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주 변호사

(시사매거진256호=오병주 칼럼위원) 허생전에서 가난뱅이 허생에게 선뜻 일만 냥을 빌려주었던 변 부자의 직업은 역관(譯官)이었다. 바꿀 역(譯)에, 관리 관(官), 지금으로 말하면 통역관이라 할 수 있고 중인의 신분에 해당한다.

역관은 조선 중기에 출중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중개묵역으로 부를 축적한다. 그리고 천거제라는 제도를 도입해 부와 명예를 세습시켰다.

허생전 변 부자의 실제모델로 알려진 숙종ㅎ시대 역관 변승업은 지금으로 말하면 천억 이상의 돈을 가진 부자였다. 그리고 부인이 죽었을 때 감히 왕가의 상제를 행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던 인물이다. 엄격한 신분사회인 조선시대에 중인이 양반처럼 선산을 구축한 것은 당시 변승업 집안의 우세를 짐작케 한다.

사대부들은 외국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역관은 외교상 이루어지는 모든 부문에 간여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중국에서 구입한 물품들을 청과 무역을 할 수 없었던 일본에 두 세배의 차익을 남기고 팔았다. 17세기 후반, 청과 일본이 국교를 단절하고 왜관을 통해 중계무역이 이루어지자 역관은 더욱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변승업의 경우 형제 9남 1녀 중 6명이 역관이었다. 뿐만 아니라 후손까지 계속되어 280년간 106명의 역관을 배출했다. 역관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기관은 사역원이었는데 이곳은 역관의 추천을 받아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만이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현직 역관들이 직접 이들을 심사했다. 천거 받기도 어렵고 천거 됐다 하더라도 누가 추천을 했느냐에 따라 합격에 상당한 영향이 있었으니 당연히 세습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역원에는 우어청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조선말을 쓰지 못하고 외국어만 사용하게 한 순수한 회화 교실이었다. 교재로는 중국어에 ‘노걸대’, 일본어는 ‘첩해신어’가 사용되었고 이 책은 완전한 구어체로 만들어져 있다. 교역에 관련된 실용 대화들이 많고 문장의 구성도 상당히 체계적이었다.

사역원의 우수한 인력은 무역뿐 아니라 외교관의 역할도 수행했다.

현종 때 김지남 부자는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하여 청이 땅이 될 뻔했던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우는 쾌거를 달성한다. 이들은 재력이나 사회적인 면으로 공을 인정받아 중인 신분으로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고 국제 여행이 힘들었던 이 시대에 역관은 변화하는 세계를 직접 보고 느끼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많은 신문물들이 역관을 통해서 전해졌던 것이다.

이렇게 역관들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선구자 역할을 하며 조선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누구보다 먼저 깨우쳤다. 이들은 신분철폐운동, 개화사상을 싹 틔웠고 급변하는 조선 후기에 새로운 세계를 향해 눈을 떠가는 핵심 세력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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