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녀들의 기도
상태바
늙은 소녀들의 기도
  • 이미선 기자
  • 승인 2019.10.01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9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

“내 이름은 홍순이입니다. 고향은 천안역에서 가까운 대흥동입니다. 
열일곱에 집을 떠났고 여든아홉인 지금껏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나는 홍순이입니다!” 
-제국과 전쟁, 국가와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가한 폭력과 끊임없이 지속되는 기억의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

저자 이경희|출판사 도서출판 폭스코너

[시사매거진=이미선 기자] '늙은 소녀들의 기도'는 국가와 개인의 폭력에 희생당한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성폭력에 짓밟힌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감정을 상실한 엄마와 그 트라우마에 짓눌려 사는 기자 하림, 미군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한 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끝내 자살한 기지촌 여성 정순, 70년대 외화벌이를 위해 오키나와섬으로 보내졌다가 고된 노역과 성폭행을 당한 채 돌아와야 했던 민자 할머니,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강제납치되어 만주로 끌려가 '위안부'로 살아야만 했던 순이 할머니. 

국가과 개인의 폭력, 그리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지속되는 기억의 폭력 속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한데 얽혀드는 소설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절절한 토로이자 동시에 어느 시대에나 소수자로서 부당한 폭력을 당해왔던 여성에 대한 서사로 꽉 채워진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이야기 전반에 아로새겨진 폭력과 상처로 그득하다. 그 아픔이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고, 그런 아픔을 치유해주기는커녕 여전히 후벼 파려는 이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사죄는커녕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자발적인 성매매라 우기는 일본의 열성 우익들은 물론이고, ‘위안부’ 문제를 여성의 도덕성 문제로 재단하려는 극우주의자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이야기들이다. 

또 피해자였음에도 오히려 세간의 눈총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지를 전전해야 했던 여성들의 서사를 통해 소수자에 대해 위선적인 사회적 편견에 대해서도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마음이 먹먹해지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고 읽다 보면 분의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이지만, 소설로서의 역할에 충실해 전범을 찾아가는 서사가 독자들의 관심을 내내 끌어당긴다. 읽다 보면 상흔 때문에 더는 자랄 수 없는 '늙은 소녀들'의 기도가 부디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