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수 발행인

(시사매거진256호=김길수 발행인) 지난 칼럼에서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언급했었다. 또 외교·국방 라인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시작된 한·일 갈등으로 한·미·일 3각 동맹 체제의 균열 양상을 보이는 시기에 중국과 러시아가 공동전선을 구축해 그 틈새를 엿보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달 발생한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 사례는 우리 안보 태세의 총체적인 위기 국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외국 군용기가 두 차례에 걸쳐 7분간이나 영공을 침범했지만, 국가안전보장회의(NSC)조차 열리지 않았다. 건국 이래 우리 영공이 처음으로 뚫렸다는 점에서도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의도적인 침범이 아니었다”는 주한 러시아 무관의 회피성 답변을 전하며 사태를 축소하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반면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는 우리 공군의 경고사격에 대해 “한국 공군이 공중난동을 부렸다”는 억지까지 부리고 있다. 사과는커녕 침범 사실에 대한 과학적 증거까지 부인하는 판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연합 도발’로 일본 전투기까지 4개국의 군용기 30여 대가 뒤엉킨 일촉즉발(一觸卽發) 위기 상황에 대해 청와대는 엄중 대응은커녕 파장을 축소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무슨 일이, 왜 벌어지고 있으며,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대국민 설명이 없었다.

중국은 설정된 KADIZ를 인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중국 군용기의 KADIZ 무단 진입은 올해 들어서만 25차례, 급기야 러시아와 연합 진입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의 용인은 영공주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러시아의 공식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는 한편 KADIZ에 대한 명확한 입장 천명과 외교・안보적 방침 확립이 시급하다. 특히 중국을 향해 분명한 의지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무단 침범한 것과 관련, “일본 영토에서의 이 같은 행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뚱맞은 태도를 보였다. 이에 국방부는 “일본 측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는 공식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했다. 우리나라가 이에 항의했지만, 일본 정부는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다”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측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일본 측은 남북 단일팀의 한반도기에 독도가 표기됐다는 이유로 강하게 항의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독도가 표기된 한반도기를 ‘정치적 행위’로 규정하고 독도 없는 한반도기를 들 것을 권고했다. 당시 권고를 받아들여 한반도기에는 독도를 뺀 우리나라는 도쿄 올림픽의 독도 표기로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국가의 자존과 존엄은 사즉생(死卽生)의 각오와 결기로 스스로 지켜야 한다. 자주 안보가 흔들리고 외교가 비굴해지면 주권을 침탈당한다는 것은 한 세기 전 열강의 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한·일 관계에 균열이 드러나자 날카로운 이빨을 여지없이 드러낸 중국·러시아·북한의 동시다발 도발은 그래서 걱정스럽다. 그동안 한반도 안보균형을 지켜온 한·미·일 자유주의 동맹이 무너질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보여주는 예고편일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과의 동맹관계 강화에 노력해야 한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에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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