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 불가 이유가 허언증? 허언이 가져오는 망상

[시사매거진 260호=이회두 기획편집국장] 매년 11월 영국 북서부 컴브리아(Cumbria) 주에서 열리는 ‘세계 거짓말 대회(World's Biggest Liar)’는 19세기에 시작된 유서 깊은 대회이다.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 가능하지만, 정치인과 변호사는 참가할 수 없다. 이유? 말해 무엇하랴마는 이유는 있다.

(사진_뉴시스)

‘World's Biggest Liar Competition’을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세계 허언증 대회’라고 번역한다. Liar, 거짓말을 허언(虛言)이라 바꿔치기한 것인데, 거짓말은 동기가 있는 사실의 왜곡이고 허언은 자기체면을 살리려는 허풍처럼 일종의 과시 형태이니 거짓말과 허언은 본질적으로 다른 말이다.

오히려 이 거짓말 대회에 정치인과 변호사의 참가를 금지하는 이유를 허언증과 연관시켜 볼 수가 있겠다. 이들 대부분은 ‘나는 국민의 편이다’, ‘피고인은 죄가 없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일상적이니 허언증에 중독되어 있을 수 있다. 거짓말에 관한 프로(?)들이니 거짓말 대회에 참가하는 아마추어들과 겨루는 것을 금지할 수밖에.

세계허언증대-Bridge Inn 홈페이지 캡처

기침이 잦으면 감기증상이 있다고 하는 것처럼, 증상이란 병에 이를 수 있는 전 단계를 말한다. 배우자를 의심하는 정도가 잦아지면 증상이 있는 것이고, 지나치게 되면 명확한 증거 없이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하고 이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셀로 증후군’을 거쳐 부정망상이라는 정신병으로도 진행된다고 한다.

허언이 잦아지면 허언증상으로 진행되기 쉽고 점점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정신병 수준의 허언증에 중독되기에 이르게 된다.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려 할 때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슴없이 허언을 남발하게 된다는 것이고, 진실한 자세로 돌파하는 것보다 허언이 훨씬 쉬워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허언증이라는 말보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리플리 증후군은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이다.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자신이 꾸며낸 허구의 세계만을 믿는다. 또 자신이 한 거짓말을 진실로 알기 때문에 거짓말이 탄로날까봐 불안해하지 않는다. 리플리 증후군은 주로 충족되지 않은 욕구나 열등감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보이며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으로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다가 스스로 진실처럼 믿게 되고, 심지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죄책감도 없다.

태양은 가득히 알랭들롱 (사진_영화 태양은 가득히 캡처)

목적이 다른 거짓말,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과 뮌하우젠 증후군(münchausen syndrome)

증후군(syndrome)이란 공통적인 증세가 있는 일련의 병적증세를 넓게 표현하는 말로 개인들에게 사용하기도 하고 인과관계가 확실치 않으면서도 사회적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말하기도 한다.

‘리플리 증후군’도 사회현상을 나타내는 단어이지 정신과 진단명이 아니다. 미국 작가 퍼트리셔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 1921~1995)가 1955년에 쓴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라는 범죄 심리소설에서 따온 말이다. 주인공 톰 리플리가 거짓말로 거짓말을 이어가며 급기야 살인을 거듭해서 자신의 정체를 바꾸고 화려한 결혼을 한다는 이 소설은 1960년 개봉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배경이다. 주연은 미남배우 알랭 들롱.

리플리 증후군 환자들은 지극히 자기 자신의 이득이나 만족을 위해 상대방을 속인다. 자기만족을 위해 선행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세계가 흔들리는 것이 두려워 또 다른 거짓말을 하거나 심지어는 절도 및 사기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친어머니에게 속아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낸 한 20대 여성의 사연이 공개되었는데 이 여성은 7살 무렵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듣고, 어머니의 강요로 침대에서만 수 년 간을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는 딸이 암환자라고 거짓으로 언론에 공개한 뒤, 대중들로부터 수 만 달러를 기부 받아 이를 가로챘다.

하지만 아이의 머리가 계속 자라는 것을 수상히 여긴 이웃들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됐고, 결국 어머니가 언론은 물론 자신의 딸까지 속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동안의 범행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체포된 어머니는 딸을 이용하여 수 만 달러의 기부금을 가로챈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에 그 같은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술이나 약에 취해 폭력이나 범죄를 저지르고도 ‘심신미약 상태’라고 주장하는 작태와 다를 바 없다.

‘뮌하우젠 증후군’이란 1951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리처드 애셔(Richard Asher)’가 의학저널에 발표한 증상이다. 아프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를 마치 진짜인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린 뒤 관심과 동정을 이끌어 내는 상황을 만드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기술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주위 사람 들 중에는 유독 ‘엄살이 심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나,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는데도 당장 죽을 것처럼 난리를 치거나, 전혀 아프지 않음에도 일부러 관심을 받고 싶어 꾀병을 부리는 경우 역시 뮌하우젠 증후군 현상의 일종이라고 한다. 뮌하우젠 증후군 증상을 정신과적 측면에서 보면 심리적인 괴로움을 토로하거나 신체적 질병이나 장애 등을 언급하는 것인데, 심리적 징후 외에 신체적 증상을 수반하기 위해 자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자기 딸까지도 속여서 후원금을 가로챈 여인은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가 아니라 리플리 증후군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 딸의 치료를 위해 기부 받은 돈을 자신이 개인적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휴일 진실의입 (사진_영화 로마의 휴일 캡처)

가장 주의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은 조직적이고 힘 있는 ‘리플리 집단’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리플리 증후군과 뮌하우젠 증후군이 사이버 공간에도 등장한다. 정신질환 증상의 디지털 판이다. 여러 사람들이 방문하는 사이트의 게시판이나 SNS 등을 이용하여 과장된 내용을 공개한 뒤 네티즌들의 관심과 동정을 받는 행위를 즐기는 것이다. 자신이 아닌 타인이나 반려동물 등을 대상으로 관심을 받는 이른바 ‘대리(代理) 뮌하우젠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들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나 애완동물 등을 고의로 다치게 한 뒤에 극진히 간호하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면서 동정을 받는 것을 선호하는 사이코패스 기질을 동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행동이라는 점에서 절도나 사기, 심각하게는 살인 등 큰 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다. 2017년 비트코인 플래티넘에서 어느 한 고교생이 비트코인 유사 계정까지 만들어서 코인을 출시한다고 올렸다. 물론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그 말을 믿고 투자하여 돈을 잃은 사람들이 발생했다. 현재 해당 학생은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하여 보호받고 있는데 자신이 코인을 발행한 것으로 말하곤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학력을 위조하거나 인터넷이나 SNS 상으로 타인을 사칭하는 사이버 리플리 증후군이 종종 발생한다.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자각하지 못하는 뮌하우젠 증후군이나 리플리 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개인은 주의하고 멀리하면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주의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은 각종 증후군을 앓고 있는 개인들보다, 조직적이고 힘이 있는 ‘리플리 집단’들일지도 모른다. 2015년 빌게이츠가 추천한 도서 대럴 허프의 「새빨간 거짓말, 통계」에는 사업가와 정치인들은 여러 자료와 통계들을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소수점과 백분율까지 사용한 과학적 계산을 무기로 삼아 거짓말을 진실로 조작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뜩이나 국민들을 호갱으로 삼아 쥐고 흔들어 대는 집단들의 감언이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 (Santa Maria in Cosmedin)에 있는 ‘진실의 입’ 무료입장에서 유료화가 되었다. 관리를 위한 일이라지만 왠지 ‘진실을 말하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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