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

"대한민국의 그 많은 '순이'들은 화려한 경제 개발의 그늘에서 그들은 이름과 달리 '순'하게 살 수 없었다. 인권 유린과 매연, 어둠침침한 조명 아래 살인적인 강도의 노동을 겪으며 청춘기를 보냈다. 이름과 반대로 억척스러워져야 했다." 

저자 정찬일|출판사 책과함께

[시사매거진=이미선 기자] '순이'는 한국에서 (한국)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다. 1950~1960년대 여성 신생아의 이름에 가장 많이 붙여진 글자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순이'와 같이 농담처럼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순'은 어떤 의미와 의도로 이름에 쓰이기 시작한 걸까? 사실 20세기 이전에는 한국여성에게 제대로 된 이름이 붙거나 그 이름이 역사에 남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 들어 호구조사와 민적법에 의해 여자아이에게도 이름을 지어줘야 했는데, 집안에서는 대충 짓곤 했다. 그때부터 많이 쓰인 한자가 '순할 순(順)'이었다. 그저 지아비와 집안을 '잘 따르는 순한' 여자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한국은 식민지화와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렸고, 전국 각지의 궁핍한 가구에서는 온 가족이 밥 한 끼 제대로 먹기도 어려웠다. 식량을 더 늘릴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 입을 더는 것뿐이었다. 그 희생양은 당연하게도 어린 딸이었다. 순하고 조신하게 집 안에만 있기를 강요받던 이들이 이제는 반대로 집 밖으로 내쫓겼다. 하지만 이는 모순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같은 맥락이었다.

약 한 세기 뒤, 한국 사회는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페미니즘의 거대한 물결을 맞고 있다. 이는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순이'가 아니다"라는 선언일지도 모른다. 100여 년 동안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을까? 이 사이에 한국 여성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왔을까?

이 책 '삼순이 – 식모, 버스안내양, 여공'은 이 땅의 수많은 '순이',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세 '순이'의 전성시대를 복원, 조명한다. 그들의 삶은 감춰지고 잊힌 또 다른 한국 현대사이며, 바로 지금도 매일 분투하고 있는 한국 여성의 선배들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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