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정당과 군소정당 난립 우려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공직선거법의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사진_뉴시스)

[시사매거진 제 261호=박희윤 기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 제도가 처음으로 적용된다. 반면 국민은 다가오는 4월 군소정당에다 위성정당까지 난립하는 전대 미문의 총선을 치러야 한다. 이번 연동형 선거법은 누더기와 밥그릇 지키기에 더해서 위성정당의 문제를 허용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제373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이 법안은 의석수를 현행과 같이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으로 확정했다. 비례대표에 47석 중 30석에만 준연동형을 적용하고 나머지 17석에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현행 방식을 적용한다. 4+1 협상 막판 쟁점으로 떠올랐던 석패율제는 포기하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선거제 개혁안이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4+1의 최종 단일안은 올해 4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오른 원안에서 후퇴했다. 원안은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에 석패율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국회의원의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고 지역주의를 타파하자는 목적에서였다. 한국당이 선거법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하며 국회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4+1은 공조를 유지했다.(사진_뉴시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 제도가 처음으로 적용된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4+1(민주당·바른미래당 통합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제출한 선거법 개정안을 재석 167명, 찬성 156명, 반대 10명, 기권 1명으로 가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 규모인 현행 의석구조를 유지하되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50%만 적용한다. 연동형 비례대표 30석은 각 당의 지역구 당선자 수와 정당 지지율 등에 따라 배분되며 나머지 17석은 기존대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나뉘게 된다. 개정안에 따라 선거 연령도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하향 조정됐다.

기존 제도와의 차이점

기존 제도는 비례대표 의석 47석을 정당 득표율 순서로 배분하는 간단한 방식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역구에서 많은 득표를 거둔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이른바 연동형 '캡(cap·상한)'이 적용되는 30석에 대해서는 지역구에서 많은 득표를 거둔 정당은 의석 배분에서 제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정당 득표율 30%를 거둔 정당이 지역구에서 80석을 얻었다고 가정하면, 정당 지지율에 따른 가상 의석수 90석과 지역구 의석수(80석)의 차이인 10석에 대해 50% 연동률을 적용, 5석이 배분될 수 있다. 다만 의석 배분 과정에서 다른 정당들이 동일한 원칙에 따라서 거둔 비례대표 의석이 30석을 초과할 경우, 의석 수는 추가로 조정될 수 있다.

이번 선거법 개정안의 의석배분 산식(算式)은 지난해 4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선거법 개정안 원안과 동일한데, 당시 심 의원이 산식에 대해 "국민은 몰라도 된다"고 했다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도 당시 "선거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같은 제도 하에서는 '비례대표 정당' 창당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정당 득표율 3%만 얻어도 비례대표 3~4석 정도를 확보할 수 있어, 군소 정당들이 난립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비례대표 의석을 몰아주는 위성 정당인 '비례한국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날 '비례민주당'을 창당하겠다는 신고가 선관위에 접수되기도 했다. 이 경우 기존 '정당 투표=비례대표 당선'이라는 법칙이 바뀌면서 유권자들 입장에서 복잡한 수 계산을 해야 지지 정당을 결정할 수 있다.

이처럼 군소 정당들이 대거 나타나면 투표지도 길어지게 된다. 그러면 현재 전자 개표 시스템으로는 다 처리할 수 없어 일일이 수개표를 해야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정당 내부에서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혼란도 예상된다. 역대 비례대표 공천에서는 당대표를 비롯해 각 계파 수장 등 실력자들의 권한이 강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법 논의 과정에서는 비례대표 공천 제도 혁신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비례대표 정당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비례대표 배정 방식도 복잡해지면서 매관매직을 통한 '전(錢)국구 의원'이 양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희상 국회 의장이 지난해 12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제373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의장석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당 의원들이 그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문 의장은 의장석에 착석하려 시도했지만, 한국당 의원들이 통로를 막아서면서 한차례 실패했다. 이에 본회의장 입구 근처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며 잠시 쉬었다. 그러다 오후 5시 30분 경 다시 단상 진입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문 의장은 통로에 겹겹이 서 있던 한국당 의원들을 손으로 밀쳐내고 등 위로 올라타며 지나갔다. 이은재 의원 등은 고성을 지르며 문 의장을 막아섰고, 팔과 다리를 붙잡는 등 몸으로 저지했다. 일부 한국당 의원들은 의장석으로 올라가는 다른 통로도 막아서기 위해 이동했지만 방호 인력들에 의해 저지됐다. 전희경 의원 등은 그 과정에서 넘어지기도 했다. 임이자 의원 등은 피켓 뭉치를 계속해서 단상으로 던졌다.(사진_뉴시스)

군소 정당의 난립 가능성

비례대표 의석 수를 노리는 군소정당들의 난립으로 유권자들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우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을 마친 정당은 34개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우리공화당, 민중당, 가자코리아, 공화당, 국가혁명배당금당, 국민새정당, 국민참여신당, 국민행복당, 국민희망당, 국제녹색당, 그린불교연합당, 기독당, 기독자유당, 노동당, 녹색당, 대한당, 대한민국당, 민중민주당, 새누리당, 우리미래당, 인권정당, 자유의새벽당, 친박연대, 통합민주당, 한국국민당, 한나라당, 한누리평화통일당, 한반도미래연합, 홍익당)다.

창당 과정에 있는 정당은 민주평화당에서 갈라져 나온 비당권파가 결성한 대안신당, 바른미래당 비당권파가 출범한 새로운보수당 등 16개 단체다.

정당의 창당 절차

정당은 수도인 서울에 위치한 중앙당과 그 아래 각 지역에 있는 시·도당으로 구성되는데, 정당법에 따라 중앙당은 5곳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하고, 각 시·도당은 해당 지역에 주소를 둔 1천 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당을 등록하는 절차는 1) 200명 이상 발기인이 창당 발기인 대회를 개최한 후 대표자를 정해 중앙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2) 중앙선관위에 중앙당 창당준비위 결성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 이때 창당준비위는 신고한 날짜로부터 6개월 내에서만 창당활동을 할 수 있다. 3) 같은 방식으로 각 시·도당은 100명 이상의 발기인이 발기인 대회를 열고 시·도당창당준비위를 결성한다. 대표 간부를 선임하고 이번에는 시·도 선관위에 등록 신청을 한다. 4) 끝으로 창당대회를 열기 5일 전까지 일간신문에 그 사실을 공고하고, 5) 창당대회를 열어 강령과 당헌을 채택하고, 대표자 간부를 선임한 뒤 중앙선관위에 등록, 회계책임자까지 선임해야 한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제373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자 로텐더홀로 나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심 원내대표는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선거법과 불법 수정안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수정 선거법안은 국회법이 정한 원안 수정 범위를 넘어 상정과 처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상정도 처리도 불법"이라며 "문 의장은 국회법상 당연히 진행할 회기 결정의 건의 필리버스터를 인정 안하고 일방적으로 회기를 정했다. 그 회기는 불법이므로 선거법 상정도 불법이다. 상정 자체가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겠다"며 "국민들의 혼란이 없게 조속히 판단해달라"고 요구했다.(사진_뉴시스)

자유한국당의 비례 정당 창당

자유한국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된 선거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예고한 대로 '비례정당' 창당 작업에 본격 돌입했다. 이미 실무 작업은 거의 마무리돼 당 지도부의 결정이 나오면 바로 등록이 가능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평화당+대안신당) 공조로 선거법 개정안 수정안이 마련되자 "선거제 개악을 입증하겠다"며 '비례한국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진행 중이던 지난달 24일에는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반(反)헌법적 비례대표제(연동형 비례제)가 통과되면 곧바로 저희는 비례대표정당을 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교안 대표도 지난달 26일 페이스북 글에서 "꼼수에는 묘수를 써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 선거법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비례대표 한국당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실무를 담당한 원영섭 조직부총장은 "한국당 지지기반을 고려할 때 창당 과정에서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창당 절차에 들어가면 속도감있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은 총선 전까지 비례정당의 현역 의원 규모를 불려 정당투표(비례대표 투표) 용지에서 한국당과 같은 '두번째 칸'까지 비례정당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한국당과 비례정당의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유권자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올바른' 투표를 독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의 기호는 의석 순으로 정해지는데 한국당은 일단 비례정당의 의석을 바른미래당(28석)보다 많은 30석 안팎으로 만들어 원내 3당으로 만들 계획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 경우 비례정당은 '기호 3번'을 받게 되지만 '기호 2번'인 한국당이 비례대표를 내지 않으면 기호 2번이 공란이 되면서 비례정당이 두 번째 칸으로 올라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총선 캠페인에서 '지역구 투표는 2번, 정당 투표는 2번째 칸'과 같은 구호를 만들 수 있을 전망이다. 당내에서는 비례정당으로 옮겨갈 의원이 몇 명이나 될지, 또 누가 가게 될지도 관심사다.

불출마 선언을 한 의원들이 비례정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게 점쳐지지만 비례정당이 정치권에서 '꼼수'라는 비판을 받는 만큼 어는 누구도 흔쾌히 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당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황교안 대표가 비례정당의 '얼굴'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당은 당초 비례정당의 당명으로 '비례한국당'을 고려했으나 다른 사람이 이 명칭을 선관위에 등록해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이 정당을 등록한 인사와 통합을 타진했으나 뜻이 달라 함께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당은 비례정당 당명이 노출될 경우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것을 우려해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국민은 다가오는 4월 군소정당에다 위성정당까지 난립하는 전대미문의 총선을 치러야 한다. 민주당은 제1야당을 배제하는 무리수까지 써서 명분도 실익도 없는 괴물 선거법을 만들었고, 선거법은 ‘게임의 룰’로서 여야가 합의 처리하는 것이 ‘관행’이며 ‘상식’이었음에도 그것이 공수처법의 도구적 수단으로 연계되면서 이러한 원칙들이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은 점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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