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권력자들이 전하는 예와 도의 헤게모니 전략

"궁궐과 도성 설계자는 경복궁 영역에 진입할 때 ‘궁궐-산-하늘’의 일체화된 경관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복궁으로 통하는 도로망을 치밀하게 조성하고 교차 지점까지 전략적으로 설계했다. 궁궐과 산과 하늘이 일직선상에 하나로 묶여 다가오며 웅장함을 연출하고, 시선은 금세 경외감으로 가득 찬다."

저자 조윤민|출판사 글항아리

[시사매거진=이미선 기자] 건축물에는 이념이나 사회윤리 등 추상적 가치를 물질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속성이 있다. 정치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에 주목해 지배이념, 통치 강령, 지배체제 윤리를 건축물에 표상하고 이를 확산하려 했다. 

'문화유산의 두 얼굴'은 오늘날 우리가 문화유산이라 부르는 조선시대의 왕릉과 궁궐, 읍치와 성곽, 성균관과 향교, 서원 등의 건축물에 관해 권력기술자들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관점으로 이야기한다. 

조선의 기념비적 건축물을 보면 그 외양과 구조를 살펴 당대의 미의식과 건축학적 문화양식을 가늠할 수 있으며, 건립을 추진한 배경과 사연을 짚어보고 거기에 스며든 시대 정서와 선대의 정신을 헤아릴 수 있다. 공사에 동원된 백성의 고단한 사연도 보듬어 안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 책은 권력 재현의 매개체로서 건축물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특히 조선시대 권력기술자들이 어떻게 당시 백성들의 감정과 사고를 통제하고 행위를 이끌어냈는지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 건축의 미와 문화적 가치, 이념의 본연과 정신적 유산까지 모두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기존의 것과 관점을 달리한 문화유산 관찰기는 세월을 담아 살아난 유적이 전하는, 어쩌면 어두워 보일지도 모를 그 아픈 유산까지 보듬으려는 움직임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누군가의 말처럼 빛과 그림자, 이 둘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지혜라 믿기 때문"이며 "그건 여전히 명멸하는 이 시대의 빛과 그늘을 껴안으려는 숙연한 다짐"이다. 

그리하여 공적功績을 힘들게 지어 올리고 조선의 장엄한 등정을 떠받쳤던 이들, 영광의 발자취 아래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이들, 그 백성의 그늘을 이 시대의 유적 마당으로 기꺼이 초대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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