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바잘리아와 정신보건 혁명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무너뜨린 정신보건 개혁자들의 이야기

저자 존 풋 | 옮김 권루시안 | 출판사 문학동네

[시사매거진=신혜영 기자] 문명사회에서 정신병원의 역할은 미친사람들을 가두어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정신병원의 일차적 기능은 치료가 아니라 구금이었다. 하지만 격리와 감금은 정신질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킨다.

바잘리아가 고리치아에 부임했을 때, 정신병원은 가난한 사람, ‘정상에서 벗어난사람이 버려지는 곳, 어둡고 불길한 시설이었다. 어떤 환자는 병상에 묶인 채 지냈고, 병원의 아름다운 정원은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 병동 문은 닫힌 채 자물쇠로 잠겼으며, ‘환자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에 반해 수용되어 있었다. 그곳은 격리된 수용소이지 병원이 아니었다. 바로 이곳에서 드라마 같은 정신병원 개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개혁의 한계를 절감한 바잘리아는 정신병원 폐쇄의 길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옮겨간 트리에스테는 사회·문화·의료 혁명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이탈리아의 모든 정신병원(정신질환자 보호소)을 폐쇄하게 한 바잘리아 법이었다. 이 법의 제정은 시작에 불과했다. “자유가 치료다라는 기치를 내건 정신보건 서비스 혁명은 그때부터 새롭게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정신병원 곳곳에 내걸렸던 이 구호는 바잘리아가 이끈 정신보건 혁명의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강제수용, 폐쇄병동 감금이 공공연히 행해지던 정신병원의 해체를 주창한 바잘리아는 1978년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정신병원 폐쇄로 이어진 180호 법(일명 바잘리아 법’) 제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혁명적 변화는 전세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바잘리아는 20세기 정신의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 이 책은 바잘리아 및 그와 뜻을 함께한 개혁자들이 정신질환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던 드라마틱한 역사의 기록이다.

바잘리아식 정신보건 혁명의 핵심은 정신질환자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려보내 사회 공동체 안에서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지역사회 곳곳에 자리 잡은 정신보건센터 같은 곳이 정신질환자 돌봄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는 대단히 낮은 형편이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은 급증하고 있지만, 조현병 환자의 범죄를 다루는 선정적인 언론 보도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혐오를 키우는 일도 빈번하고, 정신병원 강제 입원이나 환자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도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1960~70년대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혁명은 우리에게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당장 직면한 현실이고, 미래의 청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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