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6호=유광남 작가)
일패공주와 이별을 고했다.
여진의 누르하치는 우리의 제안을 어찌 받아드릴까?
조선도, 여진도 새로운 역사(歷史)의 기로(岐路)에 서있다.
이것은 분명 호기(好氣)이다.
조일전쟁(朝日戰爭)으로 새 조선(朝鮮)이 열리고,
명나라도 후금(後金)을 꿈꾸는 자에 의해서 바뀌고,
일본 역시 히데요시의 천하(天下)가 몰락(沒落) 하리니,
아하! 이제 삼국(三國)의 개벽(開闢)이 도래한다.

(사야가 김충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1597년 3월 8일 무술 )
 

“동행을 거절 하는 건가요?”

일패공주 아율미의 눈이 묻고 있었다. 김충선은 나들이를 졸라대는 어린아이 같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장군이 위급하오. 그래서 여진을 방문할 여유가 없음이요. 만일 이대로 그대를 따라 도성을 떠난다면 필경 장군의 신상에 변고가 발생할 것이 자명하지 않소? 순서상 움직이지 못함이니 이해를 바라오.”

일패공주 아율미는 앞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리고 있는 울과 정경달을 힐끔 거리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아버님과 조우해야만 대업을 성취할 수 있어요. 명국은 조선조정의 세력이고 일본은 손을 잡을 수 없는 적의 세력이죠. 여진만이 이순신 장군을 도와줄 수 있어요. 아버님을 만나시는 게 맞아요.”

“물론이요. 나 역시 한시라도 뵙고 싶소. 그러나 워낙 급박한 실정이라서... 부디 대신 전해 주시오.”

“좋아요. 그렇다면 몇 가지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 줘야겠어요.”

“큰 뜻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거짓을 고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무엇을 알고 싶소?”

김충선은 상대방의 신분을 이미 알고 있는지라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정중히 물었다. 그녀가 싱긋이 웃었다. 그녀의 나라 여진처럼 자유롭고 투쟁적인 미소였다.

“이순신장군을 구출한 계획인가요? 김덕령장군의 탈옥처럼 이순신장군도 원하지 않으면 어찌 되나요? 그리고 이순신의 나라를 장군이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행동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그 때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

김충선은 이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조선의 인물들은 가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주저하지 않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경우는 조선인으로 살고자 결심했을 때부터 숱하게 만나온 일들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결코 낮 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자신만 하더라도 그랬다. 일본 같았으면 전혀 상관도 없을 일이었다. 병신년의 김덕령 사후(死後), 자신은 감히 장예지를 찾지 못하였다. 김덕령의 정혼자로 이제 홀로 남겨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김덕령의 여자였던 동시에 김충선에게는 둘도 없는 조선의 무술 제자였다. 계사년과 갑오년의 두 해를 거쳐서 김충선은 아낌없이 자신의 무술을 지도해 줬었다. 그녀는 매우 훌륭한 제자였으며 사부인 김충선을 몹시 따랐다. 그들은 각별한 스승과 제자였으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김덕령이 음해로 역적이 되어 사망하자 김충선은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자신이 없었다. 비련의 안타까움이 혹시나 조선의 예의에 어긋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심려(心慮)였다.

“조선인들은 때로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재차 그녀가 입을 열었을 때 김충선은 동의 했다.

“그렇소. 그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기도 하오. 남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으로 사람을 혼란시키오.”

“이순신장군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죠?”

“인정하오.”

“공연한 시간 낭비 하는 건 아니겠지요? 더구나 아버님께서 이순신장군의 거사에 협조하기 위한 실질적 돌출 행동에 앞장서시게 된다면.... 이건 매우 중대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귀하도 일본 정벌을 위한 사전 공작으로 일본의 이인자라 할 수 있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밀담을 나누었던 과거가 있으니 충분히 납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김충선은 당시의 밀약을 떠올리며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그것은 나라의 운명을 가늠하는 거래이기도 했다. 교토의 천황가문을 조선의 기습조가 장악하고, 조선을 침략하여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 황실에서 배척시켜 결국 도쿠가와의 대군이 히데요시를 응징하는 작전이었다. 사야가 김충선은 당시 이 밀약을 성사 시키고 조선으로 귀국 했었다. 그러나 유성룡의 반대로 이순신은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전쟁을 종식 시킬 수도 있던 기회는 무산 되었다.

“반드시 성사 시키리다. 장군의 선택에는 여지가 없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장군이 이번 대업을 포기하신다면......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조선으로 남을 것이외다. 하지만, 여진으로서도 절대 손해나는 장사는 아닐 것이외다.”

아율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어째서 그렇지요?”

“조선의 새나라가 아니더라도......여진은 중원을 정벌하여 금나라를 부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당연 명국에 대한 전쟁을 계산하고 있지 않겠소. 이순신 장군과의 연합이 아니더라도 여진은 차질 없는 군사를 운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나의 소견이오.”

“그렇다면...?”

“이번 대업과는 관계없이 이미 철두철미한 군사전략을 확보하고 있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오. 이건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마찬가지요. 그들은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포석(布石)을 하고 있소. 자신들의 나라를 꿈꾸며 말이요. 또한 이순신장군의 새나라가 건국된다면 일본이 두 번 다시 대륙침략을 꿈꾸지 못할 것이고 현재의 조선 조정처럼 명나라 일변도 외교를 하지 않을 것이니 여진도 명을 정벌하기가 좋을 것이요.”

아율미는 걸음을 멈추고 감탄어린 눈빛으로 김충선을 주시했다. 지난 3년간 극성스럽게 미행을 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경이로울 뿐이었다.

“놀라워요. 어쩌면 당신은 진정 새로운 조선을 건국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부디 이순신 장군이 형편없는, 아주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울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듯 몸을 돌리며 끼어들었다.

“아버님을 설득할 자신이 사실 없습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이순신은 쉽지 않은 장벽 중에서도 까마득한 장벽이었다. 기어오를 수도 넘을 수도 없는 천외천의 장벽이었다. 전 종사관 정경달이 한숨을 내쉬었다.

“장군님도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깨달으셨을 겁니다. 조선의 어리석은 왕을 위하여 죽을 것이냐? 아니면 조선의 백성들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인가?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는 다소 과격해 있었다. 선조에 대한 반감이 그대로 표출 되었고 이것은 또한 이유가 존재 했다. 정경달은 본래 조일전쟁이 발생했던 임진년의 3년 전인 기축년에 대대적인 역모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었던 정여립(鄭汝立)과 연관이 있었다. 기축옥사(己丑獄死)라 불러지던 이 사건은 무려 1천 여 명의 관련자들이 희생당하거나 옥고를 치룬 것으로 특히 동인들의 피해가 엄청났었다. ‘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는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과 '누구라도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는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을 주장하여 왕권의 체제를 뒤흔들었던 기인 정여립 역시 역적의 누명을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또한 선조의 작품으로 당권이 강화된 동인을 누르고자 자행한 음모였다.

“죽도선생이나 익호장군은 백성들의 인기가 대단 했지요. 그 분들은 절대 반역을 도모할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리 처리할 일이 아니었지요.”

의병장 곽재우가 혀를 찼다. 죽도선생은 정여립을 말함이고 익호장군은 김덕령이었다. 김충선은 마포나루에서 아율미와 헤어진 후 울과 정경달을 동행 하여 이순신의 장남 회와 홍의장군 곽재우가 머물고 있는 서문 밖 객주로 찾아 들었다.

“이순신장군이 또 다시 희생당하는 비극은 절대 막아야 합니다.”

곽재우는 지난 해 김덕령이 반역죄로 고문 끝에 옥사 당하자 그 즉시 의병들을 해산 하고 산중으로 칩거에 들어갔었다. 그러한 그를 이회가 방문하여 부친 이순신 장군의 한양 압송 사실을 고하였고 그 길로 달려온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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