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호=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자신의 요혈을 눌러주고 있는 김충선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눈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설마?”

“예. 이대로 장군을 포기하실 분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단지 장군의 확고한 결심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역성혁명을 그 분들이 찬동하였는가? 서애대감과 홍의장군은 충신 중에서도 충신이다. 그럴 리가 없어!”

“충신으로 따지자면 장군 역시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걸 몰라주는 어리석은 왕이 존재하니 그것이 우환인 것이지요.”

이순신은 질끈 눈을 감았다.

온 기력을 모아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자신에게 악귀처럼 달려드는 사악한 혼돈(混沌)을 물리치고자 할 때의 버릇이었다. 그의 경륜에 이러한 위기는 수도 없이 찾아 들었었다. 그렇지만 이번의 결단은 그 어느 사안보다도 중요한 고비였다. 김충선은 재촉하고 있었다.

“생각은 이제 그만 두십시오. 행동으로 보여주셔야 합니다. 부디 장군의 몸을 소중히 여기소서.”

이순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석상이 된 것처럼 굳어 있었다.

“서애대감이 장군의 확고한 의사를 알고 싶어 하십니다. 곽장군도 애타게 고대하고 있으며 여진의 누르하치가 우리의 거사를 돕고 싶어 합니다.”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누...르하치? 여진족장을 말함이냐?”

이순신은 믿을 수가 없었다. 북방 오랑캐의 족장이 어떤 이유로 자신을 돕는다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누르하치는 여진의 부족을 통일한 맹장이옵니다. 그는 칸으로 금나라를 재건하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와 손을 잡고 각기 명과 조선을 새롭게 도모하자는 취지인가?”

김충선은 탄성을 토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일본 역시도 전쟁을 일으킨 히데요시가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국이 동시에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는 것이지요. 명국은 누르하치에 의하여 금나라가 재건 될 것이고,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국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력한 조선의 탄생은 장군님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순신은 침음(沈吟) 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라고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그가 간단명료하게 설명한 삼국론(三國論)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대 변혁이었다. 명나라의 멸망과 새로운 조선 정국, 그리고 일본 최고의 권력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몰락. 이들 삼국은 역사의 폭풍지대에서 가장 정점에 위치해 있었다. 이순신은 이때 차마 몰랐다. 이 시기가 향후 얼마나 걷잡을 수 없는 정국을 예고하는지! 이때의 그는 그저 탄식을 쏟아낼 뿐이었다.

“왜적이 코앞에 있거늘 이 무슨 해괴한 망상인가?”

“발등의 불이 더 급한 것을 어찌 외면하시려 합니까? 참고 인내하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또한 소생은 이미 적들에 대한 방비책을 마련해 놨습니다.”

“대관절 자네는 지치지도 않는군. 그러나 이 불은 내 스스로 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끌 수 없는 것이고. 이것은 주상전하의 은혜로만 꺼지는 불이다.”

김충선은 순간 낙담하고 만다.

“장군, 아직도 미련을 접지 못하시고 꿈을 꾸시는 겁니까?”

이번의 목청은 다소 높았다. 이순신은 주변의 다른 죄수들을 의식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이틀 전에 그들이 다녀갔다. 꿈이 아니란 사실은 이미 깨우쳤지. 내가 위험하리라는 사실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들이라 하시면 좌상의 무리겠죠. 임금의 뜻이라 여기면서 조선을 기만하는 간신배들과 그런 족속들을 철저히 이용하는 왕 선조!”

“그래서...... 이 혼란한 시기에 감히 역모를 꾀한단 말인가? 그건 이 나라와 백성들을 참으로 토탄에 빠뜨리는 길이야. 그걸 왜 몰라?”

김충선은 답답하다는 듯이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이리도 벽창호가 있나 싶었다. 향후 도저히 인내할 수 없는 혹독한 고문과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의 잔인한 추국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이 사람은 무쇠로 이루어져 있는가? 어찌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나두 사람인 것을.... 어찌 형벌이 무섭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건 아니 되는 것이야.”

“그럼 어이 하시면 되겠습니까?”

김충선은 가까스로 감정을 억제하며 물었다.

“왜적들을 물리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군이 계셔야 하지 않습니까?”

이순신은 뇌옥 밖의 김충선을 묵묵히 응시하였다. 그냥 떠올리기만 해도 신기하고 희한한 놈이었다. 대관절 이 일본 놈도, 조선인도 아닌 반쪽이 무엇 때문에 자기 목숨을 걸고 새로운 조선을 건국하자고 이 난리인가?

“내 그럴 형편이 아닐지니 그대라도 이 나라를 지켜다오.”

김충선은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장군이 계시지 않은 조선이 내게 어떤 미련을 남길 수 있겠습니까? 전 의미가 없습니다. 이 전쟁에는 이제.”

이순신이 빙그레 웃었다. 지난 달 26일 함거로 이송되며 단 한 번도 얼굴에 웃음이 떠오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웃었다. 그의 미소는 소년의 미소를 닮아 있었다.

“훗, 철부지 아이처럼 떼를 쓰는구나. 사실 넌 나보다도 더 조선을 사모하지 않느냐. 알고 있느니라.”

김충선은 웃지 않았다.

“장군! 그걸 아시면서 어찌 이 나라의 장래를 모르시는 겁니까?”

“장래라......?”

“최강의 조선을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호기를 외면하신다면 결국 이 나라는 망하게 될 겁니다. 왜적이거나, 오랑캐에 의해서! 장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건 피해갈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이순신의 눈가에 희미한 경련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도 무력했던 사람이라고 전혀 느낄 수 없는 다른 신광이 쏟아졌다.

“조선이 망한다고 하였느냐?”

“예,”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조선이 멸망하는 운명 이라는 건가?”

“의당 그러하오이다.”

“믿을 수가 없다. 신뢰할 수 없는 말이야. 난 그런 믿음이 없는 말을 무시한다.”

김충선은 호흡으로 감정을 조절하며 이순신에게 반박한다.

“조선의 멸망을 믿지 못하십니까?”

“그렇다!”

“왕이 충성스러운 신하를 욕되게 하여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고, 조금이라도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얻게 되면 경계하고 음해하며, 또한 매질을 하고 귀양을 보내는 것이 제대로 된 군주입니까? 오직 왕권에 노예가 되어 분당을 조장하고 군주의 위세로 진리를 왜곡하니 이러한 나라가 정상으로 경영 되리라 보십니까?”

이순신은 입을 다물었다.

평상시라면 의당 크게 꾸짖고 노화를 터뜨려야 마땅하였다. 하지만 그도 살과 뼈로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감정이 존재하고 오감(五感)이 살아 숨 쉬었다. 조선의 왕 선조에 대하여 이순신은 이미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순신은 이제 사야가 김충선이란 조일인(朝日人)이 두렵고 무서웠다. 그와 마주하고 있으면 강한 조선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만 할 거 같았다. 그래서 이순신은 눈을 감았다. 그런 이순신을 향해서 펄펄 끓어오르는 젊은 기백의 김충선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서애대감이 그렇다고 하시면 믿으시겠습니까? 홍의장군은 신뢰 할 만하시지요? 그럼...마지막으로 이 분은 어떠하십니까? 도원수 권율장군 말입니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장군을 원하신다면 그때는 인정 하시겠습니까?”

도원수 권율이란 이름은 얼마나 대단한가? 조선의 왕 선조가 가장 신뢰하던 장수 신립(申砬)이 임진년 초에 충주의 탄금대에서 왜적에게 전멸 당하고 순절(殉節)한 후,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노장군이었다. 이순신은 대꾸하지 못했다. 단지 오랜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다. 마치 애초부터 그렇게 혼자 인 듯 그와 대화를 나누던 상대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바람은 불지 않았고 다만 등화의 그림자는 펄럭였다. 이순신은 흔적도 없는 바람에 흔들리는 불빛처럼, 자신의 요동치는 마음을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가까스로 붙들고 있었다. 그는 나지막하게 어부사(漁父辭)를 읊었다.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굴원기방 유어강담 행음택반)
顔色 憔悴 形容 枯槁(안색 초췌 형용 고고)
漁父 見而問之曰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於斯(어부 견이문지왈자비삼려대부여 하고지어사)
屈原 曰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굴원 왈거세개탁 아독청 중인개취)
我獨醒 是以見放(아독성 시이견방)
漁父 曰聖人 不凝滯於物而能與世推移(어부 왈성인 불응체어물이능여세추이)
世人 皆濁 何不淈其泥而揚其波(세인 개독 하불굴기이양기파)
衆人 皆醉 何不飽其糟而歠其醨(중인 개취 하불포기조이철기리)
何故 深思高擧 自今放爲(하고 심사고거 자금방위)
屈原 曰吾聞之(굴원 왈오문지)
新沐者 必彈冠 新浴者 必振衣(신목자 필탄관 신욕자 필진의)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안능이신지찰찰 수물지문문자호)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영부상류 장어강어지복중 안능이호호지백 이몽세속지진애호)
漁父 莞爾而笑 鼓枻而去(어부 완이이소 고설이거)
乃歌曰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내가왈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遂去不復與言(수거불복여언)

굴원이 죄 없이 추방을 당해강과 못 사이를 쏘다니고연못가 거닐며 슬픔 노래 읊조리니얼굴은 시름겨워 초췌해지고형용은 비쩍 말라 야위었더라.

어부가 이를 보고 물어 말하길."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父)가 아니신지요?이런 곳엘 무슨 일로 오신 거요?"

굴원이 대답하기를,"온 세상 모두가 흐려 있는데나 혼자만이 맑고 깨끗했으며,뭇 사람들 모두가 취해 있는데나 혼자만이 맑은 정신 깨어 있어서그만 이렇게 추방당한 것이라오."

어부가 이 말 듣고 말을 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막힘이 없어세상과 추이(推移)를 같이 한다오.세상사람 모두가 흐려 있다면

어찌하여 그 진흙에 같이 동조하여

그 흙탕물을 더 높이치지 않고서,

뭇 사람 모두가 취해 있다면그 술지게미 배불리 먹고물에 탄 술이라도 마셔 두지 않고서어째서 깊은 생각, 남보다 고상한 행동을 하여스스로 추방을 불러 왔소?"

굴원이 이 말 듣고 다시 말하기를,"내 일찍 이런 말 들은 적이 있다오.금방 머리 감은 이는 반드시 관을 털어 쓰고새로 몸을 닦은 이는 옷을 털어 입는다오,

그러니 어찌 이 깨끗한 내 몸으로저 더러운 수치를 받아 드릴 수 있겠소?차라리 상수(湘水)에 몸을 던져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낼지언정어찌 이 희고 깨끗한 내 몸에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어부가 그 소릴 듣고서 빙그레 웃고는 노 소리 요란하게 배를 저어 떠나며.'창랑의 물결이 맑을 때라면이 내 갓끈 씻을 수 있고,창랑의 물결이 흐릴 때라면이 내 발이나 씻어보리라.'그리고 마침내 떠나 버리곤 말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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