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감추면 커진다' 어른들 나서야-'학원폭력' 충격보고, 예방 프로그램 구축 절실
초중고교의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왕따 등 학교폭력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학교폭력이 갈수록 교묘해지는데도 교육당국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학부모와 학생들이 각자 알아서 대처해야 하는 실정이다. 급우들의 폭력과 따돌림으로 뇌경색 증세를 보이는 중학생의 사례와 전학을 간 학생이 옮긴 학교에서도 폭력과 따돌림으로 시달렸다는 한 대학생의 고백 사례는 충격적이다. 경남 창원의 한 중학교 학생의 집단 따돌림 동영상물이 인터넷에 올라 문제가 되었고, 급기야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왕따를 비롯, 갈데까지 간 학교폭력의 실태와 해결책을 모색해 봤다.

최근 학교폭력에 관한 뉴스들을 언론 매체들이 잇따라 보도하면서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학교폭력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일상화되어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 한 조사에서 학교폭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한 초·중·고생이 응답자의 41%에 달해 그야말로 학교 폭력이 일상화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더구나 많은 학생들이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교사나 학부모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답하여 더더욱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비폭력 교실'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지만, 학교폭력은 다짐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학교폭력은 학교 문화로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왕따 사회문제로 부각
왕따는 더 이상 교실 내에서 벌어지는 청소년들의 단순한 장난에 그치지 않고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현재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등 민간단체와 시도별 교육청의 청소년상담센터 등 왕따 문제를 다루는 기구가 있지만 문제 발생에서 상담과 해결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이지 못해 실효성이 크지 않은 상태다.
영국에서는 ‘왕따=범죄’라는 인식이 자리잡아 정부 차원에서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제 국내에서도 교육부 등이 나서서 왕따 예방 교육을 하는 등 사회적 관심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왕따 문제 해결에 대한 사회적 표준이 없다 보니 피해 부모가 개별적으로 가해 학생들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려다 오히려 그르치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다. 무작정 가해 학생들을 불러 호의 등을 베풀며 ‘잘 지내달라’고 부탁하다 오히려 낭패를 보기도 한다.
피해 학생측을 더 우습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 부모가 상급생을 시켜 가해 학생들을 협박하고 나서는 경우도 역효과를 보긴 마찬가지다. 왕따 피해 학생들에 대한 치료를 담당해 온 정신과 전문의 김현수씨는 “왕따를 학생 개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면 심리 정신 치료밖에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왕따 현상에 대한 사회 전체의 관심을 당부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준호 교수는 “교사, 공무원, 경찰,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범정부적 차원의 기구를 만들어 왕따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등학교부터 조직화

초등학교 6학년 정모양(12)은 현재 일진회 회원이다. 정양의 학교엔 각 반마다 ‘짱’이 존재하는데 이들 짱은 모여서 ‘전교짱’을 뽑는다. 주로 오락실이나 노래방에 몰려다니지만 인근 중·고교 1진들과 함께 모임을 갖기도 한다.
정양은 “1진~3진의 서열이 확실해 6학년 짱이 4학년 짱한테 욕하고 때려도 아무 소리도 못한다”고 전했다. 초등학교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학원 폭력조직 회원들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대부분 그대로 유지된다. 이들은 여전히 학교 안팎에서 폭력과 ‘삥뜯기(돈 뺏기)’등을 일삼아 학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ㅁ여고 일진회였던 황모양(16)은 선배들로부터 학기중에는 1주일에 3만원, 방학때는 2만원을 모아오라고 지시를 받았다.
선배들에게 인사를 잘 안한다거나 연락이 안되면 어김없이 구타가 뒤따랐다. 황양은 “같이 활동하던 친구(16)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선배들에게 맞아서 온 몸에 멍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지역연합도 존재

한번 폭력 서클에 가담한 회원들은 졸업후에도 여전히 뭉쳐 다닌다. 특히 이들은 각 학교별 모임을 뛰어넘어 지역연합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확인 결과, 개별 중·고교 명의의 인터넷 커뮤니티는 물론 ‘강남연합’ 등의 모임도 일부 포털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커뮤니티에선 신고식, 일일 락카페 등 주요 공지사항이 전달됐고 예절교육 지침 등도 확인할 수 있었다. ㅅ중 3학년 정모군(15)은 “지역연합 중에는 가끔 모임을 갖는 수준도 있고 학교간 서열을 매기며 조직화하는 곳도 있다”면서 “학교의 짱끼리 모여서 싸움을 통해 서열을 정하고 지역연합을 결성해간다”고 전했다.

조폭과 연결

조폭과 학원 폭력조직과의 연결 고리는 경기 부천 일대에서 활동하다 지난달에 검거된 ‘부천 식구파’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조폭들은 지역내에서 잘 알고 지내는 고교 졸업생들을 통해 후배를 관리하는 것이 관례다. 이들은 후배들에게 조폭들이 운영하는 유흥업소에 놀러오게 한 뒤 술을 사주고 음란물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들 중 ‘싹수’가 보이는 고교생만 선별, 조직원으로 받아들인다. 서울 ㅅ고 이모군(18)은 “지난해 10월 (조폭)선배들이 친구들을 불러서 술을 사줬다”면서 “그자리에서 형님이라 부르라고 말해 그렇게 모시고 있다”고 밝혔다.

왕따는 범죄
영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학내 폭력과 왕따 현상이 심각해지자 교육부와 사회단체가 함께 나서 ‘괴롭힘 방지 캠페인(Anti-Bullying Cam paign)’을 추진했다. 왕따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며, 혼자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교육을 통해 강조했다.
교육부 산하에 정서장애학교란 특별교육기관을 두고 왕따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에 대한 별도의 인성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왕따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또는 ‘왕따를 당하는 피해자들에게도 책임이 크다’는 통념을 ‘왕따는 범죄의 한 형태’라는 인식으로 전환시켰다. 왕따의 발생률도 반 이상 줄였다.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도 70년대 말부터 왕따 예방 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으며, 쉬는 시간 등에 학부모들이 교내로 들어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해 왕따 현상을 사전에 방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실정은 학교내에서 일진회 등 폭력서클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정작 문제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미비하다. 사회단체 등이 상담고발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지만 피해 학생 본인은 물론 학부모, 학교까지 ‘창피하다’며 감추기에 급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폭력서클을 학교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로 인식, 예방, 갱생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예방 프로그램 필요

학교 폭력서클은 줄고 있지만 폭력의 수위는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학교내 폭력서클 적발건수는 2001년 34개, 2002년 79개, 2003년 21개로 감소추세다.
그러나 2002년 4월 친구를 괴롭힌다는 이유로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동급생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폭력성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2002년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학교폭력으로 징계받은 중학생이 4,187명, 고교생이 3,075명으로 학교폭력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교육학부모회 노원재 상담부장은 “폭력 학생들은 학내 사회 봉사활동 등의 징계를 받지만 학생들은 ‘며칠 놀다 오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한다”며 “실질적으로 학생들을 교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교조 김정욱 교사는 “폭력서클 학생들에게 갱생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인권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학교, 지역사회 연대를

학교폭력은 사회적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단순 일탈행동이라기보다는 사회공동체의 공동 문제다. 지난해 교육부의 학교폭력 설문조사에서 고등학생의 경우 경찰이나 가족의 도움보다 ‘친구, 선후배에게 도움을 요청’(34%)하거나 혼자 참는다’(14.1%)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현실성 있고 실효성이 있는 시행령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교육삼락회 강인수 교육협력위원장은 “법안 통과로 학생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핫라인’인 학교폭력 상담실이 마련되게 됐다”며 “그러나 법안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청소년상담사 등 전문가가 학교에 배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체대 김두현 교수는 “학생들의 폭력문제뿐 아니라 시설 안전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학원안전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폭력예방재단 김형래 부장은 “학교가 모든 문제를 떠안고 있어 법안이 실효성을 거둘지 의문”이라며 “학교폭력 피해는 ‘부천식구파’사례에서 보듯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 폭력서클은 처벌과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학부모들의 무관심과 무책임이 학원폭력을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왕따, 물증 잡은 뒤 사과 받아야
내 아이가 학교폭력를 당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대처법과 예방법을 알아봤다.
자녀가 폭행이나 왕따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금물이다.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송연숙 사무국장은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폭력을 당했다고 아는 순간 학교로 달려가 가해 학생이나 선생님에게 따지고 든다”며 이는 사태를 그르치는 최악의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부모가 해야 할 급선무는 증거를 확보하는 것. 가해자의 인적사항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당했는지를 듣고 자녀의 말을 뒷받침해 줄 친한 친구의 증언도 확보한다. 법적인 문제로까지 비화할 경우에 대비해 신경정신과나 외과 전문의 등의 진단서를 받아두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 단계로는 물증을 공개할지의 여부를 담임 교사외의 믿을만한 선생님이나 외부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한다. 교사는 학교로부터 근무평가를 받기 때문에 담임교사들이 문제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피해자 부모들은 공개 여부를 놓고 고민한다. 혹시 문제가 불거져 사태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전문가들은 “담임교사의 입회하에 가해 학생과 부모로부터 정식으로 사과받고 필요한 경우 치료비 등의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때 다수의 가해자나 부모들은 물증이 없을 경우 사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김교사는 “반드시 사건을 드러내고 공개사과를 받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스스로 왕따를 극복하게 하려면 우선 스스로 왕따를 당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게 해 본다.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가 제시한 ‘스스로 왕따를 극복하는 방법’은 피해 학생이 가해자에게 왜 자기를 찍었는지를 당당하게 그 이유를 묻도록 해야한다고 제시한다. 또한 짖굳은 행동을 할수록 웃고 여유를 가지며 그 아이에게 끝까지 부당함을 호소하는 편지 등을 써보게 하는 것도 좋다.
문제가 해결된 뒤에는 피해 학생과 부모가 전문 상담소를 찾아 치료를 받는게 좋다. 가해학생에게는 잘못을 지적하고 역할극 치료 등을 통해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알아보게 하는 등 심성훈련이 필요하다.
일회적으로 폭행을 당했고 가해자를 모를 경우는 우선 경찰에 신고를 하고 피해당한 장소를 피해다니는 것이 좋다. 자녀가 불안해하면 등하교시 부모가 당분간 동행해야한다.

정부, 폭력 가해학생 교육프로그램 추진

국무총리 청소년보호위원회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 선도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의뢰한다고 밝혔다. 청보위는 최근 심각한 청소년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학교폭력에 상습적으로 젖어 있는 가해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폭력을 가할 우려가 줄지 않고 있는데다 적절한 선도조치마저 미흡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가해 청소년의 품성 순화를 통해 사전에 예상되는 또 다른 폭력을 방지, 폭력 피해를 미리 막고 이들이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선도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키로 했다고 청보위는 밝혔다.
연구용역 내용으로는 외국의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선도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조사분석과 관련제도 조사,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가해 학생 대응방식과 교육적 대처프로그램 조사분석 등이다.
또 학교폭력 가해 학생을 위한 공통적용 프로그램 개발과 초중고등학생의 학생수준별, 학교 및 단체 등 사용 주체별 응용프로그램 개발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청보위는 이번 연구용역에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선도교육 프로그램의 현실태, 외국의 사례를 정확히 조사해 구체적 표준모델과 사례관리방안을 제안할 수 있는 인력 등이 구비된 정부출연기관, 대학, 민간연구기관 등 법인 또는 개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청보위 보호지원과 서정현 사무관은 “그동안 학교폭력은 피해 학생 위주의 프로그램만 개발, 실시해 왔다”며 “가해 학생에 대한 폭력재발 방지 등을 위한 적절한 선도 프로그램이 전무한 실정이었던 만큼 이번 연구용역을 통해 선도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범사업을 선정해 전국 학교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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