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의 연대기 '작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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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연대기 '작렬지'
  • 여호수 기자
  • 승인 2020.03.30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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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이 도시에서 폐허가 되기까지의 빛과 어둠의 연대기
그 폭발적인 번영의 시작과 끝이 불러온 폐허의 시간에 관한 기록
저자 옌롄커 | 옮김 문현선 | 출판사 자음과모음
저자 옌롄커 | 옮김 문현선 | 출판사 자음과모음

[시사매거진=여호수 기자] 권모술수(權謀術數)는 모략과 술수를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고자 꾀하는 술책을 말하는 고사성어이다. 또한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말했다. 원하는 결과만 얻을 수 있다면 과정이야 어찌 됐든 상관없다고 여기는 생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결국 발전과 부귀로 나아가는 길이라면 수긍하고 받아들여지는 중국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신작 ‘작렬지’를 소개한다.

책은 해마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호명되는 옌롄커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신작은 중국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뤘다는 이유에서 금서로 지정될 뻔했으나 출간 즉시 15만 부 이상 팔리며 작가의 저력을 확인시켰다.

작렬지는 산 폭발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터진다’는 의미로, ‘자례’라는 허구의 마을이 점차 대도시로 성장하고 다시 폐허가 되기까지의 빛과 어둠의 연대기를 그렸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자례에는 쿵씨와 주씨의 양대 파벌이 형성된다. 혼란의 시기에 누군가 주인공 쿵밍량의 아버지 쿵둥더에 누명을 씌어 촌장인 주친팡에게 고발한다.

이 일로 쿵둥더는 중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히게 된다. 쿵둥더는 네 아들에게 “지금 당장 나가서 각기 동서남북으로 걸어가. 돌아보지 말고 계속 가다가 무엇을 만나거든 허리를 굽혀 주워라. 그 물건이 평생 너희의 운명을 좌우할 게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둘째 아들인 쿵밍량은 아버지의 말대로 나가서 걷다가, 원수 주씨 집안의 딸 주잉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만남으로 자례의 파란만장한 운명이 시작된다.

쿵밍량은 마을을 지나는 기차에서 물건을 훔쳐 부를 축적하고, ‘만위안호(연 수입 1만 위안 이상인 부유한 가정)’를 육성하라는 정부 정책하에 새로운 촌장으로 추대된다. 촌장이 된 쿵밍량은 아버지의 원수였던 촌장을 마을 사람들이 뱉은 침에 익사시켜 죽인다.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본 촌장의 딸 주잉은 복수를 다짐하며 자례를 떠난다.

주잉이 떠난 후 마을은 전체가 공모해, 기차에서 물건을 훔치며 막대한 부를 쌓는다. 하지만 산업이 발전하면서 기차가 빨라지고 자례 사람들은 하나 둘 죽어나간다. 한편 도시에서 유흥사업으로 큰돈을 번 주잉은 마을로 돌아와 쿵밍량과 쿵씨 집안 사람들을 위기에 빠뜨린다.

작가는 ‘촌’에서 ‘진’으로, ‘진’에서 ‘성’으로, ‘성’에서 ‘시’ 및 ‘초대형 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은폐되었거나 함축되었거나 혹은 쓰이지 않았을 것들에 대해 기록한다.

책은 허구이지만 허구가 아니고 불타 사라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이야기를 통해 중국의 현실과 지난 역사가 가진 문제의 본질과 근원까지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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