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전문화가 오동희 작가/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초상화 전문화가 오동희 작가/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시사매거진=신혜영 기자] 인물의 권능과 과시, 사교와 장식 목적으로 초상화를 활용한 서양과 실존인물을 대행하고 삶을 기리고자 초상화를 그려온 동양의 사고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그림으로 개인의 성품과 시대상까지 기록하는 목적에서 서로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서양의 유화기법과 동양의 철학으로부터 고른 영향을 받아, 세계 유명 인사들과 위인, 그리고 천주교 어농성지 헌정과 대통령 초상화를 작업해 온 초상화전문화가 오동희 작가는 보통의 인물화와 구분되는 초상화의 고결한 의미에 여러 모로 귀감이 되는 예술가이다. 한 인물의 생애에 담긴 가치까지 담아내고자 기록문헌의 고증자료와 연구로 전 생애를 한 장의 그림 안에 복원해 내는 작품을 추구하며, 후학들에게도 인물의 시대정신을 예술품이자 문화유산으로 기록하는 초상화의 깊은 의의를 강조하는 오 작가로부터 화가가 개성과 고증 사이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을 직접 들어보았다.

집념 어린 40여 년의 작업과 연구로 초상화의 서사(敍事)를 고증된 역사로 만들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정통의 서양화 기법을 지닌 초상화전문화가이자, 서정성을 간직한 사실주의로 품격 있는 초상화의 영역을 굳건하게 구축한 오동희 작가는 초상화를 취미보다 문화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한국 초상화분야의 거장이다. 인체의 비율에서 오는 안정성, ‘불혹을 지난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한다’는 격언처럼 언행이 새겨진 얼굴의 서사를 읽어 내는 관찰력을 겸비해, 실존인물의 외양 뿐 아니라 삶까지 묘사하는 데 탁월한 오 작가는 국경과 종파, 언어를 초월한 저명인사의 얼굴을 화폭에 담으며 지난 40년 간 한국 초상화의 대명사라는 명성을 쌓아 왔다.

다 빈치와 뒤러가 선, 배율, 명암으로 가장 아름다운 인체의 기준을 정립했다면, 오 작가는 인물이 남긴 기록으로 그의 족적을 훑어내 생전의 언행까지 요약하는 기법으로 오 작가만의 화풍을 만들어 왔다. 백범 김구,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소와 넬슨 만델라, 김수환 추기경, 마더 테레사의 업적을 한 폭의 그림으로 요약한 오 작가는 궁정화가의 우아함과 종교화가의 거룩함을 겸비해 정·재계 유명 인사들의 초상 의뢰도 많이 받아왔다고 한다. 또한 사진으로도 묘사할 수 없는 생애의 파노라마를 담는 기법의 선구자로서, 2016년 국내 최초로 서초구 반포동에 오동희초상화갤러리를 개관하여 작품전시와 감상, 후학들의 교육을 겸한 공간을 만들어 관장으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19세기의 살롱 문화가 도입되어 그림으로 창조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취미 미술인들의 목소리가 많이 담기기를 바란다는 오 작가는 파리의 보수적인 갤러리들에게 동방에서 온 한국 예술가가 유럽의 정통 데생기법과 인체 드로잉을 마스터했으며, 해부학적 지식 또한 얼마나 풍부한지를 입증한 바 있다. 또한 명성에 어울릴 만큼 한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인물을 연구하여, 새로운 표정과 포즈를 발굴해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고증을 통해 정밀한 외곽 음영과 따뜻하고 섬세한 채색으로 실사에 버금가게 재현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궁중화가들에 비견될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에서 한국 천주교 어농성지까지 역사적 인물들의 숨겨진 표정을 발굴하다

홍대 미술대학원 출신인 오 작가는 초상화갤러리를 만들면서 직접 인테리어에도 관여해 초상화의 영혼과 가치, 그리고 기존의 초상화 제작자들이 로코코 시대 이후 잠시 망각한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 작가에 따르면, 초상화는 개성과 고증 사이에서 감각을 살리고, 해당 인물의 진면목을 알리는 데 더없이 적합한 장르이다. 그렇기에 오 작가에게는 초상화의 극사실주의적 묘사가 기계적인 현실재현의 연장선일 수도 있음에도, 창조된 작품은 작가의 고뇌와 희망을 담은 관찰이자 기록물이라는 공식이 꾸준히 유지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 엄숙하기까지 한 작품을 향한 희생적인 태도는 종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을 표현할 때도 도움이 되었다.

오 작가는 2012년 김수환 추기경의 공식 영정사진을 의뢰받아 그린 초상화 3장을 비롯해, 2016년 천주교 어농성지에 헌정하는 윤운혜 루치아, 정광수 바르나바 부부를 비롯한 순교자 8인의 초상화를 헌정하며 미술품 이전에 인류의 기록물이라고 접근한 초상화의 고매한 경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오 작가는 초상화를 잘 그리려면 얼굴 뿐 아니라 신체와 복식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근현대의 의상과 소품을 잘 표현할 기법을 숙련해 왔으며, 피부의 주름과 음영, 눈썹과 속눈썹의 숱과 결, 눈동자에 머무는 빛과 입술 주변의 주름까지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연륜과 생동감에 대한 의지, 감각적인 안목으로 시작된 끝없는 붓질의 끈기는 오 작가를 지금껏 초상화라는 한 분야에 뿌리내리게 했다. 또한 프랑스 루브르 아트페어와 MIFA아트페어, 천주교 어농성지까지 이르는 긴 여정 동안에 초상화라는 자서전을 후대에 물려주는 작가의 헌신을 보여준 오 작가는, 각 시대의 인사들이 남긴 흑백 사진을 컬러로 복원하거나 새로운 포즈를 발굴하는 데 능한 몇 안 되는 역사 전문 초상화가이기도 하다. 오 작가는 한 번 보면 눈을 감고도 사람의 특징을 잡아 낼 수 있는 내공을 보유한 지금도 여전히 작품을 받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백지 상태에서 이미지를 구체화해 나가는 문헌과 자료 연구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동양의 가치관과 서양의 기법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시각적인 ‘실록’을 만들어 낸 오 작가의 예술관은 한서대에서 의뢰한 역대 대통령초상화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을 아끼지 않으며 인물형상과 그의 생에 걸쳐 추구한 가치관까지도 생생하게 살려 내는 오 작가는 현재의 명성은 물론이고, 후대에 이르러 시대정신의 상징이자 한국 초상화 분야의 자랑스러운 이정표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