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의 '생존자'로 체험에서 건져낸 보니것식 '전쟁과 평화' 이야기

"2차대전은 야만에 맞서는 이성의 전쟁인 것으로 되어 있었고, 전쟁의 주제는 너무나 높은 수준의 것들이라 우리의 흥분한 전사들 대부분은 자기가 싸우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적이 개자식들이라는 것만 알 뿐이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모든 살인이 용납되는 새로운 종류의 전쟁이었다."

저자 커트 보니것 | 옮긴이 이원열 | 출판사 문학동네

[시사매거진=이미선 기자] '아마겟돈을 회상하며'는 아들 마크 보니것의 서문으로 시작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신문의 십자말풀이를 거침없이 풀어내는 탁월한 언어 감각의 소유자였지만 작가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던 아버지. 정신과 의사에게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분명 우울증이 아닌 아버지. 

그저 "내향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외향적인 사람 같았고, 외톨이가 되고 싶어하는 굉장히 사교적인 사람, 운이 없었기를 바라는 운좋은 사람 같은" 아버지. 지극히 모순적이면서 양극적인 성향의 괴짜 아버지 커트 보니것을 아들 마크 보니것은 진심으로 사랑했다. 

물론 사람들은 아버지를 체제 전복적 인사라고 평했지만, 아들 마크가 보기에 아버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체제 전복적이지 않았다. 읽고 쓰는 행위가 곧 '생각'을 전복하는 시도이니, 아버지 커트 보니것은 분명 체제 전복적인 인사이긴 했다. 

하지만 마크는 본인이 아는 사람들 중 가장 과격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였다고 술회한다. 마약도 하지 않고, 빠른 차도 몰지 않았으며 정의의 편에 서려 노력했던 사람이었고, 그저 글을 쓰는 과정에서—자기 자신과 독자들에게—일어나는 마법을 믿으며, 글이 잘 써질 때의 신나는 기분을 좀체 숨기지 못했던 작가였다고. 

마크 보니것은 이런 아버지의 글 중 "언제 쓰였는지 대부분 표시되어 있지 않고 출판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들이며, 그 자체로 아주 훌륭"한 작품들을―편지, 연설문, 단편소설 등―모아 책으로 출간했다. 그리하여 이제까지의 보니것의 작품집 중 전쟁과 평화, 폭력과 휴머니즘에 대한 고찰이 그대로 담겨 그를 가장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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