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반역] 제 16장 불행한 사랑, 행복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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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반역] 제 16장 불행한 사랑, 행복한 사랑
  • 편집국
  • 승인 2020.03.0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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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아니었다.
제자는 몹시 지치고 수척해 보였다.

그리워 할 수 없는 그리움은 고통이다.
그녀가 아프면 난 더 아픈 것을!
머리는 차가웠지만 가슴은 뜨겁다.
난 늘 상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자신의 기만(欺瞞)!
대업(大業)을 목전에 두고 여심은 우레로 온다.
이 운명(運命)을 어찌해야 하는가?

(사야가 김충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1597312일 임인 )

거기 멈춰라!”

고함소리는 살기등등했다. 한양을 빠져나와 반나절을 달려왔던 곽재우와 김충선은 관도를 가로막은 한 떼의 무리를 발견하고는 말을 멈추었다. 일견하기에도 흉흉한 모습에 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 전란을 이용하여 도적을 일삼는 작자들이 분명했다.

멈추었소.”

김충선은 전혀 놀라지 않고 그들을 훑어보았다. 대략 삼 십 여명 가량이었다. 병장기가 주 무기이고 화승총을 소지한 위인도 다섯 명 정도 이지만 수적 우위를 믿고 있는지 겨누지도 않고 있었다. 앞장 서있던 인물이 거들먹거리면서 고개를 까딱였다.

이놈 보게. 멈췄으면 다음 순서는 번개 바람에 가랑잎 날리 듯 잽싸게 뛰어 내려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거 아니냐? 눈치가 이리 없으니 이 혼란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겠나? 쯧쯧, 걱정된다.”

곽재우의 표정에는 난감한 기색이 어렸다.

관도에서 화적들이 무리지어 양민을 노리고 있다니 정녕 심각한 노릇이오. 여기가 어느 관아의 구역인가?”

무리의 두목으로 보이는 사십 대의 털보 거한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동료들을 둘러봤다.

들었냐? 저 작자가 우리에게 어느 관아 구역이냐고 묻고 있다. 세상에! 내가 비록 이 짓으로 나선지가 석 삼 년이 되었지만 요런 물건들은 처음 본다.”

김충선은 여전히 마상에 버티고 앉아서 위엄 있는 목청을 터뜨렸다.

너희 화적 놈들에게도 귀가 있었으니 들었었겠지!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란 위명을 정녕 모르느냐?”

두목은 잠시 흠칫한 얼굴이 되더니 금세 콧방귀를 날렸다.

그래서? 저 작자가 홍의장군이라도 된단 말이냐? 카카카-- 그럼 난 권율이다! 그리고 내 뒤의.......통영에서 온 이순신이고... 그리고 누구야...저기 얼굴에 점 있는 놈... 저 자가 바로 명에서 온 마귀장군이다. 어떠냐? 굉장하지!”

재미있게 놀고 있구나.”

화적 무리의 두목이 벌컥 화를 쏟아 냈다.

장난치고 있는 건 네놈들이다! 내 아무리 무식하다고 해도 홍의장군님은 붉은 복장으로 전선을 누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 저 작자는 백의 차림이잖아. 저 하얀 옷을 네놈이 붉다고 지금 계속 우겨 대는 건 아니지?”

평상시의 장군님은 홍의를 걸치지 않으신다. 그건 전투시의 복장이지.”

흐흣, 그럼 이제 전투가 벌어질 것이니 어서 홍의를 착용하시지요...장군님!”

곽재우의 눈가에 노기가 어렸다.

나라가 어지러우니 도적이 날뛰는구나. 내 그대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부여 하겠다. 지금이라도 당장 동족을 괴롭히는 노략질을 그만두고 의군(義軍)이 되어 볼 생각이 없느냐? 내 너희들을 기꺼이 의병으로 받아주마!”

이거 오늘 제대로 돌아버린 물건을 만났네...그려. 제법 위엄 있는 것으로 보여. 그러나 어쩌나? 이 털보에게는 통하지 않으니까.”

화적 두목이 실소를 머금고 있을 때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

전원의 시선이 총소리의 행방을 찾아서 움직였다. 그러나 장내의 화승총을 거머쥐고 있는 자들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화적 두목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타앙! !’

그제야 관도의 고개 너머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뭔가 비명 소리도 터져 나왔다. 곽재우와 김충선의 얼굴이 순식간으로 급변하였다.

또 다른 변고가 발생한 모양이요

. 그리 보여 집니다.”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순간에 관도의 언덕 끝에 일단의 사람들이 보였다. 쫒기고 있는 형색이었다. 수 십명의 부녀자들이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달려오고 있었다. 간혹 사내들도 보였다. 그 뒤를 이어서 조총과 창, 칼로 무장한 군사들이 우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복장을 보니 왜군이었다.

어엇? 저거...일본군이잖아!”

어떻게 된 거야?”

화적들이 주춤 거리고 있을 때 김충선은 재빨리 말을 몰아 화승총을 지니고 있는 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빌립시다!”

총을 소유한 화적이 미처 방비하기도 전에 이미 그 총은 김충선의 손아귀로 넘어가 버렸다. 김충선은 즉각 심지에 불을 댕기며 멀리 조준을 하였다. 일본군이 달아나는 소녀의 등을 노리고 막 창을 찌르려는 순간이었다. 김충선의 화승총이 불꽃을 터뜨렸다.

이런 먼 거리에서는 사격이 어려운...?”

일본군이 정확하게 총격을 당하여 뒤로 나가 꺼꾸러졌다.

.”

김충선은 그 화승총을 돌려주고 다른 화적의 화승총을 요구했다.

어서 내게 주시오!”

다른 화적은 얼떨결에 자신의 화승총도 넘겨줬다.

계속 화약을 장전해요. 그리고 내게 총을 줘요!”

언덕을 넘어 추격해 오는 일본군 병사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곽재우가 호령했다.

우리 백성들이 왜적에게 살육 당하는 꼴을 보고만 있단 말이냐! 너희들도 조선의 피를 지니고 있다면 나를 따르라!”

곽재우가 질풍처럼 말을 몰았다. 당황한 것은 화적의 무리였다. 그들은 우물쭈물 두목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털보는 힐끔 김충선을 올려다보았다. 총성이 울리면서 이번에는 마주 총을 겨누던 일본군 조총병사가 피를 뿌리며 나가 떨어졌다.

와우, 백발백중일세!”

총구에 화약을 쑤셔 넣으며 화적 한 명이 감탄사를 뱉어냈다. 거의 백 보 거리의 표적을 정확히 관통한다는 것은 신기(神技)에 가까운 솜씨였다. 일본 사야가 가문의 철포대장 김충선의 실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털보가 돌연 부하들에게 소리 질렀다.

왜적부터 처치하자!”

와아--”

화적들은 이미 말을 몰아 달려 나가는 곽재우의 뒤를 따라서 병장기를 움켜쥐고 몰려갔다. 그들은 이 순간 잠시나마 화적에서 의병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었다. 일본군을 피해 도주해 오던 부녀자들과 아이들이 구원의 손길을 의식하며 소리 질렀다.

도와주세요!”

살려줘요.......우리 아이......”

새파랗게 질린 여인이 간난 아기를 안고 울부짖었다. 그 면전에는 왜적이 날카로운 장창을 그대로 찔러 버렸다. 소름끼치는 음향과 더불어 아기와 엄마는 창끝에 포획된 짐승처럼 꿰이고 말았다.

흐흐흐, 감히 어딜 도주해!”

왜적의 잔인한 미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앙칼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인마!”

단아한 차림이었으나 매우 흥분한 기색의 여인은 무섭게 환도를 내리쳤다. 왜적이 재빨리 피하자 그 칼은 잔혹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장창을 두 동강냈다. 창이 절단되자 왜적은 즉각 일본도를 꺼내 들었다.

끝까지 말썽이구나, 네 년을 당장 요절내고 말리라!”

왜적은 핏발선 눈으로 환도의 여인을 노려보며 일본도를 겨누었다. 그 순간에 번쩍 하는 섬광이 왜적의 눈앞에서 사선으로 그어졌다. 왜적은 미처 비명을 내지를 겨를도 없었다. 목이 떨어지며 피분수가 공중으로 분수처럼 뿜어졌다. 환도의 여인이 놀라며 몸을 도사렸다.

!”

홍의장군 곽재우였다. 그의 손에는 두툼하며 예리한 칼날이 햇살에 번뜩이는 치도가 들려 있었다. 그는 단숨에 왜적의 수급을 날려 버리고는 환도의 조선 여인을 응시했다.

다친 곳은 없소?”

...감사하옵니다. ...?”

그녀의 눈에서 이채가 반짝이는 순간에 곽재우도 그녀를 알아보고 있었다.

예지가 아니냐?”

....곽장군님이 여기에 어떻게...?”

장예지였다. 지난 해 병신년 김덕령의 죽음과 함께 잠적했던 바로 그녀였다.

우리 안부는 나중에 묻고 우선 왜적들을 물리치고 보자꾸나.”

곽재우는 다시 치도를 움켜쥐고 몰려오는 왜적의 선봉을 향해 말을 몰았다.

.”

곽재우를 잡아먹을 듯 마주 쇄도해 오던 선두의 왜적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꺼꾸러졌다. 김충선의 화승총이 미간을 관통해 버린 것이었다. 곽재우는 내심 그의 사격에 감탄을 토해내며 그 뒤의 무리들을 향해 질주했다. 장예지는 멀리 곽재우가 달려왔던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화적들이 저마다 병장기를 휘두르며 왜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너머 관도의 중앙에 우두커니 선 채 화승총을 겨누고 있는 사내 한 명이 눈으로 들어왔다.

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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