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희 한국문화예술가협회 이사장의 우리나라의 예술 경영에 대한 고견

[시사매거진261호=차홍규 화백] 사람의 인생자체가 여러 굴곡을 겪으며 살아가지만, 이관희 한국문화예술가협회 이사장처럼 젊은 시절 배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이사장의 젊은 시절은 우리 한국이 한참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 하는 시기라 선친의 뜻에 따라 공대를 진학했으나 문화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은 그에게는 적성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학문을 섭렵한 이 이사장은 이제 예술경영에 매진하고 있다.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 북경의 798 예술구에 있는 북한의 만수대 창작사길정태 관장은 참으로 예술경영의 귀재이다. 북한은 두 곳이나 미술관이 성업 중인데도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특구인 북경 798 예술구에 단 한곳의 미술관도 없다. 길 관장은 13년째 접어드는 미술관의 관장 직을 설립 이래 지금까지 열심히 하고 있다. 이를 본받아 우리의 위정자들도 그릇된 정치의 논리 속에 싸움질만 하지 말고 문화에 대한 인식을 정말 새롭게 가져야한다. 이관희 이사장에게 인터뷰를 신청한 목적도 그의 폭넓은 가치관과 함께 우리나라의 예술 경영에 대한 고견을 듣고자 함이다.

어릴 적 교육자가 꿈이었던 이관희 이사장은 평생 여러 학문을 배우고 가르친 게 나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한국문화예술가협회 법인 설립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 삶에서 문화가 아닌 것이 없고 예술이 아닌 것이 없다. 오감이 접하고 반응하는 모든 것이 곧 문화예술이다. 그러한 문화예술을 창조하고 유지하고,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을 지지하고 싶었고 문화예술에 관심은 있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는 이들을 돕고 싶었다. 우리 협회의 제일 큰 목적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소외계층에 있는 학생들 중 문화예술에 끼가 있는 아이가 문화예술가로 발돋움을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역점을 두어 노력하려고 한다.

 

주로 무슨 사업을 하는가

시각예술의 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첫째, 신진예술가 발굴에 관한 사업. 둘째, 소외계층에 대한 재능기부와 문화예술가 양성에 관한 사업. 셋째, 해외 전시를 포함한 정기회원전 및 정기세미나 개최에 관한 사업. 그리고 넷째, 본회의 목적달성에 필요한 문화예술 관련 사업 등이 있다.

 

젊은 시절 학문의 변동이 아주 심하던데, 왜 평범치 않은 길을 걸었는지 궁금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문호이자 위대한 철인(哲人)인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읽고 철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모 국립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적성에 안 맞아 결국 자퇴하고 K대 철학과 편입학을 준비했으나 그해에는 철학과 편입생을 뽑지 않아 지원조차 무산되었다. 외국에 유학 갈 목표를 세우고 당시 남산에 있는 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를, 종로2YMCA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이후 철학을 하기 전에 신에 관한 학문神學을 당분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2학년으로 편입학해 기숙사에 머무르며 신구약성서, 비교종교학, 기독교철학, 희랍어 등을 배우고, 매일 새벽 예배에 목사로서의 예행연습이랄 수 있는 예배 인도 등 과정을 거쳤는데 이사회의 내분과 부정부패, 기독교인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이중적인 모습을 목격하면서 결국 1년 만에 자퇴하고 말았다.

이후 대전에 내려가 유학자 이성우 은사님으로부터 논어와 대학, 맹자를 배우는 한편, 대전화교소학교에서 청강을 하며 담당교사로부터 개인교습으로 중국어를 익혔다. 마침내 자유중국(정식 명칭은 중화민국中華民國)에서 입학허가서가 왔다. 함께 유학을 준비하던 현재 아내와 함께 (나는 철학과, 아내는 역사학과) 대만으로 향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도저히 학업을 계속할 수가 없어 그만두었고, 또 다른 이유는 학부 유학생에 대하여 연구소(한국의 대학원을 중국에서는 硏究所라 함)에 재학 중인 선배들의 멸시(중국어로 看不起)’때문이었다. “너희들은 한국에서 대학 들어갈 실력이 없어서 대만으로 유학 오지 않았느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한국에서 공부를 못하지 않은 나에겐 그 말이 상처가 되어 아내와 상의하고 2년간의 유학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관희 이사장은 학비를 벌려고 시작한 학원을 25년간이나 운영하게 되었고, 가르친 제자들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 후 사회에서 병원, 대기업, 사업체 등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 제자들이 결혼할 때는 주례를 서기도 했는데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제자가 가르친 교수분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닌 나에게 주례를 부탁한 것에 대해 인생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귀국해서는 어떤 삶을 살았나

입시공부를 다시 해 나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에, 아내는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이어서 연대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행정을 전공했다. 그 후 서울여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청소년복지를 또 한양대에서 식품영양학 박사과정을 밟았으나, 평소 풍류를 즐기기 좋아하는데다 박사학위가 쓸데없는 명예욕이라 생각되어 중도 포기했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부터 공연기획, 목공예, 사진 등을 본격적으로 접하며 예술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결국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문화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논문을 쓰고 있다. 이외에도 성대 유학대학원(유교철학 전공), 방송대(중어중문학)에도 적을 두었었으니 평생 여러 학문을 배우고 가르친 게 나의 인생이다.

 

박사과정에서의 세부전공이 무엇인가

예술경영이다. 논문집 문화와 예술연구12집에 게재된 필자의 소논문 한류 콘텐츠 성공사례 연구’(2018.12)에서 방탄소년단(BTS)의 성공사례에 대해 연구했다. BTS의 예술적 가치가 경영 전략과 만나면서 예술경영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되었는데, 그 성공비결에 대해 고찰하며 예술이 경영과 결합할 때 나타나는 효과에 관한 논문이다.

 

박사논문도 예술경영에 관한 것인가.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그렇다. ‘한국문화예술정책과 대안(代案) 고찰1970년대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한 한국문화예술정책의 진행상황과 문제점을 고찰하여 개선책을 제시하는데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이 있다. 연구범위로는 시간적 차원에서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공간적 차원에서는 국내와 해외 즉 EU, 미국, 중국, 일본 등 선진문화예술정책 사례를 분석했다. 문화예술정책 담당 기관과 타 부처와의 협력내용도 고찰하고 공연예술, 시각예술, 전통예술의 3개 분야 예술영역에 걸쳐 포괄적인 예술정책의 틀을 고려하여 한국의 문화예술정책의 변천과정을 시기별로 분석을 시도하여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갈 문화 예술의 정책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려고 한다. 연구방법으로는 1차적으로 문헌 분석을, 2차적으로는 국내외 사례를 비교 분석하여 소결(小結)과 대안으로 주로 정부주도 문화예술정책과 관련된 연구에 국한되는 현재의 사례에 한계가 있음을 밝히고, 발전적 대안으로 국민의 요구와 눈높이를 반영한 민간주도방식의 상향식 정책연구로 전환하여, 중앙정부주도형에서 비영리 사단법인 등 민간예술단체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한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귀납적 정책연구로 이끌어 한국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려고 한다.

 

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의견은

예술은 이미 대중화되어 있다. 미디어의 발달이 그 촉진제가 되었고 우리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수용하고 걸러내면서 젖어들고 발전하고 있다. 다만, 너무 빠르게만 변화하여 기본기에 충실하며 천천히 젖어들어 즐기면서 발전하는 예술이 아닌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맹목적인 유행을 쫓는 예술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한 복지 포퓰리즘에 이어 과도한 예술 포퓰리즘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나친 인기 영합 행정과 지원으로 펼쳐지는 공짜공연은 오히려 예술가들의 자생력을 하락시킬 뿐 아니라 질적인 발전을 저해할 수가 있다. 실력이 부족해도 쉽게 무대에 설 수 있으니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관객 또한 질 떨어지는 공연예술을 외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한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귀납적 정책연구로 이끌어 한국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관희 이사장.

 

# 작금의 한국에서 문화 예술을 하면 딱 배고프기 십상이다. 정말 돈도 안 되고 개성 강한 작가들 뒷바라지 하려면 참 말들도 참 많다. 필자도 한중미술협회장을 타의에 의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6년째 하고 있지만 개성 강한 작가들의 모임인지라 보람보다는 참 어려움이 많음이 현실이다. 그런 어려운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나섰으니 이관희 한국문화예술가협회 이사장도 참으로 바보 같은 사람이다. 자신의 사재를 털어야 하고 뒷말 많은 가운데서 사단법인을 꾸려야 하는 어려운 길이지만 누군가는 우리나라의 문화 발전을 위하여 개인의 희생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기엔 미련스럽겠지만 한사람의 희생으로 경영이 정상화되고 조직이 발전함을 우리는 동서고금을 통해 많이 보아왔다. 어려운 길을 스스로 택한 이관희 이사장. 그의 앞길이 순탄지만은 않겠지만 서두에 예술 경영의 귀재 길정태 만수대 창작사 관장을 이야기 했듯이 우리 대한민국도 이이사장이 앞장서서 우리의 GNP에 걸맞은 예술 경영을 하여 낙후된 예술경영분야를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한 단계 발전시켜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우리의 위정자들도 이제라도 어렵게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을 위하여 폭넓은 세계관을 갖고 시야를 넓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 차홍규

미술학 학사, 석사, 공학박사, 개인전 55, 한중수교 20주년 양국 기념작가, 북경 칭화대학 미대 교수 정년퇴임, 현 한중미술협회장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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