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재“940억원 YS으로부터 직접 받은 돈”폭탄 발언 전직 대통령 법정에 서는 초유의 사건 발생할 듯
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예산을 총선에 전용한 의혹(안풍사건)으로 법정에 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두 심복이 진실게임을 펼치고 있어 그 결말이 주목된다. YS의’정치적인 아들’인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은 YS와의 의리는 저버리고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꾼 모습이다. 강 의원은 지난달 6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안풍사건 관련 공판에서“내가 받은 것으로 공소 사실에 기재된 940억원은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 총재였던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은 돈”이라는 폭탄 발언을 했다. 안풍사건의 최 정점에 YS가 있다는 주장이다.강 의원의 증언으로 전직 대통령이 증인으로 법정에 서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할 듯하다.

안풍사건, 4월 총선 최대 쟁점 될 듯
지난 95년 지방선거와 96년 총선에서 당시 안기부 예산 천백97억원이 선거자금으로 불법 지원됐다는 이른바 ‘안풍’사건. 지난 2001년 검찰은 이 가운데 940억원을 96년 총선자금으로 유용하는데 관여한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과 강삼재 의원을 기소했다. 하지만 당시 출석을 거부한 강 의원은 끝내 조사하지 못해 자금의 구체적인 전달 경로나 출처에 관한 의혹을 완전히 풀지 못했다. 지난해 1심 재판에서 강삼재 의원은 징역 4년에 추징금 7백31억원, 김기섭씨는 징역 5년에 자격정지 2년, 추징금 백25억원을 선고받았다.
이런 가운데 항소심 공판에서 강삼재 의원이 당시 940억원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직접 받았다고 폭로한 뒤 검찰은 예상외로 신속하게 재수사 방침을 밝혀 안풍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제2라운드 게임이 시작됐다.
3년 가까이 정치권 ‘빅뱅’의 뇌관이 돼온 ‘안풍’(安風, 국가안전기획부 예산의 선거자금 전용 의혹)이 마침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그동안 풍문으로 떠돌던 ‘안풍’은 지난해 9월 23일 서울지법 형사23부(재판장 이대경)가 김영삼 전 대통령(YS) 시절 신한국당 사무총장이던 강삼재 의원과 안기부 운영차장을 지낸 김기섭씨에게 실형을 선고함으로써 ‘실체’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강삼재 의원 등이 안기부 예산을 특수 활동비 명목으로 인출해 차명 계좌에 넣어 세탁한 뒤 1996년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 총선 때 선거자금으로 사용한 점이 인정된다”며 강 의원에게는 징역 4년에 추징금731억원, 김씨에게는 징역 5년에 자격정지 2년, 그리고 추징금 125억원을 선고했다. 강 의원은 1심 판결에 대해 “안기부 예산을 당 자금으로 쓴 적이 없다”며 즉시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다음날 지역구인 경남 마산에서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안풍의 뇌관은 강 의원의 사퇴 후 더욱 가열됐다. 선거 때 유용한 안기부 자금의 실체(성격)에 따라 한나라당의 도덕성은 물론 올 4월 총선 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對 YS 생존게임

문제의 ‘안기부 자금’은 2000년 2월 경부고속철도 로비 자금을 수사하던 중 그 해 7월 경남종금에서 한나라당 강삼재 부총재의 차명계좌 2개에 입금돼 있던 정체 불명의 뭉칫돈을 발견되면서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검찰은 돈 흐름을 역추적한 결과 안기부 모 계좌에 이르렀고 여기서 국고수표(해당 부처에서 발행한 예산 집행에 쓰이는 수표)로 나온 돈이 세탁을 거쳐 96년 4·11 총선과 95년 6·27 지방선거 직전 구 여당에 유입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이듬해 1월3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을 소환,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또 안기부 예산 1,197억원 중 상당액이 96년 총선과 95년 지방선거 때 구여당의 입후보자 등 모두 185명에 전달된 사실이 드러나자 검찰은 2001년1월23일 당시 사무총장을 지낸 강 부총재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공판과정에서 “1,197억원 모두 안기부 예산”이라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는 “1,197억원 중 사용한 856억원만 안기부 예산”이라고 결론지었다. 구 여당이 선거 때 사용한 자금이 ‘안기부 예산’이란 점에서는 서로 일치한 셈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YS측과 한나라당은 한결같이’안기부 자금설’을 부인하고 있다. 강삼재 의원과 YS측은 “선거 때 쓴 돈은 안기부 예산이 아니고 당의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한다. 한나라당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당시 선거자금은 YS의 대선잔금”이라며 YS의 ‘고해성사’를 요구하고 있다.’안풍’은 올 총선까지 2심, 3심 재판이 예정돼 있어 어떤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총선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1심 결과를 뒤집지 못할 경우 간첩을 잡아라고 준 돈(국고ㆍ國庫)를 사사로이 선거에 이용한’부도덕한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 한나라당 소장파가 YS측에게 ‘대선 잔금’임을 고백하라고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1심 재판이 유지될 경우 국가가 한나라당을 상대로 제기한 940억원의 국고환수 민사소송에서 한나라당은 패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한나라당은 당 재산 전부를 국가에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급기야 한나라당이 최병렬 대표까지 나서 “돈의 출처와 성격에 대해 최소 5-6명의 당밖 인사들이 진실을 알고 있다”면서 YS를 압박하기도 했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해 9월 25일 “안기부 자금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92년 대선잔금”이라며 직접 YS를 겨냥했다. 사실상 한나라당과 YS측이’생존게임’에 들어간 것이다.

YS 대선 잔금가능성 짙어
‘안풍’과 실체와 관련, 정가는 그 돈이 YS의 대선잔금이라는 쪽에 무게가 두는 분위기다. 실제로 YS는 2001년 2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92년 대선 때 상당히 많은 돈이 들어왔는데 무엇 때문에 안기부 돈을 받느냐”고 말해 그런 (대선잔금)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한 측근 인사는 “2001년 1월말 안기부 자금문제를 담판짓기 위해 이 전 총재가 상도동으로 YS를 찾아갔을 때 YS는 ‘안기부 예산이 아니다. 재벌들이 지원한 정치자금’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가에서는 YS가 집권 초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안받겠다고 선언하며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만큼 국가 예산을 빼내 선거에 사용했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최 대표가 언급한 ‘당 밖의 5∼6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YS의 차남 김현철씨,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홍인길 전 총무수석, 권영해 전 안기부장, 김기섭 전 차장 등이 그들이다. 이가운데 현철씨는’소통령’으로, 이원종 전수석은 청와대에서’부통령’으로 통할만큼 실세였다는 점에서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현철씨는 대기업 간부이던 김 전 차장을 안기부로 스카우트해 92년대선 사조직인 ‘나사본’의 자금 130억원 중 70억원을 안기부 계좌를 통해 세탁한 뒤 96년 총선에 간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홍준표 의원 주장대로 YS 대선 잔금이 안기부 계좌를 통해 자금 세탁 및 관리 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약 그 돈에 대통령 당선 축하금까지 포함돼 있다면 특가법상 뇌물수수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YS측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YS측은 한나라당의 ‘안풍’압박에 대해 함구로 피해가고 있다. 상도동의 한 관계자는 “YS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이회창 후보를 공식 지지했는데 안기부 정치자금 사건과 현철씨 공천 문제 등에서 한나라당이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올 총선서 노무현 신당이 공략 목표로 삼고 있는 PK(부산·경남) 지역을 지키기 위해 YS를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최 대표를 비롯한 당내 주류는 한나라당이 살기 위해서는 YS와의 단절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치적 부활을 꿈꾸는 YS 부자는’안풍’이란 암초를 만나 한나라당으로부터도 외면을 받고 있다.

YS 돈전달 개입여부가 초점

검찰이 안풍사건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키로 함에 따라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은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 등을 조사한 뒤 YS 조사 여부를 결정지을 방침이지만 현재로서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YS 개입여부와 자금출처 규명이 핵심=강 의원의 변호인단은 안풍자금 940억원이 안기부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변론의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검찰은 다르다.
검찰은 당시 계좌추적과 관련자 조사결과를 종합해볼 때 안풍자금이 안기부 돈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돈의 출처보다는 YS가 돈 전달 과정에 개입했는지 여부가 의혹의 핵심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따라서 검찰은 강 의원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을 소환해 자금의 이동경로에 대한 조사를 다시 벌인 뒤 YS 개입을 뒷받침하는 단서가 포착되면 YS에 대한 직접조사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YS에 대한 조사결과 안기부 돈을 빼돌려 강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이 밝혀지면 YS는 강 의원의 공범이 되고 추징금 731억원도 공동 부담해야 한다. YS가 안기부 돈은 맞지만 강 의원은 몰랐다고 주장할 경우 모든 책임을 YS가 지게 된다. 하지만 YS가 형사처벌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그같은 진술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YS가 강 의원 변호인단의 주장처럼 안풍자금이 대선자금 등 외부자금이라고 주장할 경우 검찰 수사 결과가 완전이 뒤집어지는 만큼 이번 수사는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강 의원 조사부터 난관=YS에 대한 조사여부 결정에 앞서 검찰이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적지 않다. 이번 폭로의 당사자인 강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가 가능할 지부터가 불확실하다. 강 의원측은 현재 진행중인 재판과정에서 진실을 규명하겠다며 검찰 출두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상태다.
강 의원이 검찰의 소환요구를 거부할 경우 검찰로서는 강제조사를 실시할 수단이 없다. 지난 2일부터 국회가 열린 만큼 체포동의안 없이는 강 의원을 강제 소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검찰은 강 의원에 대한 공판과정에서 재판부의 판단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재판부가 강 의원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 검찰은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한 상태에서 부실수사를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안풍’진실게임, 법적 책임 시나리오
‘안풍사건’에 대해 검찰이 전면 재수사 방침을 정했다. 안기부예산-대선잔금-재임중 자금조성 등 돈의 출처가 무엇으로 밝혀지느냐에 따라 김 전 대통령과 강삼재 의원, 한나라당이 서로 이해를 달리하며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된다. 법적 책임의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안기부 예산이라면=1심 판결대로 돈의 출처가 안기부 예산이라고 판명된다면, 강삼재 의원에게 돈을 준 김영삼 전 대통령도 국고손실의 책임을 질 수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안기부 예산 횡령을 지시하거나 관여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김 전 대통령도 국고손실죄 공범으로 기소돼 법정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강의원 또한 안기부 예산인 줄 알면서 돈을 받은 것으로 판명된다면, 국고손실이라는 불법행위 공범으로 법적 책임이 인정된다.
2심재판에서도 이런 판결이 내려진다면 한나라당 또한 정치적, 금전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선거승리를 위해선 국고도 맘대로 쓴 부패한 집권당’이었다는 비난여론을 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2001년 정부가 불법으로 사용된 안기부 예산 환수를 위해 한나라당을 상대로 낸 940억원대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고스란히 져야한다.
1심판결에서 강삼재 의원에게 추징된 731억의 추징금 문제에서도, 강의원이 신한국당 사무총장 지위로 실권자 역할을 한 점이 입증된다면, 한나라당(당시 신한국당) 역시 법적 연대책임을 져야한다.
△92년 대선잔금이라면=강 의원 주장대로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잔금을 안기부 계좌에 넣어 보관했다가 선거 때 빼내 썼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안기부 ‘예산유용 사건’이’김영삼 정치자금 사건’으로 사건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혐의도 강의원-한나라당 차원의 국고손실이 아닌, 김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변하게 된다.
‘김영삼 정치자금’사건으로 전환한다면, 사건의 초점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 통치자금을 조성한 것인지에 맞춰진다. 지금까지는 김 전 대통령이 92년 대선 때 쓰고 남은 잔금이 안기부 계좌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주로 거론돼 왔다. 이 경우, 대선 때 기업한테 불법정치자금을 거둬 몇 년 후 총선자금으로 쓴 것으로 판명된다면 김 전대통령은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된다. 하지만 정치자금법 위반 공소시효기간(5년)이 지났으므로 김 전대통령은 사법처리를 면할 수 있다.
이 경우라면 강의원과 한나라당으로서도 금전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부담을 덜게 된다. ‘안풍사건’ 자금이 국가예산이 아니라면, 우선 강의원이 ‘안기부 예산을 전용했다’는 혐의자체가 잘못된 것이므로, 검찰은 공소취하나 변경을 해야 한다. 또한 정부가 손해를 본 게 아니어서, 한나라당을 상대로 낸 정부의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여론의 비난도 덜 수 있다. 한나라당이 6일 논평을 통해 “강삼재 의원의 법정진술로서 3년여만에 소위 안풍사건이 명백히 허구임이 판명됐다”며 “추후 더 명백한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나랏돈으로 선거를 치뤘다는 억울한 누명을 벗게된 상황이 되었다고 확신한다”고 반색하며 안풍자금을 김 전 대통령 정치자금으로 몰아가려는 이유다.
△임기중 받은 정치자금이라면=안풍자금의 출처가 김 전 대통령이 임기 중 기업들한테 거둔 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현직 대통령이 받은 정치자금은 청탁성 뇌물에 해당해서, 재임 중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의 공소시효(10년)가 아직 남게 된다. 김 전 대통령한테는 가장 심각한 시나리오다. 역시 강의원과 한나라당도 직접적인 법적, 정치적 책임은 면할 수 있다.
한편 일각에선 김 전 대통령한테 돈을 받았다는 강의원과, 안기부 예산을 당에 건넸다는 김 전 차장이 서로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즉 두 사람의 주장을 합쳐보면, 김 전 차장이 안기부 돈을 당의 관계자에게 주고, 다시 당에서 그 돈을 김 전 대통령에게 건네고, 김 전 대통령이 강의원에게 최종적으로 돈을 건넸다는, ‘김 전차장-당 관계자-김 전 대통령-강의원’으로 안기부 돈이 전달됐다는 해석이다. 이 경우라면 돈의 출처가 안기부 예산 이므로 앞서 살폈듯, 김 전 대통령, 강의원, 한나라당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재판부는 이달 12일에 김 전 대통령이 출석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돈의 출처에 따라 법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변하며 향후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안풍사건의 진실게임’은, 어떤 경우가 되든, 김 전 대통령의 법정 진술이 필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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