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사회 흐름속에 위협받는 정신건강 현대인들에게 발병하는 신종 정신질환,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가장 필요
이제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하루하루가 새로운, 빠른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때문에 항상 새로운 소식과 사건들이 발생하고 더 발달된 기술이 등장하는 변화의 흐름 속에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빠른 적응력과 생존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인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스타트가 느리거나 조금만 뒤쳐져도 그 차이는 크게 벌어지며 뒤에 있는 사람은 앞서기 위해, 앞에 있는 사람은 뒤쳐지지 않기 위해, 그렇게 모두들 애를 쓰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과도한 업무와 각가지 스트레스 속에 파묻혀 사는 사회인들은 신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건강한 정신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각가지 질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며, 심각할 경우 우울증이나 성격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산업화, 기계화의 급격한 변화는 비인간화를 더욱 부추기며 현대인들은 이러한 환경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어 무력감과 고립감,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성격장애로 ‘왕따’ 당할 수도...
사회는 제 각각 다른 취향과 특성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 형성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외모나 목소리가 다르듯 성격 또한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학교나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그 중에서도 유난히 특이한 사람을 한 두명쯤은 만나게 된다. 성격이 괴팍하다거나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감정의 변화가 큰 사람들은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대인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한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성격장애자(혹은 인격장애자)라고 한다. 성격장애란 비교적 평생동안 지속되는 한 개인의 특징적인 행동 양상이 사회생활에서 여러 종류의 장애를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 정신병과 다른 점은 행동, 정서, 사고에서 심한 퇴행이 없다는 점으로 일반적으로 지능에는 결함이 없다. 성격장애는 원만한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하기 어려우며,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은 괴로움을 느끼지만 정작 본인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자신의 증세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 수정도 어렵다는 것. 대인관계에서의 잦은 갈등은 생활을 힘들게 하고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자주 마찰이 생기고, 상대방이 이유없이 미워지거나 자기도 모르게 쌀쌀맞게 행동하게 되면 자연스레 상대방도 거리를 두기 마련이다. 내 자신한테 문제가 있나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성격이 좋고, 나쁘다는 것은 딱히 정의 내리기가 애매하다. 그러나 내가 성격장애든 아니든지 간에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내 성격이약간이라도 걸림돌이 된다면 일단 그것을 고치는 것이 우선이다.
성격장애는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 편집성, 분열성, 분열형 인격장애가 포함되며 괴상하고 별난 경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는 히스테리성, 자기애적, 반사회적 및 경계형 인격장애인데 대체로 극적이고 감정적이며 변덕스러움이 특징이다. 셋째는 회피성, 의존적 및 강박적 인격장애인데 억제되어 있고 불안해하고 두려움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면을 갖고 있으며 잘났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공주병’, ‘왕자병’도 최근 젊은층에서 볼 수 있는 성격장애의 한 증상(자기애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남의 관심을 끌고자 행동하고 특별한 대우를 받기를 원하며, 자신에 대한 비난을 들으면 감정이 몹시 상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남의 감정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을 쉽게 이용하기도 하며, 이기적·자기중심적인 성격 때문에 남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모기업에 다니는 H씨는 능력은 뛰어나나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는 자기애적 성격장애 때문에, 다니는 직장마다 해고를 당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며 필요이상 강한 자신감과 자존심으로 남을 무시하는 행동을 일삼고 있다. 사회의 모든 일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바라보며 만약 조금이라도 자신의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면 배척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자신이 남과 다르며 잘났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옷이며 소품이며 명품만을 고집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성격 때문에 남들로부터 외면당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 스스로 겉돌다가 도퇴된다는 데 있다. 본인이 깨닫기 전까지는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이러한 성격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따돌림을 당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증상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깨닫고 성격을 고쳐나가는 수밖에 없다.
특별한 이유없이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지는 것을 반복하는 경우를 ‘경계선 인격장애’라고 하는데 이는 충동성이 강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많이 사고 별것도 아닌 일에 불같이 화를 내고 싸우기도 한다. 학교에서 우등생 소리를 듣는 K양(17)은 평상시는 친구들과 곧잘 어울리다가도 어느 한순간 친구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싫은 소리를 하며 뒤돌아 버린다. 나중에 후회를 하며 하루종일 우울해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어제 일은 모두 잊어버린다. 꾸준히 사귀거나 친한 친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자신이 원하지 않은 생각이나 장면을 자꾸 떠올리고 이것이 합리적이지 않고 쓸데없는 것인 줄 알지만, 그래도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으로 극도로 불안하고 긴장하게 되는 것을 강박적 인격장애라고 한다.

나도 혹시 성격장애? 대처법을 알아보자
성격이란 태어난 후 양육하는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결정되어진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태한 날로부터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유전적 기질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며, 성격이 완성된 후에도 거의 평생을 두고 발전해 가며 조금씩 수정되어져 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어떤 특정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그와는 정반대의 사고와 행동의 양식을 취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성격장애 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성격 때문에 스스로는 별다른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며 따라서 환자 본인이 치료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또한 치료를 받으려 한다해도 이미 성장하는 동안 거의 고착화(固着化)되어 버린 성격이라 치료하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성격장애란 그 자체가 신경증이나 정신병이 아니다. 단지 성격의 특정 부분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갖는 임상적 의미는 어떤 특정한 성격형을 가진 사람은 어떤 식으로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든가, 또는 어떤 특정 질병에 걸린다면 그것이 어떤 것일까 하는 예측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데 있다. 가령 의심과 편견이 두드러지는 특징을 가진 편집형 성격장애 환자는 부인의 정조를 의심하는 편집 장애(의처증)라는 심한 신경증, 또는 피해 망상이나 관계 망상과 함께 그 망상에 어울리는 환청을 동반한 편집형 정신 분열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장애의 치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위 사람들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서울대 유교수는 “우선 환자의 문제 행동이 치료가 필요한 병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통상 환자들은 불평불만이 많으니 이를 무조건 들어줘서도 안된다”고 말하며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일깨워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환자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섣부른 약속도 금물이며, 무조건 잘못을 지적하며 배척하는 것도 치료에 도움이 안된다. 치료의 핵심은 문제 행동에 대한 분석 대신 적절한 ‘대처방안’을 지도해줘서 본인 스스로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주위 사람들이 대신 해결해 주지 말고 환자가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해 일상 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문제행동이 해결되지 않으면 1년 이상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원에서는 상담과 인지 행동치료를 하며 필요할 경우 충동조절 약물, 기분 조절제 등 단기간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인터넷, 스트레스, 환경변화 등으로 인한 신종 정신질환 범죄 급증 ‘인터넷중독증’이란 인터넷에 탐닉해 현실세계와 가상공간을 혼돈함으로써 초래되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중독이 확산속도가 빠른데다 알콜중독이나 마약중독 못지 않게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알콜중독자가 장기간 술을 마시지 않을 경우 손이 떨리고 심하면 경련이 일어나는 것처럼, 인터넷중독자가 인터넷을 하지 못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이 나고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청소년의 사이에서 더 심각하다.
얼마 전에는 폭력적 게임에 중독된 중학교 3년생(14)이 ‘가족의 해골을 보고싶다’는 이유로 자신의 친동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일이 발생했었다. “장래에 살인 청부업자가 되고 싶다”며 먹고 남은 닭뼈와 돼지뼈를 방안 책꽂이에 진열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여온 것으로 밝혀졌다. 연세대 의대 민성길(정신과)교수는 “인터넷 중독에 따른 강박장애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최근 크게 늘었다”며 “이럴 경우 현실과 가상세계를 분별하지 못하는 일시적 착란에 빠지게 되고 범죄에 이를 가능성도 매우 커진다”고 경고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고교생 폭탄테러나 자살사이트 심취자들의 자살, 청부살인 등도 정신질환성 범죄에 포함시키고 있다. 전남목포의 여관에서 발생한 30대 회사원과 두 여대생의 동반자살이 대표적이다. 회사원 李모씨는 수첩에 적은 유서에서 ‘우린 미쳤어. 우리를 동해바다에 뿌려주세요. PM 4시44분 탄생의 거룩한 장막을 내립니다’고 적었다. 연세대 김동노(사회학)교수는 “사람끼리의 대면 접촉이 줄면서 심리적 황폐화가 범죄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규모 정리해고를 앞두고 불안함 속에 생활을 해오던 김모씨(45 회사원)는 경기가 불황을 탈 때마다 소화가 안되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이유없이 몸무게가 빠져나가는 등의 증상을 보였다. 종합건강진단까지 받아보았지만 특별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그는 의사의 권유로 조심스럽게 정신과 문을 두드렸다. 김씨는 최근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회인이나 주부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신종 정신질환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으로 진단됐다. 숨겨진 우울증이라는 뜻의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식욕이나 성욕이 떨어지고 두통·불면·복통을 호소하기도 하는 등 신체적인 변화가 특징이다.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오강섭 교수는 “과거 시집살이를 하는 주부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직장과 사업, 가정에서의 몰이해로 인해 남성들에게서 급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 심각한 이유는 정신적 위축감과 함께 의욕이 떨어지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숨겨진 우울증의 극단적인 증상 중에는 자살충동도 섞여 있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우려가 있다. 이러한 환자들의 문제는 대개 자신이 우울증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이유없이 피곤하거나 건강이 나빠지며 매사 짜증이 난다는 것에 있다. 이럴 경우 한번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에 의한 우울증을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오교수는 “치료를 위해서는 가족들의 도움과 협력이 가장 필요하다”며 “심할 경우 항우울제 등 약물을 처방하지만 대부분 운동과 각 개인에게 맞는 여가 활용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인식 개선 필요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를 계기로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을 위험하고 사고를 일으키며 멀리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또한 정신질환이라 하면 심각한 병으로 치유되기 어렵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정신 장애에 대한 편견은 정신장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서 생긴 것으로, 이는 심화된 사회적 편견이 정신보건 환경을 개선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삼성 서울병원 정신과 김도관 교수는 “대구 지하철 방화 용의자 김대한씨는 망상과 환각 증세를 보이는 정신 분열증, 정신병의 하나인 우울증과 무관하며 뇌졸중 후유증으로 인해 위축되고 자포자기에 빠져 ‘우울증상’을 보였을 뿐”이라며 “기질적 문제로 발생하는 우울증과 차원이 다르다”고 진단했다.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이 일반인들에 비해 높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아직 없으며 오히려 더 낮다는 연구결과가 소개되고 있다.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스스로에게 공격을 가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는 있지만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특히 정신장애인의 범죄나 폭력은 그들의 정신증상, 즉 환청이나 피해망상, 착각 등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범죄가능성을 저하시킬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은 자신과는 무관한 병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열명 중 세명은 평생에 한번쯤 정신질환에 걸린다고 하니 이는 결코 드믄 병이 아니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대부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병을 숨기다 보니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다.
엄청난 변화의 속도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은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경쟁사회에서 탈락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초조하고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낙오하지 않고 살아 남으려면 남보다 ‘더 빨리’,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며, 이런 생각이 반복되고 지속되어 결국 현대인의 정신 세계를 강박적으로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질환은 당뇨나 고혈압처럼 사람이 앓고 있는 질환일 뿐이다. 따라서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치료하게 되면 얼마든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현대인은 누구나 어느 정도 정신적 중압감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평소에 정신질환이 없던 정상인도 심리적인 스트레스에 의해서 부적응의 문제를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고 일시적인 정신질환을 앓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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