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관련 협회‧법학회 등 “민관 정책 협업 필요”
금융사 수준의 요건 갖추고 영업 신고 의무
금융위, “특금법 개정안 시행령 마련할 때 민간 전문가 의견 수렴”
금융권, IT 발전과 금융규제가 상충할 가능성 제기
개정안, 소비자 보호에 관련된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시사매거진=임정빈 기자] 지난 5일 암호화폐(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인·허가제(조건부 신고제) 도입과 금융권 수준의 자금세탁 방지 의무 부과를 골자로 하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 )’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182명 전원 찬성으로 최종 의결되면서 법조계와 관련 업계는 일제히 환영입장을 밝혔다.

이번에 통과한 특금법 개정안은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을 기본으로 하며 암호화폐 사업자 정의, 가상자산 용어 통일, 사업자 관련 신고제 정비, 거래의 특성에 따른 특례, 시행일 및 사업자 신고의 특례를 다룬 부칙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금법 개정안에서 눈여겨볼 것은 기존 금융기관에만 부여하던 자금세탁방지(AML), 테러자금조달방지(CFT) 의무를 암호화폐 거래소 등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가상자산사업자(VASP)에게도 부여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에 따라 사업자는 실명확인 입출금계좌(가상자산 거래 실명제)와 ISMS(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 등 일정 요건을 갖추고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해야 한다.

가장 큰 쟁점이 됐던 실명확인 입출금계좌는 신고 수리 요건에 포함됐다. 실명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정으로 거래하지 않는 거래소는 FIU가 신고를 거부할 수 있다. 또한 신고없이 영업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다. 이에 따라 자금세탁·보이스피싱과 같은 범죄에 취약한 이른바 ‘벌집계좌’로 운영하는 거래소는 퇴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정안만 놓고보면 부족한점도 눈에 보인다. 암호화폐(가상자산)의 범위, VASP 범위,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발급 조건, 투자자 보호 등 구체적인 세부 내용은 시행령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업계의 장밋빛 기대와 달리 시행령 등 하위규정을 제정하는 과정이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암호화폐가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성장한 산업이기 때문에 금융규제를 적용하기가 애매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암호화폐 소관부처도 명확하지 않다.

그동안 암호화폐 거래소 해킹, 개인정보 유출 등 사이버 침해 사고가 발생하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해당 문제들을 담당해왔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 산업의 소관부처는 과기정통부인데 특금법의 소관부처는 금융위”라며 “하위규정 제정 과정에서 IT 발전과 금융규제가 상충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금융위는 특금법 개정안 하위 법규 마련 과정에서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와 민간 전문가 등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법조계 및 업계에서도 정부 방침에 공감하며 참여 의사를 밝혔다.

법조계 및 업계는 특금법 시행령 마련 작업과 금융위·금융정보분석원(FIU)이 실명계좌 개설과 ISMS 인증의무를 FIU 원장 재량에 맡기거나 일괄 강제할 경우, 중소형 업체들은 경영 불확실성과 경제적 부담으로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이는 곧 투자자 피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린 구태언 대표 변호사도 “현재 통과된 특금법 개정안은 실명계좌가 필요한 (규제)대상을 법으로 정하고 나머지는 허용하는 형태가 아니라 원칙적으로 모두 실명계좌가 필요하고 FIU가 면제대상을 정하는 포지티브 방식”이라며 “향후 네거티브 방식으로 ‘가상자산사업 신고시 실명계좌 면제규정’을 정하는 방안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위가 자금세탁방지가이드라인을 개정해서 은행이 실명계좌 발급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뒤, 함부로 실명계좌 발급을 거절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블록체인 기술 연구소 헥슬란트와 법무법인 태평양은 ‘가상자산 규제와 특금법 개정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권고안에 따른 특금법 개정안 및 시행령 마련은 투자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주목받고 있다”며 “하지만 뚜렷한 가이드라인도 없는 실명계좌 개설정책과 기업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ISMS 인증이 강제될 경우 중소형 가상자산사업자의 경제적·기술적·시간적 부담이 매우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국내 암호화페거래소 중 시중 은행과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서비스 계약을 맺은 곳은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4개이고,  ISMS 인증은 이 4개 거래소 외에 고팍스, 한빗코 등이 받았다.

한국블록체인협회 거래소 운영위원장인 한빗코 김성아 대표는 "오랜 숙원이었던 암호화폐 거래소의 법적인 지위가 확보됐다"며 "단기적으로는 거래소 시장 건전화와 신규자본 유입을 기대하는 동시에 투자자 보호 등 암호화폐 거래 인프라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중심 암호화폐 거래소 이준행 고팍스 대표도 "특금법 개정안 통과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을 정치적 찬반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며 "최근 ISMS인증 갱신을 완료하는 등 개발자 인력도 강화한 만큼 앞으로도 보안과 준법을 최우선으로 놓고 운영하는 가상자산거래소가 되겠다"고 전했다.

이번에 개정된 특금법은 공포 1년 후인 내년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따라서 금융위원회·금융정보분석원(FIU) 등 정부와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는 특금법 개정안 시행령 마련과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작업 등 후속작업을 1년안에 마쳐야 한다. 또한 기존 사업자들은 개정안 시행일로부터 6개월 안에 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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