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반역] 제 14장 꿈속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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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반역] 제 14장 꿈속의 여인
  • 편집국
  • 승인 2019.12.2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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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60호=유광남 작가]

지난 일이 기억나는지 갑자기 이회도 거들었다.

“충선, 자네가 그 당시에 김덕령의 정혼녀(定婚女) 예지아씨를 진주성에서 구해냈지 않았던가? 그렇지....아마도......”

“맞아. 형님이 말씀 하니까 생각납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익호장군 김덕령과 교류하였고, 충선이 예지아씨의 무술 스승이 되었지요.”

곽재우도 그들의 관계를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관심을 보였다.

“그런 일이 있었군.”

김충선의 뇌리에 그때의 상황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생사의 갈림길이었으나 매우 처연하면서도 아련한 추억이었다.

“당시에는 김덕령장군과 정혼했다는 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회가 문득 물었다.

“예지아씨는 요즘 어찌 지내시는가?”

일시에 침묵이 찾아 들었다. 김덕령의 주검 뒤에 남겨진 그녀의 행방을 알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무사하시길 바랄 뿐이지요.”

김충선은 그리 독백처럼 중얼거리며 여진의 당돌한 공주 아율미의 예리한 의심을 기억해 냈다. 의병장 익호장군 김덕령의 여자 장예지는 실상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여인으로 이미 김충선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녀를 만난 것은 4년 전 2차 진주성 전투가 벌어진지 사흘 후였다. 6월의 작렬하는 태양 아래 전투는 뜨겁고 무더웠다. 전선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총탄과 화살이 난무 하였다. 그 처참한 현장으로 작은 물 항아리를 이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댕기머리 소녀가 있었다. 목마른 병사들에게 꿀맛 같은 해갈을 안겨주던 그녀가 바로 장예지이다. 김충선도 그녀에게서 물을 얻어 마시며 혼신을 다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진주성이 왜적에게 함락 되던 날 김충선은 위기에 빠진 그녀를 살려내어 탈출에 성공했었다. 장예지의 방긋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떠올리며 김충선은 깊은 상념에서 빠져 나왔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정경달은 제법 살이 오른 닭다리를 김충선에게 내밀었지만 그는 마다하고 객주를 나섰다.

“이 사람아, 먹어야 기운을 차려서 장군님을 돕지 않겠나?”

닭다리를 들고 마당까지 쫒아 나왔지만 김충선은 요즘 도통 식욕이 오르지 않았다. 이울이 급히 뒤따라 왔다.

“충선, 어딜 가는 거냐?”

“병부에 좀 다녀오려고.”

“거긴 왜?”

“오성대감이 병조 판서에 제수 되었다는군.”

이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것이 사실인가? 누구에게 들었나?”

“승정원으로부터 나온 이야기이니 틀림없어. 오성대감이라면 그나마 믿음이 가는 신료 아닌가. 멍청하고 비열한 왕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신하지.”

이울은 사야가 김충선의 곁을 바싹 따랐다.

“거긴 나하고 함께 가세나.”

김충선이 제지했다.

“아니야! 우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철저하게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옳아. 혹시나 이번 거사(擧事)가 실패할 경우 나와 연루되었다는 정황은 절대 만들지 말아야 해!”

이울은 씁쓰레한 미소를 입가에 담았다.

“넌 그럴 수 있냐? 뜻을 같이 세웠던 친구를 그렇게 사지로 몰아넣고, 혼자만 살겠다고 버둥거릴 수 있냐고?”

김충선은 단호했다.

“난 혼자지만...넌 아니잖아! 만일 나의 신상에 변고가 발생 한다면 난 단신이기에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너는 형제들도 있고...할머니와 어머니! 사촌들... 그 많은 식솔들이 어찌 될 것인지 잘 알고 있잖아?”

“충선아!”

“울, 우린 냉정해야 한다. 주변을 둘러봐라! 아직 우리를 위해 선뜻 나서줄 혁명의 동지들은 없다. 사대부의 권위를 누려오던 특권층의 붕괴를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영의정 서애대감 유성룡도! 도원수 권율도, 철저히 가진 자의 권력을 누려왔던 왕권 결탁 세력이란 점을 넌 잊으면 안 된다!”

이울은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남을 느낀다. 사야가의 분석은 매우 예리했다. 이순신의 나라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그들은 이 조선의 가장 오랜 권력의 핵심들이기도 했다. 그들이 무슨 아쉬움이 있어서 동참할 것인가?

“하지만 우린 이미 서애대감에게 우리의 의지를 천명했잖아!”

“아마도 그건, 모종의 불상사가 발생 한다 하여도 서애대감이시라면 그건 지켜줄 것이다.”

그의 예측이 빈틈없다는 것을 이울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애대감은 끝까지 입을 다물고 이순신 일가를 비호해 줄 수밖에 없을 처지이다.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발탁한 것은 오로지 유성룡의 고집스런 천거(薦擧) 때문이었지 않은가. 이순신처럼 일반 품계를 무리하게 뛰어 넘어서 임용한 전례는 조선 역사상 거의 전무후무(前無後無)했다. 따라서 서애 유성룡의 책임 또한 막중한 것이다.

“그러나 권장군은 다르다!”

이울은 사야가 김충선을 지그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너란 놈에게는 언제나 지고 만다. 대관절 넌 어떤 놈이냐?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냐?”

“나? 그냥 조총 하나 걸머지고 바다를 건너온 반조반일(半朝半日)의 역성혁명을 꿈꾸는 반골(叛骨) 혁명가쯤으로 해두지.”

사야가 김충선은 보일 듯 말듯 한 미소를 던지고는 홀로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보며 이울은 두 손을 모았다.

‘부디 너의 꿈으로 인해서 새로운 이순신의 조선이 되기를! 두 번 다시 외부의 침략으로 백성들의 희생이 없는 나라가 되기를!’

그의 간절한 소망이 석양빛을 따라서 사야가 김충선의 머리끝에 머물었을 즈음, 김충선은 병부의 판서 이항복을 찾아갔다. 병부 최고의 권력자를 만나는 일이건만 면담의 성사는 쉽게 이뤄졌다. 조선 병권을 장악한 오성대감 이항복은 이미 사야가 김충선을 알고 있는 터였다.

“이게 뉘신가? 실로 오랜만일세!”

이항복은 오랜 지기를 만난 듯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그의 입가에 매달린 장난기는 여전했다.

“항왜 장수가 조총장사를 너무 잘 한다고 소문이 파다하였지. 그래 얼마나 벌었는가?”

“이문이 꽤 많이 났습니다.”

“옳거니!”

“그래서 오성대감님과 나눠 쓰려고 왔습니다.”

“저런, 아마 한음이라면 단번에 그런 제의를 수락 했을 텐데...쯧쯧... 지금 그는 공조에 머무르고 있다네. 내가 나중 소개함세.”

사야가는 시원하게 대답하는 오성대감 이항복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항복의 치기가 다시 발동되었다.

“그 말뜻은 전 병조 판서 이덕형을 반드시 만나야겠다는 의도로 해석해도 되겠나?”

김충선은 상대방의 화술(話術)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경주했다.

“해석은 하지 마십시오. 자칫 하다간 본전까지 모조리 털리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이항복은 어렵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설마, 옛 친구를 그리 대접 하겠나. 그래...지방 장사를 뒷전으로 돌리고 한성에 걸음을 한 것으로 미루어 자네 요즘 아주 큰 장사를 벌리려고 하는가?”

사야가 김충선은 흠칫 마음을 가다듬었다. 오성이 비록 가볍게 내던진 말이지만 거긴 분명 의미가 숨겨져 있으리라.

“대감이 도와주신다면 기꺼이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오성 이항복의 얼굴이 살짝 경직 되었다.

“통제사는 위급하네.”

김충선도 말을 아꼈다.

“어찌 손을 쓰면 좋겠습니까?”

병조 판서 이항복은 고심(苦心)하는 빛이 역력했다.

“초기라면 어찌 가능하겠으나 이건 말기의 중환자야. 이쯤 되면 백약이 무효라네. 어찌 그리 자신을 돌보지 않았는가? 통제사의 괴벽(怪癖)에 대하여 알고 있어. 그건 괴질(怪疾)이야. 어떻게 그리 한 곳만 줄 곳 바라볼 수 있는가? 병 중 에서도 증세가 심한 병이지.”

김충선은 오성대감의 말하고자 하는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순신은 그러한 장수였다. 오로지 자신의 임무에 총력을 기울였고, 자신이 의도한 전략에 의해서 전투에 임하였다. 한성과의 교류도 오로지 영의정 유성룡과 서신을 주고받을 뿐이고 다른 상전에 대한 어떤 은밀한 거래도 하지 않았다.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관습중의 하나인 명절의 상납(上納) 또한 인정치 않았다. 이순신은 고지식하였고 융통성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권력과의 소통이 단절될 수밖에 없는 길을 걸었다. 그는 혼자였고 적들은 언제나 무수했다.

“아마도 치유될 수 없는 중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충선의 대꾸에 이항복이 맞장구를 쳤다.

“옳거니, 자네도 그리 생각 하는가?”

“예. 그러니 대안이 없습니다.”

오성대감 이항복이 이채로 반짝이는 눈빛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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