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금혼제도, 이제는 바뀌어야
우리나라의 동성동본 금혼법은 중국의 동성금혼 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법제화되었지만, 현재 많은 모순점을 안고 있어 폐지논란이 일고 있는 제도 중에 하나다. 당시의 금혼법은 국가정책이나 국민의식 및 윤리관, 경제구조와 가족제도 등이 반영된 것으로, 가부장적·계급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졌다. 하지만 중국에서조차 이 법의 불합리성을 들어 폐지, 우리나라에서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으며 모순으로 가득 찬 금혼법의 폐지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불합리한 모순덩어리 「동성동본 금혼법」
동성동본 금혼제도란 본이 다르면 같은 혈족이라도 혼인이 가능하지만, 촌수가 아주 멀거나 조상의 계통을 알지 못해 촌수를 계산할 수 없어도 본이 같으면 혼인할 수 없는 불합리한 제도이다. 대개의 본이라는 것이 동성이지만 시조를 달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 따로 만든 것을 말하는데, 실제로 같은 시조·혈족이라 하더라도 후손들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다가 그 곳에 정착, 번창하게 되어 그 지방 이름을 따서 새로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본 마저도 틀린 경우가 많고, 족보란 것이 대개가 촌수도 모르고 정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추정해서 만든 것이 대부분이라, 이 동성동본 금혼조항이 얼마나 모순된 법인지를 알 수 있다.
동성동본 금혼에 대한 법개정은 당연한 것이며 이제는 ‘동성동본’이라는 인식조차도 사라져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동성동본끼리의 결혼을 마치 근친혼인 양 몰아세우기도 하지만, 동성동본은 단순히 성과 본이 같다는 것을 의미, 근친은 말 그대로 친·인척, 즉 부·모계 8촌이나 4촌 이내의 친·인척을 의미하는 것으로 엄연히 이들의 성격은 구별된다. 또한 이미 근친간의 불혼범위는 민법 제815조에 규정되어 있으므로 그 규정만으로도 근친혼은 충분히 예방될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가 신라·고려시대 때를 살펴보면 동성혼은 그 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오히려 동성혼을 고집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골품제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성혼을 법률로 금한 것은 고려후기 성리학이 들어온 후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중국의 영향으로 동성동본 불혼이 관습법으로 자리잡으면서 철저히 금지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문화가 우리나라에 동화되어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적인 특성상 근친혼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한 곳에 정착하면 이동이 극히 적을뿐더러, 같은 성씨끼리 한 마을에 모여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만약 한 마을에 사는 남녀가 결혼을 한다고 하면 근친혼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다, 촌수를 금방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여서 대게 다른 마을로 장가나 시집을 가게 되었고 하나의 풍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동성동본 금혼제도는 이러한 지역적 특색으로 인해 정착된 제도로, 이것을 근거삼아 미풍양속인양 수십 촌을 넘어 촌수를 헤아리기도 힘든 오늘날의 경우에까지 모두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법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성동본의 결혼은 유전학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어
동성동본의 결혼을 반대하는 많은 이들의 대부분은 유전학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들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로서 동성동본 금혼제는 결코 유전학적인 이유 내지 우생학적 이유로 정착된 제도가 아니다. 다만 4촌 이내의 근친혼일 경우 사산 및 유아사망 등의 피해율이 높을 뿐이라고 한다.
물론 근친 혹은 가까운 친척간의 혼인이란 도덕적으로는 물론 유전적으로도 금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촌수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하느냐에 있다. 만약 유전학적인 이유로 근친혼을 금지해야 한다면 이는 남계혈족 뿐만 아니라 여계혈족에게도 똑같이 문제가 된다는 말인데, 동성동본 금혼제는 남계혈족만을 문제삼고 있을 뿐이다.
유전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민법에 의하여 금지되거나 무효로 되는 범위를 넘어서는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결혼을 허용할 경우, 유전학적인 질병의 발생빈도가 이성간 또는 동성이본간의 혼인의 경우보다 높다는 주장은 아무런 과학적 증명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구나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4촌 이내만 금혼하도록 되어 있으며 심지어 3촌 이내만 금혼하는 나라의 수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들의 나라가 우리나라의 기형아 출산보다 높다는 통계는 나오지 않고 있다.
즉 친척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동성동본의 경우 유전적으로 열성이니, 우성이니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정확히 절반의 염색체를 물려받기 때문이다. 전체 46개의 염색체 중에서 아버지쪽에서 23개를 물려받고, 나머지 23개는 어머니쪽에서 물려받기 때문에 부계의 성만을 따져 유전이 어떻느니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실제 유전법칙을 적용해보면 8촌간에 결혼했을 때 즉, 서로 10촌이 되는 아이들 대에서 열성이 나올 확률은 1,024분의 1(0.098%)정도이다. 결국 8촌을 넘어서면 확률적으로 남과 결혼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동성동본 금혼제를 정당화할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

과거 전통을 잇기 위한 유림측의 입장

아무리 오래된 전통이나 관습이라 하더라도 훗날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고 잘못된 사고방식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되면, 수정되거나 없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계급사회, 왕위전통의 계승, 단발령 등과 같이 당시에는 꼭 지켜져야 할 제도들이 현재에 와서는 불합리성을 들어 모두 폐지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림측에서는 사회의 미풍양속과 전통문화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사회질서의 혼란과 가족제도의 파괴를 초래하는 동성동본의 금혼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98년에는 한국씨족총연합회에서 “5천년 유구한 민족사적 전통으로 형성된 가치규범인 가족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정부 당국은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동성동본의 결혼을 혼인의 존엄성을 방어하는 규범이라 단정짓고 있다. 금혼법을 ‘오천년 민족사를 이어온 민족정서이고 조상대대로 이어 내린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며 세계 문화사에 유일한 전통문화유산’이라 주장하지만, 동성동본 금혼제는 우리의 혼인제도에 정착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윤리나 도덕관념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그 시대의 제반 사회, 경제적 환경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제도는 이제 더 이상 법적으로 규제되어야 할 보편 타당한 윤리 내지 도덕관념으로서의 기준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동성동본 금혼 규정에 대해
동성동본간 혼인을 금지한 민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지난 97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동성동본간 혼인이 매년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이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동성동본간 혼인신고는 99년 498건, 2000년 848건, 2001년 906건으로 증가해 2년만에 2배가량으로 늘었으며, 2002년에 들어서는 8월말까지 662건에 달했다. 현재 민법 조항은 동성동본 금혼조항이 삭제된 대신 당사자간 직계혈족, 8촌 이내의 방계혈족 및 그 배우자인 친족관계가 있거나 있었던 때의 혼인을 무효로 하고 있다.
민법에 의해 금지되는 근친혼의 범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의 다른 주요 국가의 입법례와 대비해보면 매우 넓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헌법 불합치를 받은 법률조항은 이에 더하여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혼인은 그 촌수의 원근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고, 민법은 이러한 혼인을 취소혼의 사유로까지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혼인에 있어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동시에 그 제한의 범위를 동성동본이 혈족, 즉 남계혈족에만 한정함으로써 성별에 의한 차별을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30세 이하의 결혼적령기에 처한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동성동본 금혼조항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뿐더러, 김해 김씨만 해도 혼인적령기에 있는 남녀의 숫자가 약 1백만 명이라고 밝혀져 있다. 사회의 흐름이 이러한데도 동성동본 금혼제도가 혈통을 중시하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일 뿐 아니라 우생학상의 불행을 막기 위한 장치라는 이유로 무조건 동성동본 혼인을 반대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은 사회와 문화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만큼 가치관과 의식의 변화 또한 요구되고 있으며, 옳고 그른 것을 선별할 줄 아는 정신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러한 의식의 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가치관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계승·발전시켜야 할 전통문화는 이 시대의 제반 사회, 경제적 환경에 맞고 또 오늘날에 있어서도 보편 타당한 전통윤리 또는 도덕관념이라 할 것이다. 즉, 좋은 전통들은 후손들의 정성과 노력하에 의무적으로 지켜져야겠지만, 세계화를 지향하는 현 상황에서는 단지 오랜 기간의 전통을 가진 의식이나 풍습들이라 하여 잘못된 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되며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수정되어야만 한다. 즉, 성씨나 혈통 등 부계사회에서 길들여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열려진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윤리와 전통을 들어 해당규정 폐지에 반대할 때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윤리와 전통은 합리성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 없으며, 그 인식에 주관적인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윤리와 전통도 역사적 소산이므로 그런 것들 가운데에는 불변의 가치를 지닌 것이 있는가 하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있다. 따라서 이 둘을 구별하고 그에 기반하여 실천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성동본의 혼인을 반대하는 이들은 인륜이라든가 도덕 윤리를 들먹이며 또는, 다수가 원치 않는다는 막연한 논리를 펼치며 동성동본의 금혼을 고집하고 있다. 또한 가정법률상담소, 여성민우회 등의 관련단체에서 여러 경로를 통하여 이의 폐지를 추진 중이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유림이라든가 노년층 등 보수적인 여론을 의식하여 공개적인 토론의 장도 마련하지 않은 체, 소극적인 미봉책만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각자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스스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자유와 권리가 있으며 그 선택으로 인해 어떠한 사회적 차별도 받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동성동본의 혼인에 대해서는 법률로써 통제 가능한 최소한의 범위만을 금혼으로 정하고, 그 이상은 개인이나 가풍 또는 사회적인 관습에 맡기는 방식으로 변화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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