에 있는 존속살해법의 유래는 구 일본 형법으로 내려왔으나, 일본 역시 '1968년 자신을 상습 성폭행하던 아버지를 살해한 딸'사건을 계기로 법원이 이를 위헌으로 보고, 일반 살인죄로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으며, 결국 1995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 때문에 존속살해에 반대하며 폐지론을 주장하는 입장은 존속살해죄는 봉건적 가족제도의 유물로, 근대의 자연법사상에 따라 친자 관계 역시 평등한 개인 대 개인으로 고찰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출생은 선택권과 자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직계 비속이라는 이유로 가중처벌되는 것은 사회적 신분으로 인한 차별로 볼수 있기 때문에 위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법과 도덕은 구별되어야 하며, 효라는 도덕적 가치는 형벌에 의해 강제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존속살해죄에 대한 존치론을 주장하는 쪽도 분명 있다.

헌법상 평등의 원칙은 합리적 근거에 따른 차별까지 금지하는 것이 아니며, 존속범죄에 대한 가중 근거인 도덕적 의무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인륜의 기본이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존속살해죄는 비속의 패륜성을 비난하는 것이 요점이지 존속이 강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 아니며, 사회제도에 따른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보다 가족을 끔찍이 아끼던 이가 극도의 궁지로 내몰려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이유가 경재적 어려움이었든, 간병살인이었든 살인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패륜아' 혹은 '비정한 부모' 그 어떤 수식어를 달았다 하더라도, 그에게 법의 잣대가 달라져서는 안 될 것이다.

더불어 의사결정권이 없는 자녀를 무참히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부모에 대해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일 또한 없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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