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피해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책ㆍ재정지원에 대한 논의 계속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및 WTO 개도국 논의 대응방향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홍 부총리,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사진_뉴시스)

[시사매거진=박희윤 기자] 정부는 25일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우리 경제의 위상, 대내외 여건, 경제적 영향을 두루 고려해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며 “농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책ㆍ재정지원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1995년 WTO 출범 당시 농산물 무역적자 악화, 농가소득 저하, 농업기반시설 낙후 등을 이유로 농업 분야에서 개도국 지위를 택했다. 

그러나 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WTO 개도국이 불공평한 이득을 얻고 있다”며 미 무역대표부(USTR)에 향후 90일 내 WTO 개도국 기준을 바꿔 개도국 지위를 넘어선 국가가 특혜를 누리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가 시작이었다. 사실 중국을 겨냥한 트윗이지만 한국도 거론했다.

트럼프는 OECD 가입국이면서 주요 20개국(G20) 회원이고,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 국가인 동시에 세계 상품무역에서 비중이 0.5% 이상 되는 국가가 WTO 개도국에 포함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한국은 이들 기준에 모두 부합한다.

홍 부총리는 "미래 협상 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쌀 등 민감 품목에 대한 별도 협상 권한을 확인하고 개도국 지위 포기(Forego)가 아닌 미래 협상에 한해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Not Seek)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의 경제적 위상을 볼 때 우리가 국제 사회에서 개도국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한국과 경제 규모·위상이 비슷하거나 낮은 싱가포르·브라질·대만 등 다수의 나라가 향후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라면서 "따라서 개도국 특혜에 관한 결정을 미룬다고 하더라도 향후 WTO 협상에서 우리에게 개도국 혜택을 인정해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대외적 명분과 협상력 모두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홍 부총리는 이날 회의 시작 전 출입 기자단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 협상에 한해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프레임(Frame)으로 이렇게 의사 결정하게 됐다"고 알렸다.

홍 부총리는 다만 "현재·미래 WTO 농업 협상 타결 전까지는 기존 협상을 통해 이미 확보한 개도국 특혜를 변동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서 "미래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는 영향이 없으며 이에 대비할 시간과 여력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또 "미래 협상이 타결돼야 (한국의) 개도국 특혜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그전까지는 국내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면서 "마무리 단계인 쌀 관세화 검증 협상 결과에도 영향이 없다. 개도국 특혜는 지위와 별개의 사안이므로 과거에 참여한 아시아·태평양 무역 협정(APTA) 등과도 관련 없다"고 부연했다.

정부는 3대 정책 방향 아래 한국 농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쌀 등 국내 농업 민감 분야 최대한 보호 ▲국내 농업에 영향 발생 시 반드시 피해 보전 대책 마련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 등이다.

홍 부총리는 "국내 농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나가겠다"면서 "'공익형 직불제의 조속한 도입을 위해 농업소득보전법(농업 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과 안정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공익형 직불제는 WTO에서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2020년 예산안에 직불금 관련 금액을 8000억원 늘린 2조2000억원을 담았다.

재해를 입은 농업인의 경영 안정을 위해 농업재해보험 품목을 늘리는 등 보험 제도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청년·후계농 육성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최대 3년 동안 월 80만~100만원을 지급하는 '청년영농정착지원금'과 농지은행 제도 등으로 자금을 지원한다.

홍 부총리는 "그동안 주요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농업 시장 개방에 따른 피해를 보전하자'는 차원에서 정책을 시행해왔다. 이번에는 '우리 농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 차원에서 정책을 추진해나가는 출발점으로 삼겠다"면서 "항상 눈과 귀를 열고 농민들의 얘기를 듣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오늘 결정으로 농업계의 반발이 클 텐데 어떻게 협의하겠느냐'는 출입 기자단의 질문에는 "농민들이 요구한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면서 "관심이 큰 것이 공익형 직불제다. 내년 예산안이 (그대로) 도입된다는 전제 아래 2조2000억원의 예산을 반영했다. 국회에서 추가 논의가 있을 텐데 정부는 국회 심의에 성의를 갖고 임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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