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산황단보존회 주관 화양산 황단의 가치 재조명
천극(옥황상제)·지극(공자)·인극(고종)을 모시고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편안함을 염원하는 제례

화양산황단 100주년 기념 토론회(사진_진안군)

[시사매거진/전북=고정식 기자] 화양산황단보존회(회장 손희창)가 주관하고, 전라북도․진안군․진안문화원이 후원한 화양산 황단 100주년 기념 「화양산 황단의 역사적 의미와 보존방향」 학술대회가 지난 22일 진안 문화의집 마이홀에서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수당 이덕응은 1866년 출생하여 1900년 장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낙향하여 김제·전주 등에 머물다 1909년 진안 주천면 대불리에 이주·정착하였다. 이후 화양도원을 개설하고, 13도도강장에 임명되어 활동하는 등 후학양성에 힘썼으며, 천극(옥황상제)·지극(공자)·인극(고종)을 모시고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편안함을 염원하는 제례를 화양산 황단에서 지냈다. 이에 진안군에서는 화양산 황단을 진안군 향토문화유산 유형 제20호로 지정한 바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화양산 황단과 황단제의 역사적 의미를 규명하고, 수당 이덕응의 생애와 유품 등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학술대회에는 박철상 문학박사·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 이용엽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북지회장, 김호석 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가 진행하는 3개의 주제발표와 나종우 전북문화원연합회장을 좌장으로 최규영 진안향토사연구소장, 유미나 원광대학교 교수가 참여하는 종합토론이 펼쳐졌다.

‘수당 이덕응의 생애와 교유’를 발표한 박철상 소장은 문헌기록과 유물자료를 기반으로 수당 이덕응의 생애와 교유관계 등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냈다. 특히 순종임금이 구두로 비답을 내려 황단제 거행을 허가하였음을 알 수 있는 자료를 공개하였으며, 고종임금이 1869년 공자(孔子)에게 ‘배천광성(配天光聖)’이라는 휘호(徽號)를 올린 것을 계기로, 이덕응이 1869년을 원년으로 하여 이 휘호를 연호로 삼고, 화양도원 등의 공문에 지속 사용하고 있음도 밝혀냈다.

‘황단제의 역사적 의미와 보존방향’을 발표한 이용엽 전북지회장은 황단의 역사적 가치와 관련 유적․유물들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였으며, 정훈모와 김용배 등과의 교유관계도 폭넓게 살펴봤다.

‘수당 이덕응 선생 초상화에 대한 검토’를 발표한 김호석 교수는 눈 주위 근육과 주름 등을 섬세하게 표현한 육리문(肉理紋)의 사용이나 서양 음영법의 수용 등 시대적 미감을 표현한 점과 입상 초상화 배경에 황단의 야외 모습을 담은 점 등을 특징으로 보았다.

또한 스승 이덕응과 제자 신기영·조병순의 초상화가 특정기간 내 집중적으로 제작된 점과 화양도원에 4개월간 머물며 작품을 완성하였다고 전하는 점 등에서 다른 초상화들과는 다른 미술사적 의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세 명의 발표자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이나 수당 문집과 초상화 등에 대한 담긴 다양한 의미들을 공개하였다. 특히 향후 아직 미 정리된 채로 남아 있는 수당 문집에 대한 정리와 해제가 이루어져야 보다 많은 사실들이 밝혀질 것이라 강조했다.

한편 종합토론에 참여한 최규영 소장은 수당 이덕응의 사상과 교유관계를 중심으로 토론하였으며, 유미나 교수는 이덕응 초상화 속 표현기법과 작자인 채용신의 작품 활동을 중심으로 토론을 이어나갔다.

학술대회를 참관한 참석자들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그 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화양산 황단과 제례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고, 일제강점기 나라의 광복을 위해 노력한 수당 이덕응의 생애와 활동을 이해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귀중한 문화유산과 인물이 진안군과 전라북도를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조명되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진안군은 내년 3월 8일까지 운영되는 진안역사박물관 특별전 「국태민안의 염원, 화양산 황단」 전시유물과 이번 학술대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종합하여 화양산 황단과 수당 이덕응 관련 자료들의 보존과 정비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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