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속의 생태낙원 ‘밤섬’ 으로의 초대 어류·5000여종의 철새 등, 다양한 식물들의 보금자리로 지정
적절한 환경을 제공할 수 없는 콘크리트, 해마다 되풀이되는 홍수로 인한 쓰레기는 10Ł, 자동차 매연, 소음 등으로 곤충과 어류뿐만 아닌 철새들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밤섬에 살고 있는 작은 생명체들은 도시 속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종들이다.


도시인의 일상을 옥죄는 빌딩들 사이로 괭이갈매기 한 마리가 하늘을 난다. 갈매기 둥지가 있는 곳은 빽빽히 들어선 빌딩에서 1㎢도 채 떨어지지 않은 한강의 한가운데다 달리는 자동차와 넥타이 부대들의 잰걸음을 지척에 둔 그곳에서 새는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먹이를 사냥한다.
밤섬. 서울 한강 여의도 북쪽 마포대교와 당산철교 사이에 있는 면적 24만㎢의 작은 섬이다. 모양이 밤처럼 생겼다고 밤섬이라고 하는 이 섬은 1968년까지만 해도 뽕밭을 일구며 사람이 살았다. 섬이 한강의 흐름을 방해해 수질오염을 가중시킨다는 이유와 당시 상습 침수지역이었던 여의도 땅을 돋우는데 필요한 흙과 자갈을 푸기 위해 정부는 62가구, 443명의 주민을 이주시켰다. 그렇게 해서 정말 ‘밤톨’만한 크기로 줄어든 섬은 그 후 한동안 버려졌다. 사람이 다시 이 섬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환경과 생태에 관심이 고조된 1990년부터 이 섬에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원앙 등이 살고 있는데다 해마다 5000여 마리 이상의 겨울 철새가 찾아온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시는 99년 8월 이 섬을 생태계 보존 지역으로 지정했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밤섬의 생명체들
홍수가 끝난 지난 28일 아직 홍수의 영향을 완전히 털어 내지 못한 섬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섬 대부분이 물에 잠겨 상류에서 떠내려온 나뭇조각들과 쓰레기들이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한강관리사업소가 장마 뒤에 실시하는 대청소기간에 모으는 쓰레기만 해마다 10Ł이 넘는다.
섬의 구석구석에는 박주가리, 환삼덩쿨, 능수버들, 물억새 등 다양한 식물이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길이라곤 찾을 수 없는 수풀을 조심조심 헤치고 나아가면 베짱이, 섬서구 ,말벌등 벌레들도 하나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다양한 식물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해마다 반복하는 홍수가 한 식물이 오래 번식할 수 있도록 두지 않는 것이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50여종이 살아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취재팀에 동행한 두레생태기행 김병현 연구원의 얘기이다.
밖에서는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밤섬은 두 개의 작은 섬으로 나누어져 있다. 위섬과 아래섬을 가르는 물줄기는 가뭄 때는 무릎을 걷기만 해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수위가 낮다. “유속히 느린 강가에 모래톱이 형성되면서 수초가 자라고 그 안에 물고기들이 산란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죠. 밤섬이 없었다면 한강에서 지금처럼 물고기들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한국자생어종연구협회 이학영회장의 말이다. 강변을 모두 수직 콘크리트 벽을 쌓아 올린 지금 이들이 안심하고 알을 깔 만한 곳은 밤섬밖에 남지 않았다. 적절한 환경을 제공할 수 없는 콘크리트에 산란한 알들은 그대로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밤섬의 터줏대감 흰뺨검둥오리
사람들 사이에 작은 논란이 일어났다. 강가에 진흙뻘에서 날개쭉지에 상처를 입은 흰뺨검둥오리 한 마리를 발견한 까닭이었다. 상처에는 이미 벌레가 슬기 시작한 상태였다. 흰뺨검둥오리는 이미1980년대부터 이곳에 밤섬에 자리를 잡은 터줏대감. 두레생태모임 김재일 회장은 당장 야생동물 구조대를 불러 오리에 목숨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다른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상처로 인해 오리가 죽는다면 그 역시 자연의 순화과정입니다. 우리가 애써 살린다면 그 역시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거죠 그를 통해 벌레가 살고 미물의 먹이가 되는 거니까요”고려곤충연구소 김전환 소장의 의견이다. 그 작은 새는 과연 자연적으로 상처를 입은 것일까, 아니면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손에 의해 다친 것일까. 섬 곳곳에는 빗물에 떠내려온 낚시줄이 나뭇가지에 걸쳐 엉켜 있었다. 만약 그런것들 때문에 다친 거라면 구해주어야 옳은 것이 아닌가. 어디까지가 인간의 영향이고 어디서부터가 자연의 순환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다지 큰 섬은 아니지만 없는 길을 헤치고 한발한발 내디디며 섬을 일주하는 데에는 4시간이 걸렸다. 저녁 7시 무렵 멀리 보이는 아파트 사이로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이 시간은 물고기들이 기슭으로 나오는때. 쏘가리와 점농어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에는 한강 어디에서나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자라와 남생이도 지금은 이곳 밤섬에서만 찾을 수 있다.
주변이 완전히 깜깜해진 밤 상판을 뒤흔드는 앰블런스 소리와 폭주족의 오토바이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김정환 소장은 “섬을 위협하는 요소는 한둘이 아니죠 배, 자동차 매연, 소음… 그런 것들이 없다면 섬의 환경이 지금보다 낳았으리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습니다” 고 말한다.
한강의 유속이 빨라 모기가 서식하기 어려울 뿐 더러 섬 안 곳곳의 웅덩이에 살던 유충들은 지난 홍수에 모두 떠내려갔다. 이 역시 밤섬이 완전한 생태계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장마철 팔당댐이 방류할 때마다 애써 가꾼 어린 새끼들과 벌레들이 모두 떠내려가버린다는 점이 밤섬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곤충과 벌레가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은 먹이사슬의 붕괴로 연결된다. 이들을 먹고살아야 하는 새들의 수 역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강북 강변로 가로등에 불을 밝히고 섬을 내려다보는 아파트들에서도 불빛이 넘쳤다. 어느새 달도 진 섬은 칠흙같은 어둠에 젖어들었다. 새벽 2시 도시는 이제서야 서서히 조용해졌다. 다리 위를 달리는 자동차 수 역시 차츰 줄어들었다. 낮에는 꽤 멀게 느껴지던 강변은 한밤이 되자 한결 가깝게 느껴졌다. 점차 차가워지는 밤 공기를 무릅쓰고 깜빡 잠이든 새벽. 여의도 63빌딩 넘어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아침안개가 자욱히 깔린 밤섬의 침묵을 깬 것은 ‘삐익 삐익’ 하는 박새의 울음소리였다. 한 마리가 울자 다른 새들도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할미새 , 해오라기, 물총새 시끄러운 서울의 일상이 시작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조율하지 않은 채 하모니를 이루는 새소리가 강을 넘어 도시로 퍼지기에는 너무 작았다. 늦게까지 잠들지 않던 도시지만 깨어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멀리 보이는 당산철교 위로 지하철이 달리기 시작하자 서울은 금새 하루를 맞고 있었다. 서강대교를 분주히 달리는 자동차소리와 함께 밤섬의 짧은 평온 역시 막을 내렸다.
“밤섬은 서울 별 천지라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도시에서 살아가기 힘든 생명들의 피난처일 따름이죠” 동행한 김재일 회장의 말이다. 사람의 발길을 차단한 것만으로 도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생태계가 생기리라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는 이야기였다. 서울 인구 1천만의 콘크리트 도시… 남겨진 손바닥만한 ‘밤섬’에는 한동안 잊고 지내던 할미새, 베짱이, 청개구리, 애기똥 등이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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