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핀테크학회 회장 김형중, 고려대 암호화폐연구센터 센터장,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시사매거진257호=김형중 교수) 2019년은 암호화폐 세상에서 기억될만한 해이다. 비트코인 채굴 10주년이기도 하면서,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나타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일들이 상반기에 연달아 벌어졌다.

첫째, 비트코인 가격이 바닥을 치고 반등했다. 무섭게 하락해서 가격이 0에 수렴할거라던 예측이 빗나갔다. 19,409달러 부근에서 3,283달러 부근까지 하락했다가 12,962달러까지 치고 올라갔다. 여전히 비트코인이 암호화폐 대장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둘째,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리브라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입자 수 23억명인 페이스북에서 리브라가 사용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네트워크 효과에 따라 전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리브라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기축통화의 지형이 바뀔 수 있다.

셋째, 중국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인구가 14억명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의 국력을 감안할 때 중국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가 미칠 영향력이 막강할 거란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넷째, 카카오의 클레이튼이 암호화폐 업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대기업이 암호화폐 산업에 발을 들이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물론 클레이튼을 개발하는 그라운드X가 일본에 있기 때문에 한국 정책당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있다.

다섯째, 일본이 금융상품거래법을 개정하여 예치금의 네 배까지 레버리지를 허용하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일본에서 암호화폐가 가상화폐에서 암호자산으로, 지불수단에서 금융상품으로 지위가 변경된다.

여섯째, 부산이 블록체인 특구로 선정되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이 때에 특구에서 신산업의 열매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특구 지정은 바람직하다. 특구가 제 기능을 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위의 여섯가지 사례를 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블록체인 특구로 선정된 부산에서 해볼 수 있는 일들이 무척 많다. 정부가 특구를 위해 개인정보보호법 등 11개의 규제를 풀어줬다. 다만, 정부가 특구에서 암호화폐는 허용하지 않고, 블록체인 기반의 부산 지역화폐에 대해서만 조건부 승인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특구는 부산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인 금융허브를 만드는 야심찬 사업이어야 한다.

세계 금융의 중심은 16세기의 스페인에서,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18세기에는 영국의 런던, 20세기에는 미국의 뉴욕으로 옮겨갔다. 21세기에는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부산의 해운대로 옮겨 디지털 월스트리트로 만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정부 예산 200억원을 동네 잔치로 끝낼 일이 아니다. 일본에 둥지를 튼 카카오나 라인의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도록 매력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미래금융산업에 적합한 암호화폐 비즈니스 모델이 특구에 정착되게 멋진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ICO 허용은 특구에서 시급한 문제가 아니다. 상상력을 산업으로 꽃 피우게 할 여건 조성이 더욱 필요하다. 해외의 유수 기업이 부산에 정착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 월스트리트는 허황된 꿈이 아니다. 원래 월스트리트도 처음부터 오늘날의 월스트리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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