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과 비극, 꿈과 절망, 애원과 한탄이 뒤섞인…
인간의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을 고스란히 기록한 책
이 책을 읽지 않고 우리는 인간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저자 리하르트 폰크라프트에빙 | 옮김 홍문우 | 출판사 파람북

[시사매거진=여호수 기자] 전국이 ‘n번방’ 사건으로 시끄럽다. 잔인하고 충격적인 이들의 성범죄에 한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2020년 이 전에도 이름만 다랐던 수많은 ‘n번방’ 사건이 있어 왔다는 것이다.

대형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성 도착증이 얼마나 사회적 위험으로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경고한다. 국가를 운영하는 이들은 ‘처벌의 수위’와 ‘재발 방지’를 거론한다.

하지만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높은 형량은 결국 처벌 수단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사회는 성 도착증에 대한 담론 자체를 금기시하면서 정신의학과 법의학 관점에서 그들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학계의 노력은 부족하다. 이에 '성의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성범죄 창궐의 이유일지 모른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책 '광기와 성'이 국내 최초로 번역되어 출판됐다. 리하르트 폰크라프트가 1889년 집필한 이 책은 '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성이란 이런 것'라고 낱낱이 밝힌다.

인간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책은 발간 이후 격렬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얻으며, 일본에서는 판매금지 처분이 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도 정신병리학, 성 심리학, 법의학, 범죄인류학 최고의 바이블이라 불리며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프로이트, 칼 융 등 현대 정신의학자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동성애, 사디즘, 마조히즘, 호모섹슈얼, 페티시즘 같은 성 관련 현대 의학 용어들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성적 일탈과 정신질환의 관련성을 밝히는데 평생을 바친 폰크라프트에빙은, 최초로 성 이상 심리를 연구하여 '광기와 성'에 성 심리와 잔혹한 성범죄 198개의 사례를 담았다.

1880년대, 당시 정신 병동은 의료시설이라기보다 집단 수용소에 가까웠으며 환자들은 치료 대신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아야 했다. 책 '광기와 성'은 출판과 함께 정신질환의 원인 분석과 치료 대중화에 획기적으로 이바지하며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던 정신질환자들의 열악한 처우개선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폰크라프트에빙은 질환으로 인한 불가항력에 대해 항변하면서 환자를 변호하고, 환자의 처벌을 둘러싼 인권을 옹호하는데 역시 기여했다.

한편 프로이트는 성인 모두가 성도착증자라고 말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성의 타고난 진실을 감히 직시하지 못하는 사회, 퇴행기에 접어든 사회일수록 병적인 포르노그래피만 창궐한다고 강변했다.

학자들의 이러한 통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성 도착증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그저 비정상으로만 여긴다.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시대별로 달랐다. 가령 동성애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정상적인 사랑의 행위였으며 그 경계의 모호함 속에 우리가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담론을 금기시하는 것에서 나아가, 비정상을 단죄의 대상으로 여기고 사회 전체가 성 도착증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고 있는 점이다.

성범죄가 창궐하는 불온한 시대를 막으려면 보기 껄끄러운 인간의 불편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의 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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