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 탈당을 선택한 안철수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사진_뉴시스)

[시사매거진 262호=박희윤 기자]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지난달 29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에서처럼 자기 손으로 만든 당을 스스로 뛰쳐나간 것이다. 그는 “당을 재창당해 실용정치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가오는 총선에서 안 전 대표가 네 번째 신당을 창당해 지난 국민의당처럼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다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다. ‘중도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중도를 표방하는 국민 중에 돌아온 안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줄 국민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안철수의 정치 데뷔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1년 V3라는 컴퓨터 Anti-Virus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며,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 2005년 철수연구소 CEO직에서 물러난 뒤 시골 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작가와 방송인 김제동과 더불어 청춘콘서트를 진행하여 많은 사람에게 높은 지지를 얻게 된다.

안 전 대표는 정보통신부 장관직 제의를 받은 적도 있으며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 출마 제의 등등 종류별로 다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치를 잘할 자신이 없고 힘을 즐기지 못하기에 거절했다”며 “실무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앞으로 정치를 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었다.

그런 그가 정치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은 2011년 8월 이후로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안철수가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정치적 발언을 언론에 알리면서부터다.

이전에 정치 입문에 대해 단호하게 부인해 왔던 안 전 대표의 입장도 애매하게 바뀐 것을 두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됐으며 9월 실시된 ‘청춘콘서트’에는 기자가 몰려 기자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후보 단일화를 선언했다. 안 원장은 “오늘 존중하는 동료이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서 그분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다”면서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에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서 서울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다. 단일화에 대한 아무런 조건도 없다. 출마 안 하겠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꼭 시장 되셔서 그 뜻 잘 펼치시기 바란다”고 밝혔다.(사진_뉴시스)

2011년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자 주요 언론사들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은 압도적이었다. 당시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5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였고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5%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었다.

이후 두 사람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후보 단일화를 선언했다. 안 원장은 “오늘 존중하는 동료이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서 그분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다.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에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서 서울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다. 저에 대한 기대도 우리 사회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우리 미래 세대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겠다. 지금까지 심정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이해해준 박경철 원장님께도 감사하다. 단일화에 대한 아무런 조건도 없다. 출마 안 하겠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꼭 시장 되셔서 그 뜻 잘 펼치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2018년 지방선거에서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한 언론에서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안 전 대표의 양보는 ‘양보’가 아닌 ‘가족들의 반대가 심해서 출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2012년 대선 출마선언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한 2011년 9월 6일 오후, 언론이 긴급하게 실시한 대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누르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안철수 신드롬’, ‘안철수 열풍’ 즉 안풍(安風)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일약 대통령 후보로 도약했다.

안 전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1대1 가상대결에서 43.2%를 기록해 40.6%를 기록한 박근혜를 이겼다. 이명박 정부 들어 박근혜가 차기 대선 지지율 2위를 기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11년 9월 7일, 출근길에서 차기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가당치도 않죠. 사실 생각해 볼 여유도 없고…”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2012년 9월 19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슬로건은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대권 주자로 조사되었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과정에 여러 가지 마찰이 있었다. 단일화 방식이 계속 합의되지 않아 1987년 대선 정국이 재현되는거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양측에 단일화를 하라는 압력이 거세지자 2012년 11월 2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지지자들에게 문재인을 지지할 것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너무나 늦은 후보사퇴였지만 문재인 후보는 물론 민주당은 큰 빚을 졌다고 감사를 표했다. 12월 6일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고 발표했고 문재인 후보와 공동유세, 지원 유세를 진행했다.

지난 2013년 4.24재보궐선거 서울 노원병에서 당선이 확정된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24일 저녁 선거사무실에서 부인 김미경 교수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_뉴시스)

2013년 19대 국회의원 보궐선거

대통령 선거 이후 2012년 12월 19일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2013년 3월 10일 귀국했다. 귀국 전부터 다가오는 보궐선거에 출마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걸을 것이란 소문이 돌았으며, 귀국 후 2013년 상반기 서울특별시 노원구 병 재보궐선거에 출마 의사를 밝혔다.

선거는 민주통합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채 새누리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무소속 2명의 다자구도로 치뤄졌고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총득표수 42,581표(60.46%)로 당선되었다.

민주당과의 합당…새정치민주연합 창설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중앙위원장의 전격적 합의로 두 당의 합당이 이루어졌고, 2014년 3월 16일 새 정당의 공식 명칭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정했다. 2014년 3월 26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어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위원장이 단독 대표가 되었다가 3월 27일 민주당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합당을 하게 되면서 김한길 대표가 공동 대표가 되는 통합 창당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하지만 공동 대표로서 제6회 지방선거에서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내었으나, 이어진 2014년 재보궐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김한길·안철수 공동 대표와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이후 2015년 2월 8일에 열린 제1회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의원이 박지원 의원과의 치열한 선거전 끝에 대표로 당선이 되었으나 4.29 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갈등이 계속되었다.

갈등…탈당…신당 창당

갈등이 심화되어 가고 있었던 도중 안 전 대표가 전북대에서 있었던 자신의 공정성장론 좌담회에서 ‘혁신은 이미 실패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 좀 더 근본적인 정풍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혁신위를 비판했다. 이에 김상곤 위원장 등 혁신위 관계자들은 ‘안철수 전 대표도 당이 이 상황까지 이른데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며 ‘말만 하지 말고 혁신에 동참하라’라는 불쾌한 반응을 보였고, 이에 안철수 전 대표는 ‘나에게 서운해하고 비난하지 말고 혁신안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라’라고 받아쳤다.

이어 9월 6일, 안 의원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낡은 진보 청산이나 당부패 척결 문제는 시대적 흐름과 요구인데도 그동안 당내 타성과 기득권에 막혀 금기시돼 왔다. 낡은 진보나 당 부패를 과감하게 청산하는 것이 육참골단(肉斬骨斷)이고, 이것이 정풍운동이고 야당 바로 세우기’라고 비판했다.

결국 2015년 12월 13일 안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 야당으론 정권 교체의 희망을 만들 수 없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그리고 12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적으로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 전 대표는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박지원, 정동영 전 의원을 주축으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의원, 천정배 전 국민회의 공동대표, 박주선 통합신당 전 창당준비위원장, 동교동계 전직 정치인, 한상진 교수와 윤여준 전 장관, 김성식 전 의원 등과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안 전 대표는 2016년 2월 2일, 국민의당 창당과 동시에 천정배 의원과 함께 당 공동 대표에 추대됐다.(사진_뉴시스)

국민의당 창당과 20대 국회의원 선거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 전 대표는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박지원, 정동영 전 의원을 주축으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의원, 천정배 전 국민회의 공동대표, 박주선 통합신당 전 창당준비위원장, 동교동계 전직 정치인, 한상진 교수와 윤여준 전 장관, 김성식 전 의원 등과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안 전 대표는 2016년 2월 2일, 국민의당 창당과 동시에 천정배 의원과 함께 당 공동 대표에 추대됐다.

국민의당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번과 2번을 일하게 하려면 3번을 찍어달라”라는 구호와 함께 호남에서의 강력한 지지와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통해 38석을 확보했다.

선거의 시작부터 끝까지 가장 주목받은 집단이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이었고, 기존의 양당체제를 벗어나 3당 체제라는 프레임으로 누구도 예상 못한 결과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후 리베이트 의혹 사건으로 인해 2016년 6월 29일 안철수, 천정배 공동 대표가 사임하였고 박지원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했다.

19대 대통령선거 출마...제보조작 사건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의 실시가 확정되었다. 당내 경선에서는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박주선 국회부의장이 후보로 나섰고,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국민의당 제19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안 전 대표는 대선후보 등록과 동시에 의원직 사퇴를 했다. 그러나 대선에서는 개표 결과 21.4%를 기록하며 홍준표에게도 밀린 3위로 낙선했다.

대선이 끝난 이후 별다른 정치 행보 없이 칩거 생활을 하던 중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이 언론에 밝혀지면서 도의적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해당 사건이 발표 후 1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침묵을 지켰다. 이후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의 검찰 조사가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국민의당 관련자들이 전원 사과를 하는 자리에 함께 나와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 2월 13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출범식에서 통추위 공동대표인 안철수, 유승민 대표가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당시 국민의당 21석, 바른정당 9석을 합쳐 30석 규모로 출범한 바른미래당은 원내 제 3당으로 국회 운영 과정에서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사진_뉴시스)

당 대표 출마…합당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자숙을 선언한 지 불과 20여 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의 당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안 전 대표는 “당 자체가 사라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엄습하고 절망과 체념이 당을 휩싸고 있다면서 당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극심한 반발과 싸늘한 시선도 있었지만 당 대표 선거 출마를 강행한 안 전 대표는 2017년 8월 27일 전당대회에서 51.09%를 득표해 결선투표 없이 당대표로 선출된다.

국민의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대비하여 바른정당과 연대 논의를 시작했으며, 이는 합당 논의로 이어졌다. 당내에서 “말바꾸기”, “호남에 대한 배신”이라며 강한 반발이 있었지만 2018년 1월 18일 유승민 대표와 함께 합당을 통한 통합개혁신당’(가칭) 출범을 공식 선언하고, 2월 7일 추가 논의 끝에 바른미래당으로 당명을 확정했다.

서울시장 출마...그리고 성찰과 채움의 시간

2018년 4월 4일 안 전 대표는 서울시의회 본관에서 “저는 진짜의 시대, 혁신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한 가지 분명한 약속을 드린다. 위선과 무능이 판치는 세상을 서울시에서부터 혁파하겠다”면서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19.6% 득표로 김문수 후보에 이어 3위로 낙선했다. 그 뒤 7월 12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5년 9개월 정치하면서 다당제 시대도 겪고 개혁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왔지만, 미흡한 점도 많았다”면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또 “세계 곳곳의 현장에서 공부하며 깨달음을 얻겠다”며 “그 끝이 어떤 건지 저도 알 수 없지만 지금 세계 각국이 직면한 어려움에 어떻게 대응할지 또 우리가 앞으로 나갈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숙고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기자와의 추격 영상이 공개되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9월 1일 독일로 출국했다.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귀국 후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를 처음으로 만나 당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자신이 비대위원장을 맡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안 전 대표는 대화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어려움에 처한 당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며 “28일 의원단 오찬 전까지 답을 달라고 말씀드렸다”고 했다.(사진_뉴시스)

국내 복귀…그리고 탈당

안 전 대표는 지난달 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계 복귀 선언을 했다. 그리고 지난달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큰 절을 올렸다. 그는 “바른미래당 합당 과정에서 국민의당을 지지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면서 “바른미래당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제 책임”이라고 사과했다.

이후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귀국 후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를 처음으로 만나 당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자신이 비대위원장을 맡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안 전 대표는 대화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어려움에 처한 당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며 “28일 의원단 오찬 전까지 답을 달라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그러나 손

대표는 28일 안 전 대표의 제안을 거절했다. 손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 전 의원에게 기대했던 것은 당의 미래에 대해 같이 걱정하고 힘을 합칠 방안을 깊이 있게 논의하자는 것”이었다면서 “그러나 그런 것 없이 곧바로 저의 퇴진을 말하는 비대위 구성을 요구하고, 위원장을 자기가 맡겠다는 것이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에 안 전 대표는 29일 오전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비통한 마음으로 바른미래당을 떠난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안 전 대표는 “저의 길은 더 힘들고 외로울 것”이라며 “그러나 초심을 잃지 않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국민의 뜻이 하늘의 뜻”이라고 전했다. 이어 “저는 진심을 다해 이 나라가 미래로 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 말씀드리겠다”며 “우리 정치와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간절하게 호소할 것”이라고 독자 신당을 시사했다.

안 전 대표가 처음에 보여준 그의 진정성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명사들과 전·현직 고관들이 여러 문제 때문에 결별했다. 그중에는 강력한 혹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안 전 대표 주변에 측근이라는 사람이 없다’라는 표현도 쓴다. 물론 사람들의 이합집산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은 정치인인 안 전 대표의 리더십에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안 전 대표가 네 번째 신당을 창당해 지난 국민의 당처럼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다시 성공을 거둘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다. ‘중도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중도를 표방하는 국민 중에 돌아온 안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줄 국민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이제는 정치 신인이 아닌 중견 정치인으로서 본인의 말처럼 올바른 대한민국의 미래 방향을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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