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을대문 공포 위의 옥토끼와 민화가 그려진 우리나라 唯一한 風流房
죽산 안씨 사당 영모재→호장 김평창의 교방→정읍예기조합→정읍권번→정읍국악원→풍류방으로 현존하는 유불선(儒佛仙) 이상향의 세계

[시사매거진262호/전북=이용찬 기자] 근대문화유산 제213정읍진산동영모재는 본래 죽산 안씨 집성촌인 진산마을의 죽산 안씨 사당 영모재(永慕齋)’를 조선조 말기 정읍현의 의식 음악을 관장하던 이 지역의 호장(戶長) 김평창(본명, 金相泰)1885년 매입하여 재인과 관기를 길러내던 교방(敎坊)으로 사용되며 변천 해온 전죽 유일의 풍류방이다.

근대문화유산 제213호 ‘정읍진산동영모재’

 

풍류방이 아닌 영모재라는 이름 덕에 동학농민혁명기와 6.25 전란 중 보존돼

1894년 김홍집 내각의 신분제 폐지 이후 생계의 위기에 내몰린 정읍현의 관기와 악공들이 관과 민간의 애경사에 출현하여 얻어지는 출연료 생계를 이어가던 최초(最初)의 연예인 기획사인 정읍예기조합으로 이용되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시대 교방의 일본식 이름인 정읍 권번(券番)’으로 이용된 바 있다. 이에 따라 해방 이후에는 다시금 정읍 최초의 정읍국악원으로 이용되던 유서 깊은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이 풍류방 다유락(茶遊樂)’으로 명명되지 못하고 영모재로 소개되고 명명된 이유는 이곳이 동학농민형명기와 6·25의 전란 속에서도 영모재라는 이름으로 파괴되지 않고 현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풍류방의 이름 대신 영모재로 불리며 현재의 근대문화유산 제213정읍진산동영모재로 자리매김 되었다.

 

영모재 솟을대문 공포 위의 옥토끼와 황주의 팔괘, 추녀 끝 연꽃을 감상해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주된 관심사는 영모재 솟을대문 공포(栱包) 위의 옥토끼와 솟을대문 전체의 흙벽 위에 그려진 민화 벽화들을 감상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 이곳을 방문하고서도 이곳 본채 벽면의 벽화들, 특히 본채 사방의 추녀 끝을 받치고 있는 활주에 팔괘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과 추녀 끝을 받치고 있는 문양이 연꽃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영모재 솟을대문 공포(栱包) 위의 옥토끼와 솟을대문 전체의 흙벽 위에 그려진 민화 벽화들이 눈에 띈다.

 

옥토끼가 바로 석가모니의 전생(前生)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이곳이 이제는 전국에서도 유일하게 남은 조선 시대의 풍류방으로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묘비 위에 새겨진 옥토끼가 아닌 건축물의 공포에 달나라 월궁과 절구질 하는 옥토끼가 양 기둥 위에 새겨져 있는 이유를 모르고 지나침으로써 풍류방으로서의 가치나 의미마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옥토끼 이야기는 본래 부처님의 전생 담으로, 송나라 시대 고황론집과 우리나라 불교설화대사전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전해져 온다. 불가에서 전해지는 옥토끼 이야기는 지상계와 천상세계를 관장하는 제석천, 즉 석제환인(釋提桓因)인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석제환인은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최고의 신(God)은 아니지만, 인간들과 가장 가까운 지상계와 천상계에 살면서 인간과 동물들을 보살피는 신이다.

석제환인은 옛날 인도 베나레스 근처에 살던 여우와 토끼, 원숭이 등 세 마리의 짐승에게도 보살도를 닦게 하였는데, 이들은 서로 간의 우정이 지극하여 서로 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하였다. 석제환인은 이를 보고 크게 감동하며,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진실로 보살도를 잘 닦고 수행하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아사(餓死) 직전의 노인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난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석제환인은 세 짐승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요구했고, 세 마리의 짐승은 모두가 보시의 선행을 베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여우는 지혜로, 원숭이는 나무 타는 재주를 이용하여 먹을 것을 구해와 노인에게 주었다.
 

영모재 솟을대문
영모재 솟을대문

 

하지만 재빠르게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있던 토끼는 발만 동동 구르다가 여우와 원숭이에게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와 달라고 부탁한 후, 그 나뭇가지들에다 불을 붙여 불꽃이 피어오르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듯 쓸데없는 물건이니 바라건대, 이 몸은 노인님께서 공양하시고 저는 후세에나 성불을 기약하겠습니다하고 불 속에 뛰어든다. 그러자 깜짝 놀란 석제환인은 본래의 모습으로 변하여 급하게 불 속의 토끼를 구해내고 말했다. “내가 너의 선행을 달 속에 붙여 영원히 길이길이 후세의 본이 되게 하리라했다. 이런 설법을 마친 불타(석가모니)그때의 그 토끼가 바로 오늘의 나이니라라며 자신의 전생 담을 밝혔다. 이것이 부처의 전생 담()을 밝히는 불교설화대사전의 주된 내용이다.

이렇듯 월궁의 옥토끼 이야기는 부처의 본생담(本生談)을 밝히는 것이자, 옥토끼가 어떻게 달나라 월궁으로 가게 되었는지의 배경을 밝혀주는 이야기이다. 이에 따라 불가의 탱화들 속에는 달나라 월궁에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수많은 옥토끼가 등장하는데, 그것도 이러한 부처의 전생 담 때문이다.

옥토끼는 우리나라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아주 적은 경우이긴 하지만, 달 속에서 토끼와 두꺼비, 계수나무 등이 함께 그려지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죽어서도 영생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묘비석에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인 예이다.

정읍진산동영모재의 솟을대문 기둥 밑으로는 작호도인 까치 호랑이를 비롯해 황·청룡, 해태, 현무, 어해도, 비천상 등 수많은 도교적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이상향적 세계가 흙벽 전체를 벽화로 꾸며져 있다. 사진은 영모재 숫해태.

 

진산영모재, 옥토끼가 있는 곳은 월궁, 아래 벽화에는 장생불사의 이상향적 세계

하지만 정읍진산동영모재의 솟을대문 기둥에는 이러한 이야기의 옥토끼가 달나라 월궁을 의미하듯 기둥 끝 공포 위가 월궁으로 꾸며져 있으며, 그 밑으로는 작호도인 까치 호랑이를 비롯해 황·청룡, 해태, 현무, 어해도, 비천상 등 수많은 도교적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이상향적 세계가 흙벽 전체를 벽화로 꾸며져 있다. 이처럼 고대부터 달나라 계수나무는 나무 위에서 옥토끼가 찧고 있는 불사약의 영험한 효험으로 그 가루를 머금고 있는 계수나무는 아무리 도끼로 찍어도 그 상처가 곧바로 아물어 버리는 영생불사의 불사목으로 알려져 있다.

정읍진산영모재는 오늘까지도 유불선의 이상향과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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