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同雨 칼럼] 선거, 차악(次惡)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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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同雨 칼럼] 선거, 차악(次惡)의 선택
  • 이동우 전북논설실장
  • 승인 2020.03.3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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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전북본부 논설실장 이동우(정치학박사)
시사매거진전북본부 논설실장 이동우(정치학박사)

[시사매거진전북본부=이동우 논설실장(정치학박사)21대 국회의원총선거가 42일 제각기 당선을 향한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한다. ‘윈스턴 처칠민주주의는 나쁜 제도인데 인류가 더 좋은 제도를 발견하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여 한 때 선거관리위원회 건물에 게시되기도 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요체 중 하나가 대의(代議)정치이고 대의정치는 투표참여를 통해 자신의 의견과 이익을 대변해줄 대표자를 선출함으로써, 국민은 간접적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국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선거를 통하여 지난(또는 현) 정부의 사업과 정책들을 재평가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즉 오늘날과 같이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 불가능한 현실에서는 선거가 민주주의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선거가 민주주의에 있어서 갖는 중요성과 의미가 크다.

그러나 세상만사처럼 선거도 양날의 칼이다. 즉 선거 또한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서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마땅히 자신의 임기 중 실현가능한 공약,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공약, 오늘보다 내일을 준비하는 공약을 내세워야 한다. 후보자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례로 지난 여러 선거에서 한 동안 지속되던 소위 ○○대세론○○바람한 방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嫌惡)는 생각보다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사실 혐오도 조금의 애정이 있을 때 혐오의 감정이 있는 것이고 더 정확한 표현은 무관심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들이 한 번 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현대사회는 어느 누구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우리들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영향을 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바로 좋은 정치에 있다.

현대사회에서 선거는 다반사로 실시된다. 그 때마다 정치가 혐오스럽다고 무관심하게 되면 계속해서 악당(惡黨)들이 선출되는 악순환(惡循環)이 반복되게 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와 우리 자식들 몫이 된다.

민주주의 제도의 맹점(盲點) 중 대표적인 것이 선출직의 경우 유권자들은 출마한 사람 중에서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능력과 도덕성이 출중한 사람도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면 지도자로 선택될 수 없다는 것이 선출직 공직자를 뽑는 선거제도의 치명적인 맹점이다.

고대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플라톤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면 악당들의 지배를 받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했다. 정치가 혐오스러울수록 눈 부릅뜨고 좀 더 좋은 후보, 좀 덜 나쁜 후보를 골라서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몇 번의 선거를 치르면 아무나 출마할 수 없게 되고 최소한 공인(公人)으로서 기본 소양이 된 사람이 출마하게 되는 것이다(윤여준 전 장관은 지도자는 최소한 철저한 공인의식과 민주적 생활태도가 체질화 되어있어야 한다고 했다) 선거의 악순환이 선순환(善循環)으로 변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가 살고 있고 자식들이 살아야 할 세상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21대 총선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동안 한국정치와 정치인들이 너무 큰 실망과 상처를 남겨 절망스런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이 먼저 이번 선거부터라도 출마한 후보자 중에서 차악(次惡)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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