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노동자의 피, 땀, 눈물이 빚어낸 독창적이고 황홀한 텍스트
때로 실소가 터지고, 때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솟구친다.

저자 조제프 퐁튀스 | 옮김 장소미 | 출판사 엘리

[시사매거진=여호수 기자] 마흔 살에 데뷔하는 소설가에게 언론이 주목을 주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여기 프랑스 문단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 있다.

‘라인 : 밤의 일기’는 프랑스 출생의 작가가 고등사범학교 준비반에 들어가 문학을 공부하며 소위 말하는 ’엘리트의 벤치’에 앉았으나 그로부터 이십 년 뒤, 수산물 가공식품 공장과 도축장에서 임시직으로 일하게 된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소설은 오직 육체만이 자산인 노동자들의 고된 현실을 담았다. 책은 공장의 일상이 그러하듯 마침표나 쉼표가 거의 없이, 공장의 생산 ‘라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했다. 이 이야기는 소설인 동시에 서사시이며, 공장 일지이자 작가의 일기이다.

저자 조제프 퐁튀스는 파리 외곽에서 십 년 넘게 특수지도사로 일하다가 결혼을 하면서 모든 것을 뒤로하고 브르타뉴의 로리앙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전공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후 생계를 위해 취업한 곳에서 그는 매일 500킬로그램의 소라들을 15분마다 상자에서 비워 대형 화로에 넣어야 했고 도살장에서는 짐승들을 절단하고 난 뒤 피와 기름이 낭자한 자리를 청소하기도 했다.

어느 곳이든 라인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생산 라인의 속도를 맞춰야 했다. 휴식 시간은 고작 30분으로 그사이 재빨리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해야 했다.

짐승들의 피와 내장에서 나는 코를 마비시키는 악취, 밤낮으로 공간을 환히 밝히는 네온 불빛, 계속되는 반복 노동과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 그 안에서 인간이 아닌 기능으로서만 존재하는 자의 모멸감. 별안간 닥친 모든 것들을 견디기 위해, 작가는 글을 써야 했다.

무엇보다 노래 부를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무시무시한 속도를 견디기 위해 그는 멍한 시선, 굽은 등, 꾀죄죄한 몸으로 현실임이 분명한 악몽 같은 밤 속에서 텍스트를 매만지며 적절한 단어들을 찾았다.

저자는 육체와 정신을 훼손하는 노동을 노래와 문학에 위로받으며 견뎠다. 때때로 척추가 비명을 지르면 그는 보들레르의 시구로 이렇게 자신을 달랬다고 한다. '얌전히 있어다오, 오 나의 고통이여. 더 조용히 버텨다오.'

또 그는 어머니에게 '혹시 결국 이렇게 공장에 다니게 되다니/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요/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렇지 않다고는 못하겠어요/하지만 엄마가 모르는 건 바로 그 공부 덕분에/내가 그나마 버티고 있고 글을 쓰고 있다는 거죠.' 라고 말했다.

그는 문학이 때로 참기 힘든 동료와 더 참기 힘든 감독, 공장의 악취와 오물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해주었다고 이야기하며 그만큼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 절망에 먹히고 말았을 거라 회고했다.

생계 노동의 고단함과 문학의 위안을 담은 조제프 퐁튀스의 첫 소설 ‘라인’은 에르테엘-리르 문학 대상을 필두로 외젠 다비 상, 레진 드포르주 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독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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