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의 역사 속에서 3대째 지켜온 명성과 자존심
뜨거운 불꽃 속에 장인의 손으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빛의 예술
B.C 5000년경 이집트에서 시작된 칠보공예는 기독교문화로 중세유럽, 불교문화로 동양으로 퍼져나갔다. 불교문화 속에서 동양으로 전파된 칠보공예는 아미타경에서 말하는 칠보 금, 은, 청옥, 수정, 진주, 마노, 호박으로 불교의 7가지 보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칠보공예 기업인 금하칠보는 1967년 국내에 관심이 부족했던 시대 김이두 회장의 땀과 노력으로 창업하신 이래 2007년 현재 외손녀인 박수경 대표까지 3대째 가업을 이어 칠보공예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칠보공예 장인의 손에서 시작된 금하칠보는 현대인의 취향과 느낌을 살린 칠보공예로 역동적인 변화를 이루고 있다. 변화의 주역 박수경 대표를 지금 만나본다.


뜨거운 열정과 노력으로 만든 영롱한 빛
1967년 설립된 금하칠보는 박수경 대표의 외조부인 김이두 회장이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과 판매를 시작한 이래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도 고객의 개성과 요구에 부흥하는 장인정신의 가업승계기업으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김이두 회장은 자신의 칠보제작기술은 장남인 아들에게, 판매에 관한 사업은 장녀인 박 대표의 어머니에게 물려주셨다고 한다. 김이두 회장의 장남이자, 박수경대표의 외삼촌은 현재도 유약제조의 전승자로 칠보 재료를 만들며,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판매 사업을 물려받은 박 대표의 어머니는 80년대 대만과 일본의 수출 호재 속에 사업을 유지시키며 많은 소득을 올렸으며, 90년대 인건비의 인상과 국민들의 급격한 삶의 윤택함으로 인해 위기를 맞으면서도 재료판매 사업과 아이디어 상품 개발로 가업계승기업으로써의 명성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
2001년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박수경 대표는 어머니의 사업을 보다 현대적인 시각에 조명해 보면서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아이템이 문뜩 떠올랐다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는 인터넷 서비스와 문화에 있어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으며,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방안 이었지만 당시 외국에 있었던 박 대표의 제안은 그 당시 현실화 될 수 없었다.


2002년 태어난 용기와 욕심
국내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배우고자하는 용기로 시작된 박 대표의 유학생활에 변화가 온 시점은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당시 미국에서 월드컵을 시청하던 박 대표는 그녀의 눈에 들어온 한국인들의 열정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은 축구보다 농구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2002년에도 미국경기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NBA경기가 열릴 시간이 되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농구를 보여 줬으니까요. 그때 이런 미국인에게 한국의 칠보공예상품으로 충격을 주자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곁에서 접한 칠보공예를 어렸을 적에는 지겨울 정도로 싫었다고 한 박 대표는 2002년을 계기로 가내수공업으로 유지해오던 칠보공예를 중소기업 형태의 사업체로 끌어 올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월드컵이 열리던 중간 한국에 들어온 박 대표는 어머니께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사업계획을 말했고 막무가내가 아닌 체계적인 칠보공예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2002년 겨울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그녀는 일본어가 미흡했기에 영어로 일본어를 배워 나갔고, 금속공예와 칠보공예 전문학원에서 유약을 씻는 기초적인 과정을 시작했다. 지겨웠을 기초 과정이었지만 오히려 기초에 충실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했다. 일본의 교육과정을 직접 경험한 박 대표는 현재 금하칠보가 운영하는 창업스쿨과 교육과정을 만들어 귀중한 교훈으로 삼고 있다.
외할아버지께서 장남과 장녀에게 물려주신 제조기술과 경영기술을 현재에는 박 대표가 직접 참여하며 배워나가고 있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경영노하우를 자신만의 변화된 사업으로 이끌고 있는 박 대표는 일본에서 돌아 온 직후 바로 사촌동생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하여 새로운 판매 돌파구를 찾게 되었으나 다소 비싼 가격의 칠보공예품을 저렴하게 판매하기 위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고민을 벗어나게 된 것이 다소 저렴한 동과 소형 가마이다. 비싼 재료가 아닌 다소 저렴하면서도 칠보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재료와, 그동안 비싸게만 여겨졌던 가마를 자체적으로 소형화 시켜 가정에서도 칠보공예를 접하면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도록 대중화에 앞장섰다. 처음 쇼핑몰을 오픈하여 한 달 동안의 수익은 고작 몇 십 만원에 불과 했으나 박 대표는 인터넷 쇼핑몰의 첫 고객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오픈한지 한 달 반 만에 첫 고객이 4만 원짜리 장신구를 구매 했는데 그때 심정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죠.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우리도 이제 판매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은 이처럼 들떴던 그녀지만 결국 판매에 있어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게 되고 결국 찾은 것은 공모전을 통한 브랜드 알리기 전략이었다. 여러 공모전에서 인정받은 금하칠보는 코엑스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이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외국인을 위한 선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정부 관계자나, 사업체의 바이어들을 포함한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외국손님들을 위해 저렴하면서도 한국의 미를 알리기 좋은 상품을 찾기 시작했고 현재도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국가에서는 많은 양의 주문을 하고 있다. 또한 재료에서도 순수 국내재료만을 사용 우리나라의 전통과 자존심을 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얻은 만큼 돌려줄 수 있는 마음
박 대표의 금하칠보 상품 중에는 나비가 많다. 나비는 장수와 수복을 상징하는데 이러한 의미를 외국인에게 설명하면 외국인들의 특성상 주술적인 의미의 상품을 더욱 선호한다고 한다. 이러한 정보와 전략, 그리고 제작 기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박 대표는 창업스쿨을 만들어 창업을 희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창업스쿨을 수료한 학생들에게 상품개발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도 주고 있어, 일반인들에게 큰 인기를 받고 있다.
오래된 골동품과 같았던 칠보공예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전 세계에 우리의 전통공예를 새롭게 계승시키고 있는 박수경 대표 같은 가업승계형 CEO가 있어 우리나라의 공예문화는 그 미래가 더욱더 밝아 질 것이라 믿는다.



금하칠보 박수경 대표
자주는 아니지만 공동체 생활을 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찾아가면 칠보작품을 보고 많이 좋아하고 희망을 갖는다.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처음 본다며 가르쳐 달라고 말 할 정도로 그들에게는 희망이자 미래 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 상품을 만들고 그 상품을 판매한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따뜻해 질 수는 없다. 내가 얻는 만큼 어려운 사람과 뒤늦게 배움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교육과 문화 역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나 역시 배움을 게흘리 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마케팅 전략과, 새로운 상품 개발,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여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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